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lmost t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ol K Jan 31. 2018

카르페 디엠





< 와일드맨과 함께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




 

 "캬아~ 바로 이 맛이지!!!"


 톡 쏘는 특유의 청량감이 식도를 타고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메마른 모래 위를 걸을 때마다 흩날리던 먼지때문에 이미 코는 물론 온몸이 먼지 투성이었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 마시는 맥주 한잔에 그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옆에 자리를 깔고 잤지만, 주말이 아니라 인적이 드물어 늦잠까지 자고 출발할 수 있었다. 늦잠 잔 것을 반성이라도 하듯 나와 와일드맨은 빠르게 내달렸는데, 그래서인지 점심을 먹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에도 뒤쳐진 썬더버니와 위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끼리만 닥터칩의 집에서 가져온 캔맥주를 차갑게 흐르는 개울에 잠깐 두었다가 시원해졌을 때쯤 꺼내어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오레곤의 산길을 잇는 트레일이었지만, 마치 해변처럼 쭈욱 뻗어 있는 모래사장을 걷는 길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짜증이 날 정도로 갈 길이 바쁜 내 발목을 잡았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푹푹 빠지는 모래길을 헤쳐나가기 위해 평소보다 두배의 힘을 써야만 했고, 덕분에 속도를 내지못해 진도가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걷는 내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그 아름다운 풍경 덕분이었다. 오래전 화산활동이 있었던 곳이었는지 옵시디언(흑요석)이 트레일 주변으로 널려있었는데, 다양하게 깨어진 단면으로 영롱하게 빛을 반사하는 그 모습이 주변의 환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검은 옵시디언 무덤이 뿜어내는 무지개 색 빛의 향연은 걷는 자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Obsidian fall'에 들려 잠깐의 불필요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 흑요석이 즐비한 트레일은 그 영롱한 빛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



 흑요석과 현무암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의 화산지대를 지나 도착한 호수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예정된 50km 지점에서 5km 정도 못 미친 곳이었지만, 물을 구할 수도 있고 뒤쳐진 썬더버니와 위키도 기다려야만 했기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날이 저물자 스산하게 불던 바람은 조금 더 거칠게 불기 시작했고, 어느새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저 멀리 불빛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다행히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보이진 않아도 그 소리의 주인공이 썬더버니라는 걸 우린 알 수가 있었다.


 

"일어나요 HBG~! 해가 중천에 뜨겠어요!!"


 이른 시간 단잠을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이미 배낭을 꾸리고 떠날 채비를 마친 위키가 우리를 위해 마실 물을 정수해 두고 있었다. 예상에 없던 'Bend'에 들렸을때 식량을 보충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곧 지나게 되는 'Sister'란 마을로 보급품을 보내놓았던 위키는 어쩔수 없이 그곳을 들려야만 한다고 했다. 보급품만 찾고 바로 복귀할 거라 일찍 출발한다고 하길래, 별다를 것 없이 곧 보자는 인사를 대충 하며 떠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때만해도 이 모습이 트레일에서 보는 위키의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위키를 보내고 아침을 먹은 후 우리도 빠르게 길을 나섰다. 오늘은 가는 길에 있는 'Big lake youth camp'를 들리기로 했다. 그곳에 보급품을 보낸 나와 썬더버니, 그리고 친구가 찾아오기로 한 와일드맨까지 모두가 들려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 24km 정도만 가면 되는 거리 었기에 가능한 점심 전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썬더버니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그곳에서 하이커들을 위한 식사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했기에 서두를 이유는 충분했다. 물론 그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보급품 속에 있을 고추참치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었다.

 공짜 점심을 먹겠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걸은 우리는 오후 한 시경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때마침 도착한 와일드맨의 친구 덕분에 와일드맨은 인근 마을 'Sister'로 외식을 하러 나설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음 위키도 데리고 오는 건데 하며 서로 머리를 탁 쳤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와일드맨을 배웅하고 나와 썬더버니는 보급품을 찾기 위해 캠프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름이 뭐죠?"

