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ol K Jun 07. 2018

Into the unknown world

미지세계로의 모험

 



 미지세계로의 모험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다. 마음속으로는 늘 새로운 모험을 희망하지만, 실상 선택은 익숙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두려움. 계획했던 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들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모험보다는 익숙하고 안정된 곳으로 떠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1박 2일로 한정된 현대인의 주말 활용법과 이치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틀을 깰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만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험할 대상지에 대한 사전 철저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환경지침이나 등산 관련 서적의 서두에 나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 단순히 야영지에서 먹고 즐기는 행위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는 진정한 의미의 백패킹. 제로그래머스 데이 >




 제로그래머스 데이.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독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3년 전 양구 일대의 소양호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길을 이리저리 짜 맞춰봤다. 양구에서부터 춘천까지, 산길과 물길을 이어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30km가 넘는 길. 물론 생각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잘 짜인 관광 상품보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3년 전 생각했던 길을 이제야 걷기로 마음먹었다.


 양구의 봉화산을 올라 8km 남짓한 거리를 걷고, 양구선착장에 이르러 팩래프팅을 위한 장비를 꺼낸다. 물론 개인장비는 산길, 물길 할 것 없이 모두 각자가 짊어지고 이동해야 한다. 목적지는 소양호의 차디찬 물길을 10km 이상 노를 저어야 다다를 수 있는 조교리 선착장. 물길로만 16km가 되는 거리이다. 하루 이동하기에 적당한 거리일 수 있지만, 소양호의 물이 가장 차다는 5월 그리고 높아진 기온에 따른 수온차로 해가 중천에 뜰 무렵부터 물 위로 거세게 이는 바람이 관건이다.

 별 탈 없이 1일 차 코스를 완주했다면, 2일 차는 춘천에서 진행된다.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춘천에서도 깊은 골짜기로 파고들어야 마주할 수 있는 조교리. 조교리에서 들어서는 바위산을 거쳐 매봉을 지나 반원을 그리며 하산하는 11km 코스. 산길로 약 20km를 걷고 물길로 16km를 건너야 하는 나름의 대장정이기도 하다. 수도 없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PLAN B, C, D 경우의 수를 그려 놓았다.




< 최초 계획된 봉화산을 지나 양구선착장에서 조교리까지에 이르는 팩래프팅 코스 >




 며칠을 세차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개었다. 덕분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뽀얀 속살을 내밀듯 그동안 가려져 있던 쾌청한 하늘이 저 멀리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일단 날씨는 우리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빠른 진행을 위해 금요일 퇴근 후 양구로 이동했기에 아침 6시경 눈을 떠 7시 즈음에 떠날 채비를 마칠 수 있었다. 참가자들도 주 5일을 근무하고 바로 이동 한터라 피곤할 만도 했지만, 서울과는 다른 공기에 되려 피곤을 떨친 듯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수림 펜션을 지나 봉화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이르렀다. 국토정중앙 천문대에서 소지섭길을 따라 봉화산을 오를 수 있지만, 최대한 오전 중에 소양호에서 팩래프팅을 시작하기 위해 들머리를 수림 펜션으로 정한 것이다. 거리는 약 4km가 줄었지만 그래도 양구선착장까지 이르는 거리는 8km가 족히 넘는다.


