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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파티

by 소다캣

더운 한낮이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이후, 민소매옷을 드디어 입을 수 있는 여름 날씨였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는 한가하고 소박한 휴양지였다. 멀리 파도가 치는 해변과 항구가 보였다. 작은 중심가 곳곳에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었다. 나이트라이프가 화려한 휴양지답게 카페 개점 시간이 한참은 늦었다. 여기저기에서 뉴질랜드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띄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빨간 꽃을 피워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근처 가게에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혼자 걷는데 눈에 익은 동양여자와 맞닥뜨렸다. 백패커스에서 짐을 풀면서 잠깐 마주쳤던 얼굴이었다.


“왜 다들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는지 모르겠어.”


아유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일본인 아가씨가 혹시 한국인이냐고 묻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유는 정말 한국인과 많이 닮았다. 긴 생머리도 그렇고 화장하는 방법,고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말에 얼른 안경을 벗으며 가장 예쁜 각도를 잡아주는 것도 그랬다.


스물 네 살의 아유는 붙임성이 좋았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서 적지 않은 일본인을 보았던 나는 아유에게 왜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다니냐고 물었다. 나도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건 말 붙일 한국인이 없어서기도 했다.


그녀는 어차피 일본으로 돌아가면 엄청나게 많은 일본인들과 만나게 될 텐데 왜 일본인과 어울리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훨씬 좋다고 했다. 아유의 남자친구는 한국인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만나 사귀게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유는 그가 많이 보고 싶다면서 내게 한국에 대한 질문을 해댔다.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군대 다녀오기 전에는 어디에도 정착하기 힘들거야. 면제나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이상.”

“말도 안돼. 정말로 모든 한국 남자들은 군인이 되는 거야?”


아유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마치 가출을 한 부잣집 아가씨가 포장마차의 떡볶이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이냐고, 저런 것을 꼭 먹어야 하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유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모든 남자가 젊은 여성 앞에서 자신의 군대경험담을 필사적으로 늘어놓는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괜히 말년 병장에 빙의해 아유를 놀려댔다.


“한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야. 입대할 때 죽어도 괜찮다는 서약서도 무조건 작성해. 네 남자친구 괜찮을까? 내일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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