 "네, 저는 썬더버니구요. 이 친구는 쿨케이예요. 아... 전 'Kim'이고요 얘도 'Kim'이에요"


 보급상자를 찾는 직원에게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하는 썬더버니와 나는 이름과 성이 같았다. 썬더버니의 이름이 'Kim', 나는 성이 'Kim'이라 늘 우리가 결혼하면 썬더버니의 풀네임이 'Kim Kim'이 된다며 깔깔대며 웃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결혼을 해 남편 성을 따라 'Kim Sorensen'이 되었지만...


 "당신이 썬더버니에요? 와! 우리는 늘 궁금했어요. 도대체 이 곳에 소포가 6개나 도착해있는 하이커가 누구인지를... 도대체 썬더버니가 누구이길래 이렇게 많은 소포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왔을까 하고요. 혹시 유명하신 분이에요?"


 6개?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물론 썬더버니가 이곳에 오기 전 자기 앞으로 소포가 좀 와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그 조금이 6개나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직원의 오버에 수줍은 듯 그냥 친구들이 보내준 거라 얼버무린 썬더버니였지만, 그녀는 우리나라의 파워블로그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는 블로거였다. 도착한 소포들도 다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보내준 일종의 선물이었다. 농담조로 짐을 옮기는 대신 선물 일부를 나누기로 합의하고는 그녀의 짐 6개와 내 짐 하나를 가지고 하이커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배낭과 짐을 다 두고 캠프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기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아마도 늘 이맘때쯤 진행되는 교회 행사 때문에 이곳을 지나치는 하이커들도 따뜻한 점심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듯 했다. 거지 행색의 하이커들 말고는 대부분이 말끔한 차림의 충실한 하나님의 양들로 보였고, 식당 중간의 현수막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만에 맛 본 타코를 잔뜩 먹고 다시 돌아온 후 포만감에 솔솔 잠이 오기도 했지만, 썬더버니가 박스를 하나하나 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과자나 식량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그 많은 음식들을 다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보내준 친구들을 위한 사진을 찍은 후 필요한 것만 챙기고는 남은 것은 다른 하이커들에게 나눠주었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쉐이드와 포고는 물론, 시기가 맞아 남쪽으로 향하는 'Southbound hiker'들도 썬더버니 친구들의 선물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받은 보급품 중에서 필요한 것만 챙기고는 남은 것들을 나눠주었는데, 주영 선배님께서 센스 있게 넣어주신 소주를 발견한 포고가 그게 뭐냐고 물어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한창 포고에게 소주는 한국의 술이고 값은 싸지만 훌륭한 술이라고 설명을 하는 와중에, 이 곳에 모여있던 하이커들 중 동양인 한 명이 "한국인이세요?" 하고 나를 향해 물었다. 우린 서로가 일본인인 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주로 인해 한국인이었음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리고 내가 트레일에서 PCT를 걷는 한국인 하이커를 처음 본 순간이었기에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김기준입니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고 김기준 씨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2007년에 AT를 중주한 적이 있는 베테랑 하이커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남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컨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까지 종주를 해서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AT, PCT, CDT를 다 종주한 사람들을 칭하는 말)을 꼭 달성할 거라는 그는 이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인터뷰에 쑥스럽기도 했지만, 같은 길을 걷는 한국인을 만났다는 것과 한국말을 실컷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시종일관 웃으면서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인터뷰를 함께 했다. 옆에 있던 썬더버니도 소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며 달콤한 외출을 떠난 와일드맨을 기다렸다.

 와일드맨을 만나러 온 친구는 그가 해병대를 전역 후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가게 된 교도소에서 만났다는데, 여기까지 찾아오는 걸 보니 참 각별한 사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와일드맨이 교도소를 가게 된 연유가 기구하지만 그가 악한 사람이 아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그가 교도소를 다녀온 적이 있다는 걸 밝힐 수는 있지만, 그 사유는 프라이버시 때문에 얘기할 수는 없다.


