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신이 도우셨는지 침대에서 떨어져 죽는 참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날 밤, 나는 오랜 고심 끝에 2층 침대 끝에 배낭을 놓고 잠을 청했는데, 작전이 아주 주효했던 것 같다. 혹시나 잠결에 몸을 움직이다 추락하게 된다면 그보다 먼저 배낭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추락하기 직전에 잠에서 깬다는 발상. 지금 생각해도 무척 영리했던 것 같아.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나는 살아있는 나날을 기뻐하며 선착장에 들어섰다.
돌고래를 구경하는 크루즈 투어는 세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파히하 항에서 1시간 남짓 바다로 나아가자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비슷한 경관이 펼쳐졌다. 그 바다 중간에 솟아오른 바위섬들은 거제도나 소매물도를 관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 중 가운데가 뻥 뚫린 바위섬이 하나 있다.
이것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크루즈는 바로 터널을 통과한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크루즈 선체가 마구 흔들리면서 ‘홀 인더 록’이라는 바위 터널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면 관광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뉴질랜드까지 와서 왜 굳이 이런 관광을 해야 하는 것인지 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걸 한번 해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덕분에 선착장에는 일찍부터 꽤 긴 줄이 생겨났다.
한참을 기다려 오른 크루즈 2층 갑판에는 소극장처럼 좌석이 놓여 있었고 바다가 잘 보이는 가장자리 좌석은 긴 줄의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홀 인 더 록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런 곳에 앉아서야 돌고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이런! 가운데밖에 앉을 자리가 없네!”
한국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많은 이들로 구성된 한국인 가족군단이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요란한 아저씨가 그들의 수장인 것 같았다. 굳이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사돈지간인 두 집안이 사이좋게 관광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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