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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Mar 04. 2022

내 나이 서른, 건축주가 되었다

꿈꾸던 귀촌을 위해 기꺼이 건축주가 되기로 용기를 내었다



귀촌 후, 영덕에서 살 집은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전원주택으로 정한 후에도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촌집'을 매매하고 리모델링해서 살아볼까? 땅을 사서 집을 지어서 살아볼까?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비용적인 허들이 태산 같아서 아직도 엄두가 나질 않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영덕에서 토지 잔금을 치르던 같은 날 해 질 녘 무렵, 친지의 소개로 알게 된 건축사가 영덕으로 와서 우리 땅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이면지에 우리가 살 집의 모습을 휘리릭 날려 그 자리에서 스케치를 해주셨고, 우리 부부는 토지를 매입한 그날 저녁 건축 설계사무소와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건축 설계/감리 계약서


사실 건축 설계/감리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에 이미 건축사와 두 번의 미팅을 가졌었다. 첫 번째 미팅은 건축사의 서울 성북동 사무실에서, 두 번째 미팅은 우연이었지만 건축사를 소개해 주신 친지의 집 건축현장에서였다. 밀양에서 집을 짓고 계신 친지의 건축현장을 몰래(?) 염탐(?)을 하러 갔는데, 마침 현장 마무리 점검을 하러 건축사가 오셨던 것이었다. 덕분에 집 설계에 대한 설명이나 자재에 대한 설명을 건축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건축 설계사무소와 계약 전까지 우리 부부는 건축을 포기할까?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집을 지어볼까? 등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다. 우리 부부의 예산은 2억이라고 말씀드렸고, 건축사분께서 우리에게 준 설계 초안은 오로지 건축/시공 비에만 2억이 들어가는 안이었다. 이외 부대비용(성토, 토목, 행정비용 등)은 별도였다. '아, 이거 안 되겠구나' 했다. '역시 집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후 중년 혹은 노년에 짓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건축사분께서 많은 용기를 주셨다. 우리 나이대의 젊은 건축주는 정말 드물다고, 우리가 가진 한정적인 예산으로 좋은 집을 짓는 건 본인의 숙제로 가져가겠다고, 당신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열심히 꿈만 꾸시라는 달콤하면서도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렇게 같이 우리가 살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건축시공 + 모든 부대비용 일체의 예산 2억으로 한정하고,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내 남편 Paul은 우리가 겪을 앞으로의 과정을 '꿈 짓기'로 칭하자고 했다. 다음 편에서는 '꿈 짓기'의 시작. 어떤 집을 꿈꾸는지, 우리가 꿈꾸는 집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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