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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Mar 27. 2019

결혼은 처음인지라

리허설 없는 ‘쌩’ 방송, 본식 이야기

결혼식 바로 전날 신랑은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때부터 우린 부랴부랴 신혼여행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식날 밤 비행기로 출국 예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부은 얼굴로 메이크업샵으로 향했다. 뭐가 이렇게 정신없고 바쁜지 피부 관리는커녕 뾰루지만 하나 더 올라온 채로 갔다. 다행히 샵에서 마스크팩을 먼저 붙여줘서 죽어가는 피부에 심폐소생술 정도 했던 것 같다. 


스튜디오 촬영 때와 같은 샵에 같은 실장님이기 때문에 조금은 덜 낯설었고 편안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내 얼굴에 주의할 점을 상기시켜 드렸다. (이분에게 난 매일 같이 만나는 수많은 예비신부들 중 한 명일 테니까 기억 못 하는 게 자연스운거라 생각했기에) "스튜디오 촬영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쌍꺼풀이 많이 진해서 아이라인을 전체적으로 그리면 쌍꺼풀이 삼켜버리니 아주 얇게 꼬리만 빼주시고 눈썹만 너무 진하게 그리지 말아 주세요. 나머진 선생님이 알아서 예쁘게 해 주실 거라 믿어요"라는 심플하다면 심플한 그리고 무섭다면 무서운 주문을 날리고 의자에 앉았다. (이 부분은 https://brunch.co.kr/@daeunbaek/6  에서 언급한 Tip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촬영 때와는 다르게 (스튜디오 촬영은 평일에 했다) 본식날은 메이크업샵 의자가 신부들로 꽉 찼다. 나란히 앉아 각자의 선생님에게 메이크업을 받는데, 이때 내 메이크업을 담당해주시는 선생님이 소위 짬(?)이 높을수록 왠지 모를 우쭐 감이 든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 더 좋은 화장품을 쓰는 건 아니지만, 경력이 많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의 얼굴을 만져봤을 거란 얘기고 그 말은 즉슨 어떤 얼굴을 들이대든 대처능력(?) , 예쁘게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 거란 말이다. 메이크업은 실장 이상의 직급을 가진 선생님께 받는 걸 권하는 이유에서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내 본식 메이크업은 성공적이었다.(내 기준에서:)


반면에 신랑 메이크업은 매우 매우 간결하다. 기초화장에 눈썹과 약간의 입술색이 전부다. 괜스레 신랑에게 미안할 정도로 신부에게 투자되는 시간이 많았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배가 고파 쓰러질 거 같으니 먹어도 배는 안 나오는 고열량의 초콜릿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신랑이 구해다준 초콜릿을 입안 가득 넣고 녹여먹으며 (씹어먹으면 혹여 이에 묻을까 봐 조심스럽게 녹여먹었다:) 헤어 스타일링을 받으러 앉았다. 스드메는 특히나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을 좋아하는 나답게 헤어도 깔끔하게 5.5:4.5 정도의 올림머리에 티아라 없이 코르사주만 감쌌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서 다시 봐도 유행 없이 예쁜 스타일링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티아라가 잘 안 어울리기도 했다)


메이크업샵으로 배달된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챙겨서 예식장으로 이동했다. 모든 게 세팅된 상태로 메이크업샵을 나설 때부터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헬퍼 이모님 없이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로 예식장에 도착했다. 양가 부모님들의 복장과 메이크업을 체크해드리고, 부케와 함께 온 코르사주를 가슴에 달아드렸다. (물론 거동이 불편한 내가 아니라 헬퍼 이모님께서) 그리고 나는 곧장 신부대기실로 갔다. 이때부터 신부대기실 밖의 상황은 전혀 모른 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기억밖에 없다.  본식 준비는 내가 전담으로 했는데, 나는 신부대기실 붙박이 신세라 예식장 직원들도 축가와 반주자도 모두 신랑에게 가서 물어봐서 신랑도 멘붕이 왔었다고 한다. 


사실 난 왜 신부대기실이 따로 있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당시에는 우아하게 앉아 예쁘다는 소리를 계속해서 들으며 공주대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원에 원숭이가 된 기분도 들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는 예쁘게 웃어야 하는 상황. 물론 좋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차례대로 신부 옆에 앉아 시진을 찍는 이과정이 뭔가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겐 다시없을 결혼이지만, 다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그땐 나도 부모님 옆에 서서 하객들을 맞이하며 악수하고 인사하고 싶다. 


여차저차 결혼식은 식순에 맞게 잘 끝이 났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행복한 시간이었던 건 틀림이 없다. 연회장을 돌며 인사를 할 때 받은 축하와 보기 좋다는 칭찬들, 그리고 밥이 너무 맛있다는 칭찬은 특히 듣기가 좋았다. 하객을 초대할 때 나름대로 사람을 걸렀고, 받은 축의금 돌려받자고 전 직장까지 찾아가지 않았기에 내심 식대가 모자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했지만 딱 알맞게 나가고 채워졌다. 아쉬운 부분을 생각하면 몇 개쯤 꼬집어낼 수 있지만, 결혼은 처음인지라 누구든 아쉬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고 완벽한 결혼식은 없을 거란 걸 인정했다. 

신랑과 나, 우리 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본식 Tip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한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는 게 결혼식이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아쉬운 부분이 없을 수가 없지만,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는 게 결혼식인 것 같다. 내 나름의 아쉬운 점이 당신에게는 Tip이 될 수 있기에 공유하자면, 

- 본식날 신부는 행동반경이 매우 좁고 움직이기 어렵다. 흔히 가방순이라고 부르는 축의금을 따로 받아주는 친구를 세우지 않더라도, 결혼식날 신부와 신랑의 수족이 되어줄 친한친구를 미리 섭외해 놓는 것이 좋겠다.

- 요즘 결혼식장에 가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객들이 뒤편에 가득하게 서있다. 내 경우에도 뒤편에 많이 서있어서 앞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특히 사진으로 보기 안 좋았다. 가능하면 앞자리부터 채워 앉을 수 있도록 예식장 매니저에게 안내를 부탁하는 것도 좋겠다.

- 주례자, 사회자, 축가, 반주자 섭외를 미리 하듯이, 본식날 도움을 줄 사람들도 미리 섭외하는 것이 좋다. 축의금을 받고 정리하는 사람이나 신랑 신부 행진 때 플라워 샤워를 해줄 사람 등 필요한 부분을 미리 생각해보고 부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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