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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라디소 백패커스로

by 소다캣

넬슨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는 ‘투명 인간 커플’과 ‘남자가 몹쓸 커플’도 함께였다. 투명 인간 커플은 어딘가에서 내렸지만 남자가 몹쓸 그 커플과는 무슨 인연인지 첫날부터 일정이 똑같았다. 그들의 목적지도 넬슨이었다. 역시나 몹쓸 남자는 동행한 여자와 남남이라는 듯 먼저 휙 내려버렸고 순한 인상의 여자는 잠깐 나를 바라보며 머뭇머뭇 인사를 하려고 하다가 남자 뒤를 따라 허둥지둥 내렸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몹쓸 남자는 몹쓸 인상을 남기고 착한 여자는 착한 인상을 남기면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넬슨의 파라디소 백패커스는 방금 트램핑을 마치고 온 나에게 천국과 같은 장소가 되어주었다. 여전히 남녀 구분 없는 4인용 방이었지만, 푹신한 침대와 뜨거운 샤워가 있다. 흙투성이의 침낭 안에서 샌드플라이의 공격을 온몸으로 방어하며 보낸 4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벨태즈먼 트랙을 걸어갔던 여행 이후 나는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혼자 다니는 여행이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다. 처음 여행을 떠나왔을 때의 두려움과 어색함은 간 곳이 없었다.


샤워를 마친 뒤 제일 먼저 주방으로 향했다. 넬슨의 식료품가게에서 사들고 온 재료들을 가지고 백패커스의 야외 테이블에 간단한 저녁식사거리를 차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안락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늦은 오후에도 여전히 강렬한 햇살을 만끽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고 할 때 주방에 있는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을 발견했다. 얼마 만에 보는 같은 인종의 모습이던가.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했다.


그는 넬슨에서 공부를 하는 대학생 신희였다. 일본인 친구 게이타와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두 명의 남학생은 주방 한쪽에서 프로 요리사를 연상시키는 솜씨를 발휘하여 화려한 식탁을 차리던 중이었다.


우리는 금방 백패커스 구석에서 금방 맥주 한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행의 거친 때가 묻긴 했지만 곱상한 외모를 한 게이타는 곧 일본으로 돌아가 의대를 마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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