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나는 솔로>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모인 ‘모태솔로’ 특집이 있었는데요. 출연자 모두 이성과 있을 때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서, 어떤 분야에든 초심자들은 특유의 어색함을 숨길 수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수많은 카메라와 함께 일주일가량을 합숙하며 내내 촬영하는 건 방송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출연을 결정하는 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연애도 방송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상대와 짧은 시간 동안 연애 감정을 느껴야 하다 보니 평소에서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실수를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며 특히나 안타까웠던 건 몇몇 출연자가 상대에게 전혀 호감을 쌓지 못하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 상황에서 굳이 왜 저런 질문을 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어색한 분위기를 만드나 의아해지는 상황이 자주 펼쳐졌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친교를 목적으로 대화합니다. 이 초기의 대화는 주로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탐색은 결국 길게 대화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는 차이를 확인하기보다 공통점을 찾아내서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공유할 만한 포인트를 단단히 뭉쳐 징검다리를 놓는 게 중요하죠.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신형철 평론가가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이라는 책에서 쓴 글입니다. 저는 이 말이 질문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거라 생각해요.
나쁜 질문은 상대의 답을 받아내더라도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 통칭합니다. 의례적인 질문, 상대의 답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한 미끼로써 떠보는 질문, 호기심이나 존중 없는 질문들이 대개 그렇죠. 나쁜 질문은 상대가 답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더라도 지루하거나 불쾌하거나 얄팍합니다. 이런 질문으로 가득 찬 대화는 면접에서 만날 수도 있고 어색한 가운데 정해진 시간을 ‘때워야만’ 하는 상황에서 날씨와 개인 신상과 연예인 관련 뉴스와 우스갯소리로만 가득 찬 대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반면 좋은 질문은 상대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대답을 기다리거나 생각하는 과정에서 일단 그 물꼬가 나온 것 자체가 반가울 수 있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니까요.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대가 지금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를 먼저 가늠해보고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며 질문을 이용해서 관계를 더욱 진전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잡지 <씨네21>에서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 대표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뉴진스의 새 뮤직비디오가 신선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마침 촬영 비하인드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나와 꼼꼼히 보았어요. 전까지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찍어본 적 없는 신우석 감독에게 뮤직비디오 창작의 전권을 거의 위임했다고 되어 있더군요. 회사를 다녀본 분이라면 이해하시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민 대표는 신우석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미팅에서 감독의 질문을 통해 서로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라고요. 둘 다 일하는 방식이나 발상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자유를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거죠. 인터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첫 미팅에서 나온 신우석 감독의 질문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뉴진스의 장기 플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전체 방향성을 알아야 현재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정리될 것 같다고. 그 질문을 받고 큰 안도감이 생겼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을 상대가 먼저 질문하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질문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약 5년 동안 질문하는 법을 트레이닝 했기 때문입니다. 잡지 기자로 5년간 일하면서 인터뷰 질문지를 2~3일에 한 번꼴로 구성했기에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과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포인트를 잡고 적절한 비율을 조절하는 연습을 했죠. 인터뷰를 잘하기 위해 다른 기자들이 쓴 인터뷰도 많이 봤지만 특히 저에게 가장 많이 도움이 된 것은 라디오를 유심히 듣는 거였어요. 인터뷰는 질문지만 잘 써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얼굴을 마주한 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즉흥적인 질문도 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롱런하는 라디오 진행자들이 그날의 게스트에게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지 들어보면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많이 나왔어요.
첫 번째로는, 닫힌 질문보다는 가능하면 열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는 거죠. 예를 들면 “배고프지 않으세요?”라고 묻기보다 “좋아하는 음식이 어떤 게 있으세요?”라고 묻는 겁니다. “오시는 길이 힘드셨죠?”라고 하기보다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단답형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질문을 계속 하다 보면 당연히 대화가 뚝뚝 끊어지게 되는데 초면인 상황에서는 이 침묵의 시간을 못 견뎌서 자꾸 무리하게 됩니다. 열린 질문을 한다면 상대의 대답이 길어질 수 있고 자연히 상대의 입으로 제공되는 정보도 많아집니다. 그러면 그 답에서 힌트를 얻어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가 쉬워지죠.
두 번째로는, 상대가 최근 자랑하고 싶을 만한 일이나 자부심을 느낄 만한 포인트를 초기에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지금 너무 예쁠 때지요? 어떨 때 가장 예쁘게 보이세요?”, 최근 승진한 사람이라면 “승진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세요. 비법을 좀 알려주시죠.”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근황을 알기 어렵다면 눈에 띄는 옷이나 전자기기, 소지품으로 취향을 칭찬하면서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겠죠. 핵심은 상대가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일을 꺼내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이것은 일견 너무나 상식적으로 들리지만 대화 기술이 없거나 배려심이 부족하거나 자기 어필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중요한 일부터 말하느라 다른 사람의 좋은 화제를 먼저 꺼내어줄 여유가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상대방의 최근 성취나 회복된 좌절의 과정에서 겪었을 법한 기분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결과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고 저는 느낍니다. 왜냐하면 타인은 서로의 결과만 보고 과정이 순탄했을 거라고 쉽게 넘겨버리거든요. 그런 숱한 오해들 속에서 당사자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자기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누구든지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제가 선생님이었다면 그때 굉장히 기쁘면서도 불안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떠셨어요?” 같은 질문을 하면 상대는 조금씩 속내를 꺼내기 시작할 겁니다.
네 번째로는, 연령대를 고려하는 겁니다. MZ 세대의 특징이니 뭐니 하는 세대 차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화를 공유했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선호하는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같은 책이 백만 부 이상 팔리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자수성가형 인물을 영웅담의 전형이라고 이해하던 세대는 과거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걸 오히려 반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이야기 같은 것을 남이 묻기도 전에 꺼내는 경우가 많아요. 전쟁 직후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했기에 특히나 가난에 대해서는 숨기고 싶은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지요. 그러나 30대 이하의 세대는 다릅니다. 결함 없는 주인공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를 주된 주인공의 내러티브로 읽어왔고 소년등과가 축복이라고 믿으며 가난이 부끄러운 흠이라고 생각해온 세대는 윗세대와는 고난을 마주하는 반응이 같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힘들었던 이야기보다 현재 주목받는 강점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합니다. 개성에 대한 욕망이 가장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우위를 보이는 장점에 대해 어필하길 원합니다. 아직은 전성기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이야기보다 미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합니다. 이러한 세대 차이를 이해한다면 나이를 참고해서 질문을 하는 형태를 바꿔볼 수 있겠죠.
라디오를 들으며 편안하게 질문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잘 쓴 인터뷰 기사를 참고해서 기사 쓰는 연습을 하던 저는 이제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전업 작가가 된 뒤로는 새 책이 나올 때 기자에게서 질문을 받거나 강의를 할 때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게 되었죠. 주로 질문하던 사람에서 주로 답하는 사람이 되면서 새삼 느낀 게 있습니다. 질문을 듣다 보면 명확히 알게 된다는 걸요. 이 사람이 저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지를요. 저에게 호감이 있는지, 얼마나 진지하게 자기의 일이나 고민을 대면하는 사람인지 느낍니다. 기억에 남는 대화 중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편견을 공고히 하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질문이 반드시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좋은 질문이란 결국 호기심에서 창발하는 것인데, 호기심은 상대에 대한 호감이자 존중에서 나오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존중할 수 있다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으면 좋은 대화가 가능하며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관계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글. 정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