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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랑 동동 Sep 16. 2020

꿈이 늘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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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였다.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진

소수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소수라면

나는 자연수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없는 0에서 시작했지만

무한히 증가하는 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


조금씩 매일 발전하고 싶었던 나는

소수인 남자를 포함하지 못하고

계속 오답을 제출하고 있었다.


평일 두 끼

주말 세끼

야식 한차례

일식을 제외한

한식, 양식, 중식

새로운 상차림을

고민하고 연구하였다.

딱 1년을 그렇게 했다


결혼 만 1년을 넘긴 며칠 뒤의 주말

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세 번째 버전의 탕수육을 대접하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언저리에 세 번의 홈을 낸 연노랑 젓가락을 들어 올려

접시를 휘~ 한번 둘러본 뒤 결심한 듯 젓가락을 옮겼다.

맨 위에는 타원 모양으로 빗겨 썰은

초록색 오이가 싱싱함을 자랑하며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그는 무심한 듯 고명 취급하며 오이를 걷어내고는

분홍빛 탕수육 소스가 잔뜩 묻은 수제 찹쌀 탕수육을

한 젓가락 들어 올렸다.


좌우 90도로 기울기를 조절하며

비평가처럼 턱을 치켜들어

눈의 초점을 탕수육으로 옮겨놓았다.

도톰하게 찹쌀 옷을 입은

돼지고기 탕수육을 살펴보던 그는

"흠~" 소리를 내며

입속으로 탕수육을 던져 넣었다.

고작 세 번이었다.

하나, 둘, 세 번의 턱운동

침샘이 채 침을 밀어 올리기도 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맛을 평가하였다.


"지난번 게 낫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니 집어던졌다.


"첫 번째 건 먹는 내내 질감 타령이더니

두 번째 건 먹는 내내 소스 타령했잖아

지난번 탕수육 배달시켜먹은 건

내가 발로 만드는 게 더 낫겠더구먼

말없이 잘만 먹어놓고선

오늘 건 어떻다고?"


"배달음식은 내가 평가해도

바뀌지 않잖아."


"얼마나 더 바뀌어야 당신 입에

딱 맞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안 해 못해"


"그래 하지 마 하지 마"


나는 고작 365일 * 3 만큼을 요리하고

첫 번째 퍼스널 브랜드였던

"한식 조리사의 가정식 요리 100선"

브랜딩을 포기했다.


그의 입맛을 사로잡은 레시피는

단 하나도 없었고

나는 진심으로

앞치마를 주방이라는 링위로 내던지고

요리 포기 선언을 했다.


이후로도 많은 변신을 꾀했다.

그만큼 자주, 아프게 넘어졌다.

그리고 매번 애써지어 입은 옷을 버리곤 했다.


소수인 그와

자연수인 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책이랑 동동"을

퍼스널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왔다.


결혼을 했으므로

당연히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던

현모양처의 꿈은

처음 시도한 요리 영역에서부터

고객의 클레임 폭주로

좌절을 겪었다.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인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부먹이 맛있는 나는

세 번을 다 소스를 부어 제공했었다.

그는 찍어 먹는 탕수육 파였나 보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이후로 정말 요리를 하지 않았고

그는 본때라도 보여 주듯 계속 요리를 했다.

요리를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그가 해준 베트남 쌀국수가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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