봉화산

강원도 양구군 남면 심포리와 명곤리 · 원리 · 죽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75m). 1604년(선조 37)에 봉화대가 설치되어 봉화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지도서』부도에 남면의 사천현(絲川峴, 지금의 양구읍 공리 시락고개) 위쪽에 '고봉수(古烽燧)', 즉 예전에 봉수가 있던 터로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봉대산파(烽臺山罷)' 즉 "봉대가 있던 산이고 지금은 폐지되었다."라고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봉화산의 봉수대는 잠시 동안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를 계기로 산 이름이 봉화산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전의 이름에 대해서는 문헌에서 확인할 수 없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봉화산에 이르는 능선을 완만하게 오른 게 아니라, 경사면을 가로질러 오르는 길이라 초입부터 숨이 탁 막힌다. 가야 할 봉우리가 눈 앞에 있는 듯했는데 막상 들어서니 보이는 건 한참을 올라야 할 좁은 산길, 호흡은 거칠어지지만 전날까지 비가 온터라 걷는 걸음에 짙은 흙내음이 따라 오르니 기분은 상쾌하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을 지저귀는 산 새소리에 장단 맞춰 오르다 보니 어느덧 확 트인 능선에 다다랐다. 하늘이 보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바람이 땀에 젖은 옷을 타고 스치니 아직 이른 기온에 닭살이 돋아, 간단히 목만 축이고 체온이 떨어지기 전에 정상으로 다시 향한다. 오르는 내내 그 흔한 산악회 리본도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많은 이들이 찾는 산은 아닌 듯하다. 참가자들 역시 모두가 초행이라니 미지세계로의 모험이 맞긴 한 것이다. 이윽고 나무 한그루 안 보이는 벌거벗은 정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껏 오른 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웅장함은 비할 바가 아니지만 여느 유명한 산들과 같이 주욱 펼쳐져 있는 능선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름처럼 봉화대가 있는 정상에 오르니 우로는 양구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좌로는 굽이굽이 흘러 소양호로 이르는 물길이 산세에 둘러싸여 있다. 흐르는 강이 마치 흙탕물과 같으니 비가 거세게 내리긴 했나 보다.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 같아선 자리를 깔고 한참을 쉬었다 가고 싶지만,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쉬움을 떨칠 수밖에 없다. 여운이 남아 애꿎은 봉화대에 합 하고 소리를 치고 나니, 울리는 메아리가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까지 넘어가는 듯했다. 아름다운 능선을 뒤로하고 내리는 길도 오를 때와 같이 경사가 가파랐다. 아직 젖은 돌과 흙에 발이 미끄러지기도 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걸음걸음 집중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건너야 할 소양호가 옆으로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머리 위로 오른 해가 호수에 비춰 눈이 부셨다.



< 곧게 뻗은 능선의 모습이 이국적인 봉화산 정상의 모습 >




 팩래프팅은 배낭에 패킹이 가능하도록 가벼운 소재로 제작된 보트를 이용해 강이나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트를 타고 급류를 즐기는 행위를 뜻하는 래프팅(Rafting)에 패킹(Packing)이라는 단어가 더해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팩래프팅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강이나 호수는 물론 계곡에서도 많은 이들이 팩래프팅을 즐긴다.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점과 꼭 전문적으로 해야만 즐길 수 있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아웃도어 활동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양구선착장에 이르러 땀이 식지도 않은 채로 배낭에서 보트를 꺼내 바람을 넣기 바쁘다. 20L 남짓되는 용량의 보트 주머니로 바람을 넣는 일이 쉽진 않지만, 곧 보트를 탄다는 일념에 손놀림이 빨라진다. 팩래프팅으로 이동하는 구간의 리딩을 위해 팀제로그램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리산 카약학교의 강호 팀장을 모셨다. 구명조끼를 전원 착용하지만, 공식적인 프로그램이라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전문가가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세 시간의 산행으로 몸이 데워진 상태였기에 수상안전에 대한 교육만 받고 각자 보트를 호수에 띄웠다. 보트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배낭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리도 이리저리 뻗었다 접었다 했다. 혹시나 배낭이 빠질까 봐 가져온 슬링으로 보트와 배낭을 결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차게 패들링을 시작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보트가 쉽게 앞으로 치고 나가질 않는다. 물길로만 16km가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말이다.


 "잠깐 이쪽으로 모이겠습니다. 서로의 패들을 잡고 모여주세요"


