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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Mar 28. 2018

착각




 탱크의 가족들은 친절했다.

 탱크의 아들인 라이언도 올해 PCT 캘리포니아 구간을 걸었고, 또 희종, 희남이와 함께 걸었던 적이 있어 그들의 안부를 내게 물어보기도 했다. 다들 추위에 지쳐서인지 집에 가자마자 한 일은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는 것이었고, 탱크 가족의 배려로 우린 따뜻한 물에 샤워를 오랜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다. 다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제대로 된 점심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탱크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저녁을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와인과 스테이크, 피자, 샐러드 등을 부족함 없이 사고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했다. 다들 트레일에서 건조 식량에 물만 붓는 정도의 요리 실력이었지만, 굽고 데우기만 하면 끝나는 한 끼 저녁을 준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각자 맡은 요리를 제시간에 내놓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 라이언이 아일랜드 식탁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세팅을 하고 있었다. 디제잉 기기였다. 갑자기 웬 디제잉 기기를 꺼내 놓는 건지 의아했지만, 이후 기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사운드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둥둥 거리며 울려 퍼지는 비트에 다들 어깨가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해피아워는 젊음에 맞는 춤 실력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사이 요리는 하나씩 완성되어 모두가 함께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고, 와인이 한두 잔 섞이기 시작하자 사운드는 점점 더 강렬해졌다. 탱크는 물론 그의 와이프 캐리도 흥에 겨워 머리를 흔들었고, 낯선 분위기에 움츠려있던 나도 조금씩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올 만도 했지만, 그런 걱정보다는 지금의 분위기를 맘껏 느끼고 싶었다. 아들과 아들 나이 때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가 좋았고, 신기하면서 부럽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갔으면 좋겠다란 생각도 함께...



< 다시 돌아온 트레일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울긋불긋 수줍은 아가씨 얼굴마냥 붉게 물들고 있었다 >



 두 시간을 차로 이동해 다시 트레일까지 우리를 배웅해 준 탱크에게 우린 조금씩 돈을 걷어 성의를 표현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받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는 미안함에 연락을 못할 수 있다고 하자 그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라이언도 우리와 함께 데이 하이킹을 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탱크는 라이언도 데리러 올 겸 내일 우리가 지나갈 'Chinook pass'로 트레일 매직을 나올 거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감동을 주는 탱크와 깊은 포옹을 나누고 트레일로 들어서려는 찰나, 저 앞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오는 게 보였다. 셰프와 벌쳐였다.

 어색함이 컸지만, 반가움이 더 컸기에 우린 크게 셰프의 이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은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더 이상 벌쳐와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42도 태연한 척 그들과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들을 대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는지 오랜 시간 함께 있질 못했다. 먼저 길을 나서는 42를 따라 우리도 다시 트레일로 들어섰다. 셰프와 벌쳐, 그들과의 마지막을 이렇게 짧게 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에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생겼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어제와는 다른 워싱턴의 날씨에 포근한 걸음을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깨끗한 공기를 비가 한번 더 씻어주어서인지 콧속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가 마치 몸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르막을 오른 뒤 거칠게 내쉬는 숨 속에도 상쾌함이 묻어났다. 그냥 이 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때 없이 순수한 파란 하늘, 그 아래 솟아 있는 머리 하얀 'Mt.rainier', 녹음 가득한 숲길, 그리고 좋은 친구들. 나와 함께 이 순간을 함께 해주는 모든 것들을 가슴 깊은 곳에 새겨두고 잊고 싶지 않았다.

 석양이 질 무렵, 20km 정도를 운행하고 정해둔 텐트사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엔 수많은 하이커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투톤을 비롯해 파워 타이츠, 터치 앤 그레이 등 약 20명 정도 매일 함께하던 친구들이 하이커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마치 트레일 안에서 펼쳐진 또 다른 'PCT Days'처럼 오손도손 모여 저녁을 함께 하고 있었다. 함께 온 라이언과 안면이 있던 친구들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움을 나누었고, 우린 오늘 하루 묵고 갈만한 자리를 찾아 우리만의 HBG 마을을 만들었다. 또 하루가 저물었다. 남은 하루하루가 아쉬웠기에 매일 밤 잠들기가 아쉬웠지만, 아직 남아있는 또 다른 하루의 즐거움을 만나기 위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pct 하이커를 위한 트레일 엔젤. 마련된 과일과 음료는 가뭄의 단비처럼 달콤했다 >


 

 "탱크!! 하루 만에 다시 봤는데 왜 이리 반가울까요?"


