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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Jun 15. 2024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을 담은 성장소설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익숙하면서 ‘고전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까지도 이 주제, ‘자기 내면으로 향한다는 것’에 줄곧 매달려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본연의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본능적인 열망은 충족되지도 그렇다고 버려지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더는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죠. 헤르만 헤세는 사십 대에 『데미안』을 집필했습니다. 그건 무척 납득이 되었는데요, 자기 내면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글로 완성하기까지 이렇게 위대한 작가도 시간이 필요했구나, 싶었습니다.


소설은 소년 싱클레이가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세계를 인식하면서 시작됩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신성하고 안정된 밝은 세계와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거칠고 난폭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어두운 세계입니다. 이 두 세계는 공존합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 머물고 싶지만 어두운 세계에 대한 타고난 호기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밝은 세계에서 한 발짝 벗어나자마자 프란츠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두운 세계의 고통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막스 데미안이 나타나고 프란츠의 괴롭힘은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즉각적으로 이끌립니다. 싱클레어의 눈에 데미안은 총명하고, 환하고, 엄청나게 단호한 얼굴을 가진 우월하고 침착한 인물입니다. 그는 상황을 변화시켜 싱클레어에게 조금씩 다가오다가 마침내 싱클레어 옆자리에 앉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할 때 그의 의지로 나타나거나 사라지면서 싱클레어와 연결됩니다. 소설에서는 데미안의 존재에 대한 암시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는 싱클레어가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도자 역할을 합니다.


데미안은 소년 싱클레어에게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으며, 세계는 자신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소설의 끝에서 데미안은 다시 한번 같은 말을 건넵니다.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걸.”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사라진 후에도 ‘자신 속으로 내려가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에서 데미안과 닮아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싱클레어는 마치 데미안 같고 데미안은 싱클레어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 마음에 비치는 심상이고, 그렇기에 의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세상에서 마주하는 타인은 곧 나라는 개념은 『데미안』이 출간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설득력을 가지고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요가와 명상을 통해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과 - 이토록 불분명하고 의미가 사라진 현실, 명징한 상징들, 반복되는 꿈들이 -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세는 화가들이 일본 미술에 매혹되고 작가들이 힌두교 철학에 영감을 받고 그 끝에서 유럽이 종말 같은 전쟁을 맞이한 시기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데미안은 내면에 존재하는 진짜 나, ‘아트만’을 연상시킵니다. 아트만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며,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관조자입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그건 싱클레어가 ‘표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싱클레어도 자신에게 표적이 있다는 데미안의 말을 저항 없이 받아들입니다. 헤세는 소설에서 표적을 가진 사람들이란 곧 ‘깨어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문득 얼마 전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버드라이트 제품을 부수는 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구호가 바로 ‘깨어나면 부서질 것이다(go woke, go broke)’였습니다. 헤세 이후 깨어남에 대한 갈망은 여러 형태로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올바름은 피로도가 쌓일 정도로 미숙하고 조잡하고 성급하고 지루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 그건 단순히 피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번 느끼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너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건 안전한 밝은 세계와 그곳에 속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 같은 것이죠. 헤세는 싱클레어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인간에게 거슬리는 것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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