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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든 Apr 18. 2022

약재들,그 소박한 구원의 레시피

산삼 녹용만 약이 되는 건 아니다

민속의학자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처방과 약초 레시피를 정리한 책 『신약(神藥)』은 한마디로 ‘약초의 향연장’이라 할 수 있다.  


어혈엔 생지황

어혈(瘀血)은 죽은 피가 몰려 있는, 일종의 ‘멍’이다. 어혈은 피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죽은 피가 응고되어 생기거나, 외상·출혈 및 기타 원인으로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생긴다.

인산은 좀 더 현실적으로 어혈을 정의했다. 다치거나 무리하게 일을 했을 때, 산후에 아이 낳고 회복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를 어혈에서 찾았다. 어혈을 죽은 피 즉, 독혈(毒血)이라고도 했다. 

인산은 마황(麻黃)과 생지황(生地黃)이 어혈을 푸는 작용을 한다고 봤다. 마황은 어혈에 독을 가해서 열을 발산하게 하는데, 마황은 땀을 잘 나오게 함으로써 해열을 시킨다고도 했다. 마황에도 독이 있어 그 독으로 독혈을 해독하는 것이다. 감기에 좋은 영신해독탕(靈神解毒湯)을 너무 오래 먹으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마황의 독성 때문에 위장 기능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인산은 생지황(生地黃)의 해독 기능에 좀 더 주목했다. 생지황이 해독제이기 때문에 어혈, 다시 말해 독혈이 풀린다고 했다. 마황보다는 생지황을 두고 진정한 해독제라고 했다. 다만, 생지황만 쓸 경우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평소 몸이 찬 사람은 설사와 복통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마황과 생지황을 같이 사용하기도 한다.      


원감초는 중국산

인산의 각종 처방에 말 그대로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게 원감초(중국 감초)이다. 원감초는 흔히 원나라 감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산은 ‘원감초는 중국 당감초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감초가 나오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감초만큼은 중국 본토에서 나온 당감초를 최고로 쳤다. 

원감초는 생강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생강은 거악생신(去惡生新)이라 하여, 몸 안의 나쁜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오게 하며 피를 맑게 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각종 노폐물을 제거한다. 인산은 생강을 오래 복용하면 몸 안의 나쁜 냄새와 나쁜 기운을 제거하며 정신을 맑게 한다고 했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체온을 올리고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 중 단연 돋보이는 게 생강감초탕이다. 생강 75g(2냥), 원감초 56.25g(1냥 5돈), 대추 18.75g(5돈)을 끓여 차처럼 자주 마시는 것이다. 복잡하게 그램 중량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생강, 원감초, 대추 비율을 3:2:1로 하고 죽염 분말을 곁들이면 좋다. 원감초는 크기에 따라 일호 감초(제일 큰 것. 엄지손가락 굵기), 이호 감초(중간 크기), 삼호 감초(제일 작은 것)로 나뉘는데, 인산 선생은 주로 삼호 감초를 썼다.    

  

백개자와 행인은 치담제

백개자(白芥子)는 겨자씨를 말한다. 동의보감에서도 ‘담이 옆구리 아래에 있을 때 백개자가 아니면 뚫지 못한다’고 했는데, 인산은 백개자를 아예 치담제(治痰齊:담으로 인해 생긴 병을 치료하는 일)라고 못 박았다. 담을 다스리면서도 소화제로서 위장을 보한다고 했다. 행인(杏仁:살구씨) 또한 백개자와 마찬가지 기능을 한다. 

인산의학에서 ‘담(痰:가래)’은 모든 위장병의 근원이다. 인산 선생은 위(胃) 신경의 온도가 맞지 않으면, 위가 차가워지고 담이 성하여 위하수증, 소화불량증, 12종 위암 등 모든 위장병이 생긴다고 했으니, 백개자와 행인을 곁에 두고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무로 엿을 만들 때도 백개자가 사용된다.      


소화엔 신곡‧맥아

신곡(神麴)과 맥아(麥芽)는 소화제이며 위장을 돕는데 쓰인다. 흔히 누룩이라고 부르는 신곡은 소화와 파적(破敵:묵은 체증을 고침)에 쓰는데, 약으로 쓸 때는 냄새가 날 정도로 볶아서 쓴다. 식욕을 돋우며 담이 가슴으로 치고 올라와 답답하고 장위(腸胃:창자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막혀 음식이 내려가지 못할 때 이를 해결해 준다. 

맥아는 발아된 보리, 즉 엿기름을 말한다. 인산은 맥아를 이요한 약차를 두고 이르기를, ‘보리 약차는 비위(脾胃)의 양약(良藥)’이라고 했다. 더불어 보리 약차는 오장육부에 고루 좋은 약이 되고 여름철 찬 것을 많이 먹음으로써 소화기 계통에 냉습(冷濕)이 범하여 생기는 서체(暑滯:더위 때문에 생긴 체증)를 다스린다고도 했다. 보리 약차는 보리차에 소나무, 잣나무 관솔을 넣고 달인 것을 말한다.      


<보리 약차 끓이는 법>

1. 백비탕(맹물을 끓인 것)을 준비한다. 백비탕은 조금 끓이면 오행의 금생수(金生水) 원리에 따라 비린 맛이 나지만, 오래 끓이면 화극금(火克金) 화생토(火生土) 원리에 따라 단맛(甘)이 난다.

2. 백비탕에 살짝 찧어 볶은 엿기름(麥芽)을 넣고 푹 달인다.

3. 찻물에 소나무나 잣나무 관솔 1냥(37.5g)을 넣고 은근한 불로 오래 달인 후 마신다.     


약은 가까운 곳에 있다

위에 거론한 약초나 약재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박한 것들이다. 소박하고 소소한 것들은 의외로 힘이 세다. 산삼 녹용만 약으로 쓰이는 건 아니다. 백비탕처럼 맹물도 오래 끓이면 약이 되거늘, 우리는 너무 먼 데서 약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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