 아직 만나기로 한 'Chinook pass'까지는 3km가 남아있었지만, 차를 세워두고 키우는 고양이와 함께 트레일로 우릴 마중 나온 탱크를 보니 반가웠다. 그의 고양이 렉시(Rexy)는 그와 함께 수년 동안 하이킹을 해 온 특별한 고양이였다. 탱크의 배낭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길을 동행하며 수많은 밤을 그의 텐트에서 함께 지냈다고 했다. 뒤따라 오던 친구들과 합류해서 그의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미 'Chinook pass'에는 탱크 말고도 해피 투투라는 좋은 인상의 아주머니가 큰 트레일러에서 하이커들을 위한 트레일 매직을 펼치고 있었다. 해피 투투의 신선한 과일과 시원한 맥주, 따뜻한 맥 앤 칠리 그리고 탱크의 먹음직스러운 핫도그까지 더해진 'Chinook pass' 주차장의 마법은 그 길을 걸어온 하이커들에게 하나의 사랑방이 되었다. 세 시간 가량을 그곳에서 여러 하이커들과 주차장 바닥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때 국립공원 경찰차가 우리 쪽으로 올 때는 약간 긴장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우리의 하이킹을 응원해주며 핫도그를 함께 하면서 즐거움을 공유했다.  

 라이언은 이 곳에서 하이킹을 끝내기로 했다. 오래 쉬었던 탓인지 우리와 함께 걷는 게 힘에 부쳤다고 하면서 멋쩍은 웃음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런 그를 대신해 탱크가 오늘 밤은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해서 'Chinook pass'에서 약 3km 떨어진 'Sheep lake'로 향했다. 하이킹 캣 렉시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었다. 고양이가 하이킹을 따라나선다는 것부터 신기했지만, 탱크 뒤를 졸졸 뒤따르다 때론 다시 업혀 배낭 위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함께 걷는 걸 보니 정말 놀라웠다. 렉시는 짧은 하이킹이 아쉬웠는지, 텐트 사이트에 도착해 우리가 텐트를 치는 동안에도 주변을 쉬지도 않고 돌아다니며 나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황혼이 물든 호숫가에서 때아닌 뮤지컬 한 편이 펼쳐졌다. 촬영 42, 음악감독 해피아워, 주연 썬더버니와 와일드맨. 흥겨운 뮤지컬 음악에 맞춰 펼쳐진 감정 충만한 그들의 춤사위 때문에 우린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케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뭣하러 그걸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우린 아직 길 위에 있는 거라고! 즐겨 순간을!"


 또 하루가 줄어드는 걸 아쉽다고 말하는 나를 향해 썬더버니가 호통치듯 큰 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래, 끝나지도 않은 길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시간을 아쉬움 속에 흘려보내는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둬야겠어'

 매번 순간을 즐겨야지 하면서도 끝이 보이는 길의 아쉬움 때문에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더 이상 줄어드는 나날에 대해 아쉬워 안키로 했다. 가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조절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꼭 이런 기분처럼. 이제는 그만둬야지.


 

 "아니,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예요? 돈을 더 내겠다는데"

 "이해해주세요. 우리 원칙이에요"


 거듭 요청하는 42의 요구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매정하게도 똑같았다. 탱크와 헤어지고 이틀이란 시간 동안 안개 낀 숲길에서 비와 눈을 맞으며 도착한 'Snoqualmie pass(3,846km)'에 위치한 유일한 모텔이었다. 마을에 하나 있는 'Snoqualmie Inn'에서 우린 방 하나로 함께 묵으려 했지만, 그들은 원칙이라며 방 하나엔 두 명밖에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추가되는 인원당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뭣 때문인지 완강하게 거부하는 모텔 주인 때문에 우리는 기분이 상했다. 원칙이라니 어쩔 수가 없었지만, 주인의 불친절한 태도 때문에 기분이 더 상했다. 일전에 PCT하이커들한테 심하게 데인 적이 있어 그런 거니 이해하라고 했는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하이커 모두를 싸잡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마란 식의 태도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더 불편했던 것은 동양인인 주인이 왠지 한국인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시간은 늦었고 어쩔 수가 없어 방을 세 개나 빌리고는 각자 방으로 흩어져 짐을 풀었다. 나랑 42, 와일드맨과 해피아워가 방을 함께 쓰고, 썬더버니가 사촌 집으로 잠깐 떠났기 때문에 늦게 온 위키는 혼자 쓰게 되었다. 씻고 정리를 하고 난 뒤, 우린 상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옆에 있는 스토어로 향했다. 각자 원하는 음료와 먹을거리를 챙겨 들었고, 나도 간단히 맥주와 스낵을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스토어의 주인도 동양인이었는데 이분도 왠지 한국인일 거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넌지시 혹시 한국분인지 여쭈었고, 역시나 한국분이라며 놀랜 듯 답하시는 주인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PCT를 하이킹하는 한국인이 줄곳 없었기에 당연히 일본인이라 생각을 했다는 주인분께 그간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그 후 몇 분간 더 이야기 나누고 나서야 모텔 주인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모텔의 주인 부부도 역시 한국인이 맞았다. 처음부터 하이커들에게 냉소적이지가 않았는데, 매년 꼭 한두 명의 하이커들이 개념 없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지금처럼 하이커들에게는 불친절하다 느낄 정도로 차갑고 원칙적으로 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쉬움이 많긴 했지만, 타지에서 고생하며 일궈온 것들을 가볍게 대하는 타인들에게 지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분들이 대부분의 하이커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었음 하는 바람도 들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카운터에서 주인분을 만날 수 있었고,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내게 주인분은 그제야 미안함이 섞인 작은 미소로 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한국분이라는 걸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해야만 하기에 따로 이해를 못 구했어요. 불편한 거 있음 언제든 말해주시고 편하게 지내다 가세요"


