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집들이 음식, 밀푀유 나베
"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 그 집들이 음식 있잖아... 그거! "
" 뭐? 밀푀유 나베?! "
" 응, 그거 "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친구가 '그거 있잖아 그거'라고 하면 내가 알아맞히는 방식. 마치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젠 너무나 익숙한 대화방식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결혼 직전까지 룸메이트였자 가장 친한 친구와의 대화이다.
오랜 시간 함께 살다 갑작스럽게 내가 결혼을 하는 바람에 섭섭한 마음을 많이 안겨주고 헤어졌던 터라 가장 먼저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첫 집들이 손님은 나의 ex룸메이트(지금은 룸메이트가 신랑으로 바뀌었기에:)와 함께 친하게 지내온 대학교 동기 오빠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약속 시간을 정하고, 룸메가 요청한 '그 집들이 음식' 밀푀유 나베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우선 바닥에 깔 숙주 한 봉지를 담고, 켜켜이 쌓을 배추와 깻잎을 담았다. 그리고 팽이버섯, 만가닥버섯, 표고버섯 무려 3종류의 버섯과 청경채를 담았다. 모든 야채는 딱 필요한 만큼만 샀다. 맞벌이 부부에게 넉넉한 재료란 곧 미래의 음식물 쓰레기를 쟁여두는 느낌이기에... 야채 코너 아주머니께 "식구가 없어서요"를 반복하며 깻잎도 한 묶음만, 청경채와 표고버섯도 딱 세 개씩만 낱개로 스티커를 받아 붙였다. '500원, 750원, 1000원' 귀여운 가격 스티커들이 옹기종기 모이니, 벌써 장바구니가 묵직해진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샤브샤브 용 소고기를 담았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신랑이 함께하는 식탁이기에 이왕이면 더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생각으로 야채에 붙은 귀여운 가격과는 사뭇 다른 금액의 한우로 골랐다. 장바구니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내며 배를 비우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밀푀유 나베... 먹어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보기도 했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밀푀유 나베는 프랑스어 밀푀유(mille feuille, 천 개의 잎사귀라는 뜻)와 일본어 나베(なべ)의 합성어라고 한다. '천 개의 잎사귀'라는 말에 딱 맞게 배추-깻잎-소고기 순서로 켜켜이 쌓아 만드는 음식이다. 대학생 때부터 결혼 전까지 20대를 이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그런 친구들 틈에서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이란 걸 했고, 자연스럽게 학생 때처럼 자주 보진 못하지만 항상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하기에....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배추-깻잎-소고기를 켜켜이 쌓아가며 나는 정말로 이 친구들의 삶에도 축복이, 행복이, 웃을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길 기도했다. 함께 배낭을 메고 찜질방에서 눈을 붙이며 내일로 기차 여행을 하기도 했고, 눈이 수북이 쌓인 북한산을 눈사람을 만들어가며 오르기도 했다. 초조하고 불안했던 취업준비생 시절을 서로의 응원과 위로로 버티기도 했고, 재정적인 어려움과 아픈 가정사, 진로 고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나누기도 했다. 직장인이 되어 돈 좀 벌었다고 1박에 100만 원짜리 료칸을 예약하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가기도 했다. 덕분에 내 20대는, 우리의 20대는 에피소드 부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친구들이기에 요리를 하는 내 마음은 오롯이 축복뿐이었다.
내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하루 종일 집 청소를 하며 고생한 신랑을 위해 애(교)피타이져로 '게맛살 하트 전'도 만들었다. 담백한 나베 국물과 살짝 기름진 전의 조화란 마치 튀김 우동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불편한 건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돌아 봐주는 신랑이다. 이날 신랑은 친구들이 오기 전엔 청소담당, 저녁시간엔 가스 버너 불조절 담당, 저녁 먹고 난 후엔 레크레이션 담당으로 활약해줬다.
칼국수 면을 좀 사다 놓을걸 그랬다. 아쉬운 대로 냉동실에 있던 냉동 만두를 해동해 넣고 끟였더니, 맛있는 만두 전골이 되었다. 밀푀유 나베에 만두 전골까지 두둑이 배를 채우고, 설거지를 하는 타이밍에 친구들은 집 구경을 했다.
"헤이 구글 청소해" 말하면 샤오미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고 "시리야 불 꺼줘"(사실 불 꺼줘는 인식을 못해 꺼져로 명령어를 바꿔놓은건 안비밀)하면 방에 불이 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들은 신기하다고 신이 나서 로봇청소기에 '흰둥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 트렌디한 UX 기획자인 신랑 덕분에 가전만큼은 스마트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우리 집이다. 내심 속으로는 으쓱했지만 친구들에게는 늘 하던 대로 "뭐 조선시대에서 오셨어요?" 하며 장난을 쳤다.
레크레이션 담당인 신랑의 진두지휘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켜서 just dance라는 춤추는 게임도 하고, wii를 연결해서 땀 흘리며 양궁, 탁구, 검도, 그리고 격투(?)도 했다. 열겜을 하다보니 집안이 후끈후끈해져 신혼집 입주 이후 처음으로 에어컨도 켰다. 먹은 음식을 다 소화시킬 만큼 우리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놀았다. (사실 야식으로 치킨을 또 시켜먹었다) 그날의 영상을 보니, 여전히 우리는 즐거워했고 대학생 시절과 다름없었다.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신랑의 모습도 매우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