 강호 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면 위로 퍼진다. 서로의 패들을 건네어 둥근 원형을 만들어 호수 중간에 모였다. 틈날 때마다 행동식을 먹으라 주문했다. 역풍이 불어 이동에 힘이 많이 소모되어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참을 왔다 생각했는데 이제 3km 정도를 진행했다고 하니, 아 이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패들링보다는, 작은 보트에 등받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아파 중간중간 앉은 자세를 바꿔야만 했기 때문이다. 패들링 역시 쉽지 않았다. 허리를 이용해 좌우로 저으라는데, 말이 쉽지 몸에 익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어깨 힘으로만 패들링을 하게 된다. 다들 만만치 않다는 표정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그래도 모두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새로운 모험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작은 보트나 낚싯배가 저 멀리서 오는 게 보이면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만 줄지어 이동을 했다. 모터가 달린 배들이 빠르게 이동할 때마다 이어지는 여파에 보트가 출렁이는 게 마치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있는 듯했다. 제트스키가 지나갈 때는 다들 우려 반, 재미 반으로 소리를 질렀다. 빠르게 이동하는 게 부럽다는 것인지, 밀려드는 여파가 두렵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웃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 고무보트를 이용해 무동력으로 소양강을 건넌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한 시가 훌쩍 넘었다. 11시 조금 넘어 시작해 벌써 2시간 넘게 물길을 지나오고 있는 것이다. 해가 워낙 뜨거워 자외선 차단 크림을 두어 번 더 발랐지만 이미 팔뚝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간이 흘러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온차로 인해 이는 바람이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다만, 크리스털을 뿌려 놓은 듯 소양호의 출렁이는 물결에 반사되는 영롱한 빛은 눈과 마음을 모두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양호는 1973년 소양강 댐의 축조로 형성된 한반도 최대 규모의 호수로, 강원도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에 두루 걸쳐있는 남한 최대의 인공호수다. 가히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정도로 드넓다. 병풍처럼 양옆으로 펼쳐진 산자락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무게 1kg 남짓한 보트에 몸을 맡긴 채 내려가는 일행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풍경이 이국적이다. 한참 감상에 젖어 있을 때쯤, 코스를 리딩 하는 강호 팀장이 나를 찾았다. 현재까지 진행한 상황으로 봐서 애초 설정한 코스로는 제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바람이 더욱 거세질 뿐 아니라 역풍으로 불어오기에 체력소모는 물론, 시간당 3km도 진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활동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따른 일정 수정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사전에 그 상황을 예측해 Plan B, C는 물론 필요하다면 Plan Z 까지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원래 코스로 진행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하고는 사전에 설정해놓은 탈출로를 검토해 현재 위치에서 가장 적당한 곳으로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현 상황을 반영해 코스를 변경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출발지에서부터 10km 정도 되는 거리라 만만치는 않았다. 대략 예상하기에 물길로만 4시간 넘게 가야만 했다. 하지만 줄어든 거리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는지 패들링이 한층 수월해졌다. 가야 할 목적지가 눈 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진로를 우측으로 꺾어 좁아지는 길목으로 들어서니 반갑게도 순풍이 불어온다. 바람이 떠밀어주니 패들링을 하지 않아도 배가 나아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진행이 수월했다. 오랜 시간 어깨를 쓴 탓에 뻐근함이 밀려왔지만, 뻐근한 만큼이나 새로운 모험을 해냈다는 것에 감격이 벅차올랐다. 생소했던 팩래프팅도 곧 끝이 날거라 생각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쉬움에 속도를 조금씩 늦춰본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드론 소리가 도착지가 멀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변경된 코스로 전원 무사히 도착했지만, 숙영지로 이동할 거리를 재어보니 걱정이 앞선다. 물길로 6km 가면 거리가 육로로 돌아가려니 무려 64km까지 늘어났다. 무슨 황당한 일인가. 다시 물길로 되돌아 갈까 했지만, 늦어진 시간 탓에 되돌릴 방법이 없어 묵묵히 차량에 몸을 실었다. 


 마을에 축제를 하는지 예약한 조교리의 농촌체험관이 사람들로 북적하다. 공정 백패킹 문화를 실천하려 행사 때마다 먹거리나 식당을 늘 현지에서 해결한다. 이번 프로그램도 물길을 지나 일반 노지에서 야영을 하려다 마을 주민들께 폐를 끼칠까 봐 민박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 맞이해주시는 마을 관계자분께서 마을 행사가 겹쳐 많이 시끄러울 거라고 걱정을 해주신다. 지나는 객이 어찌 마을 탓을 하겠는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차량으로도 골짜기를 따라 꽤나 들어와야만 닿을 수 있고, 버스도 안다녀 SUV로 마을버스를 대신하는 깡촌 마을에 오늘처럼 사람들이 북적이고 흥이 넘쳐나는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늦은 밤까지 목 터져라 부르는 노랫소리가 다들 신경 쓰일 만도 한데, 몸이 피곤해서인지 아량곳 없이 각자의 침낭에 몸을 밀어 넣었다. 다행히 하늘도 우리 상황을 헤아렸는지 갑작스레 온 동네가 정전이 되어 흥겨웠던 마을 잔치도 끝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내 반주에 맞춰 불리던 노랫소리 대신 건장한 남성들의 코 고는 소리가 방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뻐근한 몸을 일으켜 짐을 꾸렸다. 오늘 진행할 코스는 마을에서 진입할 수 있는 들머리로 바위산을 올라 매봉을 거처 하산하는 약 11km 거리의 산길이다. 바위산은 높이 857m로 소양호를 이용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과 호수의 낭만이 서려있는 산이지만, 산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산객이 뜸한 편이었다. 코스 자체는 무리가 없지만 산길이 잘 나있을지가 문제였다. 오르기 전 마주친 마을 주민분이 던진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거기 오르기 힘들 건데..."