 타국에서 서비스 업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신 게 어떤 느낌인지 감히 내가 느낄 수 없었지만, 순간 괜한 미안함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저 지쳐 얼어있는 그분들의 마음이 어떡해서든 조금이라도 녹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때로는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바꿔 나갈 수 있는 여러 결과들을 그려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나 스스로도 조금은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들었다. 



 안타까움이 진했던 전날의 기억을 정리하고, 오후 두 시가 될 때까지 주유소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여러 하이커들과 시간을 보냈다. 사촌 집에 갔던 썬더버니도 돌아왔고, 가족여행을 떠나다 가는 길에 잠깐 들린 탱크와 다시 만나기도 했다. 이곳에서 다음 보급지인 'Skykomisi'까지는 리틀 시에라 섹션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고 해서인지, 다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음식을 먹어두려 했다. 두시가 조금 지난 걷기 시작해 약 11km를 진행했는데, 거의 10km의 산길을 올라서인지 조금은 힘이 들었다. 오르는 중간, 우연히 한국인 산악회 분들과 마주치게 되어 그분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애틀과 캐나다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이 곳 캣워크 구간의 경치가 아름다워 다 같이 산행을 오셨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기도 했고, 그분들도 PCT를 하이킹하고 있는 내가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러웠는지 많은 간식들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함께 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다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는, 시애틀에 오게 되면 꼭 들리라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남겨주시기도 했다.

 각자 출발한 시간이 달랐기에 내가 정상에 위치한 'Ridge lake'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 중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변 텐트 사이트가 있는 곳을 다 둘러보았지만 HBG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젤 먼저 도착한 건가?' 오랜 시간을 한인 산악회 분들과 함께 했었기에 나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이상했다. 다시 호수 쪽으로 돌아가 여러 명이 텐트 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는데 뒤에서 해피아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있어? 42는?"


 다른 친구들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온다길래 혼자 먼저 왔다는 해피아워가 42의 행방을 물었다. 나 역시 도착했을 땐 혼자였기에 같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42는 먼저 출발했다고 했다. 아마 내가 이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이곳을 지나간 것 같았다. 날이 저물고 있어 더 진행하는 건 무리라 판단하고는 텐트를 치고 자리를 정리했다. 정리를 하고 부족한 물을 정수하러 호수를 다녀왔을 때, 썬더버니와 와일드맨 그리고 위키가 함께 도착했다. 해피아워와 마찬가지로 다들 42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먼저 갔을 거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다들 무언가 하고픈 말이 많은 듯했지만, 아무도 선뜻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들도 나처럼 42가 조금 걱정되는 듯 보였다.



<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트레일을 걸을때면, 그간의 모든 안좋은 기억과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



 마을이 인접한 곳이라 그런지 이 곳에는 우리뿐 아니라 데이 하이킹을 즐기러 온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혼자 혹은 친구 둘이서 와 하룻밤의 야외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도 PCT 하이커인 우리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머무는 것이 즐거웠는지, 이것 저것 물으면서 그들이 가져온 복숭아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들의 호의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지금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이 트레일을 걸으며 받았던 분에 넘치는 호의 때문에, 지금은 나 스스로가 하이커라면 호의를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라고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지금껏 만났던 트레일 엔젤이나 매직, 마을에서 우리를 환대해 준 여러 사람들 그리고 탱크나 친구들의 가족들이 베풀어 준 호의 때문에, 이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지금까지 받았던 것처럼 똑같은 호의를 베풀어 줄 것이라는 착각. 이 때문에 우린 마땅히 그들의 원칙에 따라 할 일을 했던 Snoqualmie Inn 주인의 태도에 대해서도 더 크게 반응했던 게 아닐까?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살고 우린 그저 그들의 일상을 잠깐 지나 칠 뿐이었는데, 마치 우리가 그들의 일상에서도 주인공인 것 마냥 행동을 하려 했던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어느 공인의 행동에 대한 논평의 제목처럼 닮아가던 나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저 반가움에 건네 준 한 하이커의 복숭아를 통해 지금이라도 이런 착각을 깰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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