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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Mar 29. 2019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패키지 투어

하와이 허니문 이야기 (1)

정신 차리고 보니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이었다.

결혼식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 상태로 신랑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 메이크업을 지우고 샤워를 했다. 신속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후 짐을 싣고 시댁으로 갔다.(시댁은 공항이랑 가까운 부천이다) 시댁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아버님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 '드디어 가는구나 하. 와. 이'


나는 워낙에 자유로운 여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일을 할 때는 계획적으로 하지만 여행만큼은 세세한 계획 없이 비행기 티켓과 숙소만 예약하고 무작정 떠나는 스타일이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액티비티를 즐기기도 했다. 때로는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그날의 여행코스를 생각해보고 움직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호텔에서 늘어지게 쉬다 피트니스를 간다던지, 저녁 느지막이 재즈바를 찾아가곤 했다. 이런 내가 패키지여행을 해봤을 리가... 


3개월 만에 결혼 준비를 하며 어쩔 수 없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패키지여행을 선택하게 됐다. 여행 준비 기간이 넉넉지 않아 항공권과 숙박 비용이 엄청 비쌌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니문 기간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낀 극 성수기였던 것.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는 것이 그나마 저렴하게 가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패키지여행을 가게 됐다. 


신랑과 나는 전날 3시간 남짓을 자고 예식을 치른 터라 비행기에서 완전 기절 모드였다. 늘 그렇듯 기내식 줄 때면 일어나 먹고 또 자고, 간식 줄 때도 마찬가지. 덕분에 금세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을 발견했다. 가이드가 공항 앞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는 것. 항상 무거운 짐을 끌고 공항버스에 메트로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해왔었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편리함이었다. 가이드와 함께 차로 호놀룰루 시내를 한 바퀴 돌며 대략적인 랜드마크 위치를 소개받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랍스터 킹'이라는 맛집에 가서 랍스터와 새우 요리 위주의 식사를 했는데 해산물 킬러인 나에겐 정말 만족스러운 하와이에서의 첫 식사였다. 그때까진 좋았다...


하와이에서는 바닷가재나 새우를 원없이 먹고오길 바란다


식사 후 가이드는 여행자들을 모아놓고 투어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 포함 세 커플 정도 됐던 것 같다) 우린 분명 한국에서 투어 일정을 다 정하고 왔는데, 이 투어는 이래서 별로고 저래서 별로다. 그래서 다른 투어들을 추천했다. 그냥 딱 봐도 한 번에 여러 커플 묶어서 투어 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가이드한테 남는 게 많은 상품을 팔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내 성격대로 투어 일정을 하루에 다 몰고 나머지는 다 취소했다. 결국 가이드의 불편한 심기를 마주하며 딱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일정은 전부 자유일정으로 돌렸다. 다행히 신랑도 나와 의견을 같이 해줬다. 


다음날, 하루 종일 가이드와 함께 패키지 투어 일정을 보냈다. 호텔에서부터 와이키키 비치, 다이아몬드 헤드, 카할라 고급 주택가, 한국지도마을, 하나우마베이, 블로우 홀, 마카푸 포인트, 마카다미아넛 농장과 돌 파인애플 농장 그리고 와이켈레 쇼핑몰까지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이 많은 일정을 하루 만에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운전을 하거나 가이드처럼 설명을 한건 아니지만, 결혼식과 장거리 비행의 피로 때문인지 버스에 타면 졸고 내려서 잠깐 보고 또 타서 졸기를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핸드폰 사진첩에는 주요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들은 많이 있다. 패키지 투어가 아니었으면 없었을 사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서 뭘 느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운 점이다.


'그놈의 노니... '

최근에 건강식품으로 핫했던 노니가 하와이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은 즉 하와이 노니가 최고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버스에 타기만 하면 노니 예찬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노니 판매점. 사실 노니만 파는 것은 아니고 하와이 커피부터 건강식품, 마카다미아넛 등 기념품을 파는 장소였다. '시골 한 구석에 다 쓰러져가는 컨테이너로 지은 저곳이 하와이 정부에서 인정해준 노니 판매처라는 말을 우리 보고 믿으라고?'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부모님 선물로 여기서 노니를 왕창 사서 가지고 간다고 한다. 많게는 천만 원 치까지 사가는 부부도 있었다고 하는데... 믿어야 할지, 믿어도 그걸 대단하다 여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신랑과 나는 그냥 헛웃음만 나왔고 그 컨테이너에서 아무것도 안사고 빈손으로 나온 유일한 부부였다. '후... 이제 저 가이드의 심기 불편한 눈초리를 조금만 견디면 호텔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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