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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랑 동동 Sep 16. 2020

사라진 취미 생활

"앗, 죄송합니다."


서울극장 8관.

극장의 반지하 상영관

낡은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영화는 이미 상영 중이었고

나는 지각 입장을 한 불청객이었다.

눈의 조리개가 채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앞이 깜깜한 중, 나는 얼른 자리를 찾으려

꽃게 걸음을 걷고 있었다.

맨 뒷열의 빈 객석을 찾아 탐험하던 내 엉덩이는

아차 하는 순간

누군가의 무릎 위로 불시착하고 말았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소리쳤다

"앗, 죄송합니다."

여전히 앞이 안 보이는 나는

놀라 거칠어진 숨을 손으로 틀어막고

다시 반대편으로 기듯이 역주행하여 나왔다.

저편에서 들려오는 젠틀한 목소리

"괜찮아요. 얼른 앉아요."

"네. 죄송해요."


2008년 6월.

나는 제45회 대종상영화제 심사를 위해

찾아간 영화제에서

이불 킥 리스트에 목록을 하나 추가하고 말았다.


내가 들어간 상영관의 관람석에는

일반인과 출연진, 제작진 등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출연진을 발견하고는

출연진을 보느라 영화를 못 보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데

제작진이 잘 부탁한다며

달콤한 먹거리를 조공하기도 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3차의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일반인 심사위원과

영화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전문심사위원.

우리는 하루에 세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9개 부문에 평가를 내려야 했다.


내가 불시착했던 그 무릎은

세 개 영역에서 평점을 취득하였다.

남우주연 부문

성우 부문

그리고 감독 부문이었다.

내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질감과

목소리, 만남으로 이어진 그 사람

그를  또 만난 건

며칠 뒤 2차 상영을 앞둔 시점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네. 저는 누구신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잠깐 무릎에 부딪히셨죠."

"아, 죄송해요.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볼 때 던가?"

"'무방비 도시'를 볼 때였어요."

"아~ ㅋㅋ  이제 죄송하다는 말은 그만해요."

"네. 그날 이후로는 상영 전에 자리 찾아서 앉고 있어요."

"잘했어요. 이제 다음 영화 곧 시작하겠네요. 들어가죠."

"네 전 일행이랑 같이 갈게요."

"그래요  아쉽네요."


젠틀한 목소리의 남자는

아쉽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도 생각했다.

'따라갈까?'

그가 한 번만 뒤를 돌아봤도.

나는 따라가서 그의 옆에 앉아 남은 상영을

같이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스쳤고

짧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는 정초신 감독이었다.


공간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일반인 심사위원이라는

작은 타이틀을 하나 달았을 뿐인데

열흘간 나는 이전에 연결되어 본 적 없는

특별한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하였다.


2008년 6월

작년 하반기부터 그 해 상반기까지 상영된

수많은 영화들 중  본선에 진출한

한국영화 30편을 관람했다.


배우 하정우, 김남길

감독 나홍진,  이준익과 스치고

인사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들이 이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계속 그 순간에 멈춰 있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남기고

생각거리를 찾아 글을 쓰는 걸 즐기던 나는

습작으로 시나리오를 고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시나리마켓에 나만의 작품을 등록 하기도 했었.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이자

하루종일 글쓰는 삶을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2009년 12월 결혼을 한 뒤

더 이상 그 취미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서른 넘어 결혼을 했고 외벌이 살림이었다.

내게는 문화생활이었지만

신랑에게는 유흥에 속하는 것이었다.

영화 관람 그것.


신랑의 말을 듣고도 영화관에 가자는 말을

자꾸 꺼낼 수가 없었던 나는

점점 신랑의 취향에 나를 맞춰가게 되었고

그렇게 나만의 취미는 사라져 갔다.




살면서 의미를 부여할만한 취미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내게 가치 있던 일을 스스로 놓아버렸고

새로운 것에 빠져들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가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가치를 존중받고 싶었다.


모르는 이의 무릎에 불시착하여

영화를 이야기하던 그날 들은

이제 기억 속에만 머물 뿐이었다.


강렬하게 인식되어 있는

시기의 즐거움을

다시 맘껏 즐기며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나는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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