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좋아하게 만들기
신랑과 한창 연애를 할 때 물었다. "못 먹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 있어?" "없어. 다 잘 먹어. 너랑 먹으면 다 맛있어." 라며 모범 답안을 말하던 그는 내가 다그치자 한 말이 "카레.."였다. "그렇구나"라고 대답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왜?'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카레는 함께 먹진 못하겠다 싶었다.
시어머님과 단둘이 쇼핑을 간 적이 있었다. 백화점 식당가에서 점심메뉴를 고르는 도중에 어디선가 카레 냄새가 났고, 동시에 어머님과 나는 카레를 먹자고 서로 말했다. 참 신기하게도 시아버님도 카레를 안 좋아하셔서 어머님도 남편과 아들이 카레를 안 좋아하니, 집에서 카레를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셨다. 어머님과 나는 그렇게 카레를 맛있게 먹으며 "이 맛있는 걸 왜 안 좋아하나 몰라" 하며 수다를 이어갔다. 그렇게 카레에 대한 회포를 풀었다.
몇 달이 지났는데, 뜬금없이 신랑이 카레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이 사람 카레는 먹어보고 먹고 싶다고 하는 건가' 싶었다. 이유인즉슨 회사 동료가 카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카레의 기원부터 카레의 종류 나라별로 요리하는 방법별로 다양하다며 집에서 맛있게 자주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회사 동료는 남자인데 그 사람은 오뚝이 카레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다양한 카레를 접하게 되고 맛있게 먹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카레가 먹고 싶어 졌다고 한다.
나랑 다르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사람이다. 가령 어느 가게에 파는 많이 달지 않은 뚱뚱한 마카롱이라던지, 미더덕이 많이 들어간 해물탕처럼 말이다), 평소 먹고 싶은 게 있다는 말을 잘하지 않던 신랑이기에 모처럼 먹고 싶다는 메뉴가 생겨서 반가웠고 하필 그 메뉴가 내가 좋아는 카레였기에 더욱 반가웠다. 정성껏 만들어 카레의 세계로 입문시켜 주겠다는 각오로 오늘 저녁을 차린다.
달달함과 감칠맛을 좋아하는 신랑을 생각하니, 바로 양파를 듬뿍 볶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한 버터 한 스푼과 함께 양파의 색이 갈색이 돌 때까지 볶았다. 일명 '캐러멜 라이즈' 작업을 한셈이다.
보통은 깍둑썰기로 된 카레용 돼지 안심을 샀겠지만, 그냥 오늘은 왠지 길쭉하게 썬 고기를 쓰고 싶었다. 어차피 부위는 똑같으니까. 우리는 신혼부부로 단란한 2인 가족이다. 그래서 보통 고기 종류를 사면 3등분으로 소분해서 1/3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쟁여둔다. 오늘 사용한 이 길쭉하게 썬 돼지안심이 훗날 잡채에 들어가 있을지, 짜장에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 양파는 이미 들어갔고 어떤 야채를 더 넣을까 하다가 신랑이 좋아하는 버섯을 집어 들었다. 모양을 좀 내보려고 당근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은 방울토마토 4알도 꺼냈다. 모두 썰어서 카레에 퐁당 넣을까 했지만,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곁들임 야채를 그릴에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던 신랑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 번거롭지만 따로 그릴에 구워 준비했다.
보통 싫어하는 음식의 이유는 그 음식이 입에 안 맞다거나, 음식에 얽힌 안 좋은 기억이 있다거나 혹은 알레르기가 있는 정도라 생각했다. 그리고 신랑에게 카레는 첫 번째 이유인 입에 안 맞았던 경험이었을 거라 추측했고, 달달한 감칠맛을 좋아하는 것과 구워 먹는 야채를 좋아하는 등 신랑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같은 동기에서 닭 반마리도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고기가 닭이라는 신랑이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울 때 장점은 기름이 쫙 빠진다는 점이고, 단점은 수분까지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에어프라이를 몇 번 사용하고 깨닫게 된 교훈이다. 그래서 어차피 기름은 다 뱉어낼 것이니, 수분 보호를 위해 올리브 오일을 듬뿍 발라 구웠다. 그랬더니 정말 올리브 오일을 포함한 닭기름은 쫙 빠지고 고기는 촉촉했다.
준비한 요리들을 나름대로 예쁘게(?) 담아내고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카레를 싫어하던 신랑이 뜬금없이 카레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오늘의 요리. 요리를 하는 내내, 어떻게 하면 신랑의 싫어하게 되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꿀 수 있을까? 신랑이 평소에 좋아하는 요소들 중 카레에 접목시킬 건 없을까?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당신도 좋아했으면 좋겠어' 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그렇게 신랑을 처음 만난 지 292일 만에 우리는 처음 함께 카레를 먹었다.
진심은 언제나 전해지는 법. 신랑은 아주 맛있게 모든 그릇을 비우며 말했다. "인생 카레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카레였어. 카레 자주 먹자"
생각해보면 어릴 때 싫어했던 음식이 나이가 드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갑자기 좋아질 때가 있다. 내 경우엔 어렸을 땐 생선을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지금은 생선을 포함한 온갖 해산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계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생선의 맛을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신랑에게 카레도 그럴 수 있다. 그냥 갑자기 카레가 먹고 싶어 지고, 입에 맛지 않았던 카레의 맛이 좋아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해주고 싶고, 도움을 주고 싶은 게 사랑이 아닌가! 카레를 좋아하게 된 계기에 내 요리가 한몫을 했다는 사실이 카레 마니아이자 신랑의 식탁 메이트인 내 어깨를 왠지 모르게 으쓱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