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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Mar 07. 2022

꿈 짓기의 시작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정의하다



처음 건축사 미팅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인터넷으로 서치한 집 사진 몇 개와 요구사항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들고 갔다. 준비해 간 레퍼런스는 기본적인 박스 형태의 네모 반듯한 집에 세모난 박공지붕의 집 사진들이었고, 요구사항이라고 들고 간 것은 방 3개, 욕실 2개, 거실, 주방, 오피스 공간 정도의 필요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건축사는 어떻게 이렇게 상상력이 없고 집을 짓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어 보이냐는 타박 아닌 타박을 주었다. 


그렇다. 건축사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적은 예산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미션 때문에 꿈꾸는 집에 대한 스스로의 한계점을 쳐놓았던 것이다. 평소에도 신랑인 Paul 보다 나는 특히나 포기가 빠른 사람이고,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편이기에 가장 많이 짓는 박스 형태의 집, 가장 흔한 아파트 평면도의 구조가 가장 저렴할 거라 생각했고 그 틀에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맞추려고 하고 있었다. 


귀촌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살기 위함이었고, 무리해서 우리의 집을 지으려는 목적도 마찬가지였는데 한정적인 예산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 너무나도 빨리 많은 것들을 내려놓으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즐거운 상상을 많이 하세요"라는 건축사가 준 숙제를 안고 돌아온 미팅이었다.




어떤 집에 살고 싶다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 것일까? 내가 꿈꾸는 집은 어떤 집일까? 방 몇 개로 한정 짓지 않고 공간으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1. 야외와 실내가 유기적인 공간

우리가 구입한 땅은 261평으로 꽤 큰 규모이다. 건폐율이 20%인 점을 생각해보면 마당이 매우 넓은 집이 될 것. 서울에서는 가져본 적 없는 마당을 잘 활용하고 싶었다. 마당과 집이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이었으면 하는 이유는 곧 태어날 우리 아이와 분양할 강아지가 함께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다 언제든 집으로 들어와 쉴 수 있는 그런 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다. 


2. 단순 서재가 아닌, 홈 오피스가 있는 공간

신랑과 나는 귀촌과 동시에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꿈꾸고 계획하고 있다.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PC만 있으면 굶어 죽진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결정한 귀촌이기에 우리 부부에게 있어선 홈 오피스 공간이 밥벌이 공간이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단순히 책꽂이와 책상이 나란히 있는 서재의 느낌이 아닌, Work와 Vacation의 합성어인 '워케이션'이 실현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휴가를 온듯한 공간에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업무환경이 세팅된 곳. 그런 공간을 그려본다. 부부 각자가 PC를 이용하여 독립적으로 업무를 하기도 하고, 또 함께 토론과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 주거 공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업무 공간을 가지고 싶다.


3. 아이의 자립성을 키워주고 정서적으로는 지지해줄 수 있는 공간

우리 부부는 신기하게도 2세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는 편이다. 아직 함께 아이를 함께 키워본 적은 없지만, 이제 곧 태어날 우리 아기를 어떻게 키우며 건강하게 성장시킬지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우선, 신랑과 나는 둘 다 독립적인 성격이다. 부모에게 의존하며 자라지도 않았고, 일찍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았기에 우리 아이도 자립성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신생아 때부터 분리 수면을 시도할 계획이고,  우리 부부의 취향이 묻어난 거실을 아이의 놀이공간으로 알록달록한 핑크퐁과 뽀로로에게 내어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아이를 외롭게 할 생각은 더더욱 없기에 아이의 자립성은 키워주되 언제든 정서적으로 아이를 안정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4. 진정한 식(食) 구(口)가 되는 다이닝 공간

영덕으로 귀촌을 하게 되면, 아마도 우리 집이 가족들의 모임 장소가 될 것 같다. 친정 아빠와 남동 셋의 내외 그리고 조카들까지. 다 모이면 대가족이 된다. 거기에 우리 시부모님도 은퇴 후 영덕으로 합류하실 예정이기에 큰 다이닝 공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한 큰 의미를 두기에 더없이 중요한 공간이 될 것 같다. 식(食) 구(口)란 함께 모여 먹는 사람들을 뜻하는 게 아니겠는가! 


5. 부부의 취미가 소박하게 스며든 공간

우리 부부는 사실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나는 역마살 낀 방랑자 같은 스타일로 아웃도어 활동을 굉장히 좋아하고 신랑은 집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한 집돌이 스타일이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하루에 한 번 마트라도 다녀와야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지만, 신랑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갈수록 더더욱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렇게 반대인 우리 부부에게도 공통적인 취미는 존재하는데, 몇 안 되는 공통 취미이기에 더욱이 소중하다. 그건 바로 좋은 사운드와 화질로 영화를 보고 음악 듣는 것이다. 그저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신랑을 만난 후 4K 고화질 영상에 눈떴고 그 이후로  Blu-ray Dolby vision, Dolby atmos 등 여러 설명을 들며 좋은 화질과 사운드로 보고 듣는 것의 즐거움을 더해갔다. 


이외에 뱃속에 있는 우리 아가와 분양할 강아지. 우리 네 가족이 새 집에서 살면서의 추억을 세월에 흐름에 맞게 고스란히 남길 수 있는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의 시그니쳐 존이라고 해야 할까. 그곳에서 매년 사진으로 추억도 남기고, 유튜브나 여러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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