 김기준 씨와는 서로 끝까지 파이팅하자며 따뜻한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어느덧 시간은 늦은 오후가 되어 우리가 서둘러 떠날 채비를 마쳤을 때쯤 도착한 와일드맨과 함께 바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리가 'Big lake youth camp'를 들린 사이 이곳을 그냥 지나친 42가 약 14km 더 진행한 곳에서 야영을 할 것이라고 통화를 했다는 와일드맨의 말에 발길을 재촉했다. 며칠 못 봤다고 그새 42가 보고 싶었던 것도 있고, 그와 쉐프 그리고 벌쳐 간의 삼각관계의 결말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는 져 이미 주변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깜깜해졌지만, 여전히 남은 거리를 좁혀야만 했기에 우린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계속 걸었다. 웬만해서는 야간 운행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Big lake youth camp'를 떠난지 4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약속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기대했던 42를 만날 수 없었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를 불러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그 곳에서 우릴 반겨준 건 42가 아닌, 먼저 지나간 하이커들이 표시해 둔 2,000mi(3,218km) 지점 표시가 전부였다. 허탈함을 느꼈지만 42가 살아만 있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기에 길었던 하루를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더더욱 깊어지는 밤소리에 몸은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예전 친구와의 만남에 여운이 남은 듯한 와일드맨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급받은 소주를 함께 했다. 물론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추참치도 함께. 비록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서로 나누었던 대화의 온도 만은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  잠시동안 헤어졌던 42와의 재회. 그는 물론이고 우리도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



 "42~~!!"

 "오 마이 갓. 너무 그리웠어 친구들!"


 저 멀리 호숫가에 앉아 있는 42를 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끌려 배낭 때문에 무거운 몸을 날려서 그를 부둥켜안고 말았다. 뒤따라온 썬더버니와 와일드맨도 덩달아 달려와 안는 바람에 무게중심을 못 이겨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기도 했다. 옆에 앉아서 같이 점심을 먹고 있던 데이드리머와 다른 하이커들은 무슨 장면이 연출되는 건지 의아한 얼굴로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우정이라는 것을 이 길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또 이 길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걷기 전에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 생각지도 못했었다. 단순히 위대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거닐며, 행복이라는 게 뭘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도 찾고 이 길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느끼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었다. 혼자 시작한 길에서 서로 문화가 다른 파란 눈의 친구들을 만나 스스로를 가족이라 칭하며 함께하는 길이 될 줄은 몰랐었는데,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함께하며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만약 이 길에 서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알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 그저 이전에 알고 있었던 느낌만으로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별거 아닐 수 있는 경험일지라도,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더 넓고 깊은 생각의 폭을 가질 수 있겠지.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결정과 그 행위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나 사회에서 규정한 틀에 갇혀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그것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외쳤던 '카르페 디엠' 이란 말처럼, 어쩌면 그 틀에 갇혀 마땅히 누려야 할 낭만과 자유 혹은 꿈까지 포기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잣대는 다를 수 있다. 그 잣대도 그것을 규정하는 당사자의 경험과 생각이 기준이 될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규정한 잣대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르다와 틀린다의 차이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42와 재회하고 우리는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마저 걸었다. 우뚝 솟아 있는 'Mt.Jefferson'을 머리 위에 두고, 깊이 우거진 숲 속에 이끼가 촉촉히 낀 길을 걸으며 가끔 스며드는 포근한 햇살에 눈부셔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 길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간 후, 내가 어떤 인생의 길을 걸을지 그 불확실성에 가끔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기가 싫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내 감정에 너무 미안했다.


 나는 지금 이 길 위에 서있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냥 내가 거닐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느끼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간 계약 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