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효니 May 23. 2020

두 달째 도쿄 집콕 생활, 힘들었다.

나의 생활을  많이 바꾼, COVID-19. 지금 이야기해 본다.

지난주는 정말 고단한 한 주였다. 코로나 때문에 갑작스럽게 진행하게 된 새로운 서비스 론칭. 4월부터 단 하루도 회사에 가지 않았고, 이번 서비스는 팀 멤버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이룬 일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8년이 넘어가는 데, 이런 건 진짜 처음 있는 일이다.



급하게 라쿠텐 사이트에서 산 건데, 접이식 책상 치고는 튼튼하고 괜찮은 물건을 샀다.


집콕 생활 in 도쿄


코로나는 도쿄에서의 내 생활을 많이 바꾸었다. 3월 말, 급작스럽게 감염자 수가 늘어나고, 4월에 들어서야 일본 정부는 긴급 사태 선언을 내렸다. 현금 사회에 IT 인프라 준비가 늦었던 일본 정부는, 감염자 정보를 취득하는 데 여전히 애를 썼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하니 불안한 마음만 가득했던 일본 국민들은 마스크, 화장지, 인스턴트식품 등의 사재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일본 정부가 내린 대책은, 무조건 STAY HOME. 세계적인 흐름이었지만, 내게는 ‘나라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국민이 열심히 해서 이 난관을 극복해라’ 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의 좋은 사례들을 보고 배울 법도 한 데, 일본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국가를 건 빅 이벤트를 두고 우왕좌왕하기만 하다가, 결국 모든 짐을 국민들에게 짊어지게 했다. 그리고, 지난 두 달간, 도쿄는 자발적인 고스트 타운이 되었다.


아베 총리와 코이케 도쿄 도지사는, 3密(밀폐, 밀집, 밀접)을 피하는 것과, STAY HOME을 외치면서 출퇴근 전철의 혼잡 완화와, 사무실 내에서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려운 이들도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나와 남편은, 평상시 때부터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덕에 신속하게 100퍼센트 재택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출근 금지령이 떨어지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쾌적한 재택근무를 위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준비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도 일 할 때 쓸 접이식 책상과 의자를 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와의 긴 전쟁에 대비했다.



주말에 슈퍼마켓에 가는 유일한 외출시간, 날씨가 좋은 날은 걸었다. 이 짧은 시간이 뭐라고 이렇게 소중한지.


쉽게 열리지 않게 된 지갑


STAY HOME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변화가 있었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게 되었다. 슈퍼마켓도 감염원이 될 수 있다고 하길래, 필요한 게 있으면, 구글 어시스턴트 경유로 쇼핑 리스트를 작성했고, 30분 만에 볼 일들을 끝냈다.


그러다 보니까, 일주일에 우리가 밖에 나가는 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되지 않았다.

거리가 있는 곳에 갈 때는, 자가용 혹은 택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전철을 언제 탔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횟수도 극적으로 늘어났다. 맞벌이 부부라 평일에는 같이 밥을 먹는 횟수가 손꼽을 정도였던 우리였는데, 지금은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같이 먹는다.

자정까지 일해야 할 정도로 바쁠 때를 제외하고는, 간단한 요리라도 해 먹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요즘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 외식도 안 하고, 여행도 안 가고, 얼마나 준거지?'

'그러게.. 먹고 자고 일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네. 돈을 쓸 데가 없네. 되게 많이 줄었을 것 같은데..'


평소에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나가서 놀기 좋아하던 우리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지갑 사정 또한 엄청난 변화가 있다는 걸 깨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서로의 지갑 사정을 계산해 본 후 우리는 경악했다.


생활비가 절반 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살면, 우리 돈 많이 모으겠다 그지?

아마 가장 큰 건, 여행에 들던 비용이 사라졌기 때문일 거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분명 내 두 발로 서있는데, 제대로 서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울증상과 마주하다


일하고 밥 먹고, 자고 또 일어나고. 정말이지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처럼 반복되는 것만 같은 매일. 내게 이상 증상이 일어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텔레비전 어느 채널을 보아도, COVID-19에 대한 뉴스뿐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내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미래가 나를 암흑 속으로 휩싸이게 하고, 신경질 적이게 했다.


갑자기 막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갑자기 막 화가 나기도 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집 밖에 한 발작도 나가지 못하는 게 서글프고, 그저 짜증이 났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한 해에 몇 번 하는 해외여행이 바쁘고 힘든 일상을 보상해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4월 말에 계획했었던 하와이 여행도 취소되고, 올해 양가 가족과 함께 같이 가기로 했던 발리 여행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여행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현실. 도대체 무엇을 낙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할지 도무지 마음이 다스려지지를 않았다.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찍은 기둥 선인장 군과의 한 장. 내 못 생긴 발은 덤.


반려식물과의 만남


방황하던 내 마음, 나의 집콕 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건, 작은 기둥 선인장 하나를 집에 들이게 되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하나도 관심이 없었던 식물 키우기가.. 다쳐버린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 작은 기둥 선인장이 나의 구세주.


하나하나, 나의 생활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건 이 때 부터였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랐던 STAY HOME 기간, 끝을 모르고 치솟았던 감염자 수 그래프가 드디어 잠잠해지는 듯싶다. 도쿄도 다음 주 중에는 조금씩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인다.


집콕 생활 덕분에 시간은 많았지만, 어째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가 않았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글을 쓸 수 있을 멘털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걸 그만뒀다. 글을 쓰는 것도 멈추는 것도 내 선택이니까.

그냥 갑자기 길어져버린 아무것도 안 하는 내 자유로운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이렇게 어느새, 글을 다시 써 보고 싶어 지는 때가 왔다.


일상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 아주 조금씩, 더딜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




Instagram✈︎

도쿄 생활과, 나이를 거꾸로 먹은 비글 한일 부부 일상,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