 아직 수풀이 우거지지 않은 5월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허벅지까지 자라 있는 무성한 잡초들이 산길을 가리고 있었다. 산객이 많았다면 길이 다져져 있을 테지만, 마을 주민들도 잘 오르지 않는 산이라 그런지 쉽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쉬운 길로 찾아갈 터, 지도와 함께 동물들이 길을 훑은 흔적을 따라가면 능선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앞장서 걷다 보니 거미가 열심히 쳐 놓은 거미줄이 자꾸만 얼굴에 걸렸다. 오늘 이 산을 오른 사람이 우리가 처음인 듯했다. 작은 계곡을 수차례 건너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능선을 목전에 둔 산 중턱에 다다랐다.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길마저 끊겨 정상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비등로를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땅에 깔린 오래 묵은 낙엽에 발이 미끄러지기를 수차례,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땅을 헤집고 오른 뒤에야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오를 수 있었다. 소양호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정상을 향해 계속 걸었다. 이내 도착한 정상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작은 케른만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정상 너머로는 어제 지나온 소양호가 저 멀리까지 보였다. 잠깐 휴식을 위해 배낭을 내리고 돌 위에 앉으니 바람은 서늘하고 나무에 해가 가려 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이내 으스스할 정도로 체온이 내려갔다. 때아닌 추위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앞으로 진행할 코스를 확인해 보니 지금껏 바위산의 정산인 줄 알고 좋아했던 곳이 바위산이 아니었다. 바위산 바로 전에 위치한 무명봉이었던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왔고, 누군가의 말처럼 미지세계로의 모험을 제대로 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다 짐을 추스르고는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무명봉이긴 해도 나름 800 고지에 있어서인지 내리는 길도 꽤 심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 길이 나있지 않은 비등로를 타고 바위산 정상을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




 역시나 자연은 한치의 방심도 허락지 않았다. 분명히 외길이었고 방향도 맞았기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걸어왔는데, 왜 오르막이 시작되지 않을까? 의아해서 확인하려고 보니 다시 조교리의 들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홀린듯한 기분에 눈을 의심하고 지도를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지도는 올바르게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의견을 모았다. 거리상으로 약 3km 남짓 진행했으나 벌써 시간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만약 길을 되돌아가 바위산으로 오른다 해도 남은 약 8km 거리를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듯했다. 그리고 남은 길 역시 지금과 같이 비등로를 헤쳐가야 한다면 최소 4시간은 걸릴 거라 판단했기에, 아쉽지만 현재 진행방향대로 원점 회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판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일행을 이끌고 내려와야만 했다.


 장장 4시간에 걸친 원점회귀의 산행. 쉽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자연은 자연이었다. 각각의 상황을 예측한다 해도 늘 변수는 발생되기 마련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도 있지만, 자만심에 무리를 할 경우에는 늘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이었지만, 아쉬움보다는 마지막까지 모험을 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오늘이 아니었음 바위산의 존재도 몰랐을 거니 말이다.




 미지세계로의 모험.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것.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아웃도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이 많아져야 한다. 백패킹의 가치가 단순히 먹고 자는 행위가 아닌, 자연과 교감하며 모든 짐을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짊어지고 간다는 점에서 팩래프팅은 그 본질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아웃도어 활동 영역의 확장.

 팩래프팅이나 바이크 패킹, 패스트 패킹 등과 같이 그 본질은 다르지 않으나 표현하는 행위의 다양성이 널리 확대되어야만, 우리가 고민하고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아웃도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About the Pacific Crest Trai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