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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효니 Jan 24. 2018

나이가 들면 자연이 좋아지더라

도쿄에서 2시간, 우리의 첫 번째 캠핑.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자연을 참 좋아했다.

매일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면, 해 질 녘 뒷산 산책 코스를 엄마와 나 동생 셋이서 걸었다.


어머, 이 꽃 좀 봐라 ㅇㅇ꽃이네.

오늘은 솔나무 냄새가 진하구나.


엄마, 꽃이 뭐가 재밌어?

내게는 그저 이름 모를 들꽃이었고, 솔나무 냄새가 어제랑 오늘 어떻게 다른지에는 관심도 없었다.


어린 나는 왜 엄마가 그렇게 자연을 사랑했는지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때 엄마 나이가 된 나는, 이상하게 자연이 점점 좋아진다.


풀냄새, 바람소리, 겨울이면 피부 위를 차갑게 스쳐가는 공기의 온도.

나이가 들면 자연이 좋아지는 걸까?


11월 말, 패딩 잠바를 꺼내 입지 않아도 살만했던 도쿄에서, 남편과 둘이서 캠핑을 다녀왔다.

둘이서 하는 첫 번째 캠핑. 그것도 갑자기 겨울 캠핑.



캠핑이라 해도, 겨울에는 춥다고 해서, 텐트는 집에 고스란히 모셔두고 왔다.

대신, 통나무집을 빌렸다.


준비는 남편한테 다 맡기고 와서 처음으로 본 우리의 숙소.

어쩜 콜맨 색상과 꼭 맞는 통나무집을 골랐구려.



남편이 장작불을 지피는 옆에서, 아사히 맥주를 까는 아내.

대낮부터 맥주와 함께하는 주말이라니, 이런 게 사는 맛이다 싶다. (이젠 사고방식이 늙었어, 하하)



장작불 지펴보는 게 인생의 로망이었다는 남편.

어른이 되고 처음 지펴보는 장작불.


어릴 때 했던 캠핑에는 우리가 아닌 어른이 있었다.

텐트를 치는 것도, 장작불을 지피는 것도, 밥을 짓는 것도 어른들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한다.


초심자에게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렇기에 즐거운, 캠핑.



장작불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자연의 소리가 사람을 이렇게나 평온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지 처음 알았다.



우리처럼 가볍게 캠핑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쿄 근교에는 찾아보니까 꽤 많은 오토 캠핑장이 있었다. 자동차를 끌고 캠핑장 안 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짐을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는 수고가 덜해서 좋았다.


우리가 간 캠핑장은 도쿄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가족끼리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깝다고 예쁜 장식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놀기 좋은 놀이터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남편과 둘이서 꺌꺌 거리며 뛰놀기.



누구나 낚을 수 있다는, 전설의 낚시터.

소녀가 아닌 소년의 얼굴로 기뻐하는 아내.



우리가 낚은 두 마리.

꿀맛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부족한 준비물이 없나 하고 보니, 어째 가져온 것보다 부족한 게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사러 왔다.


여긴 정말 우리 같은 초보 캠퍼를 위한 캠핑장이었다. 없는 게 없었다.


제대로 준비해 다녀야지, 진짜 캠퍼 되기 한참 멀었다.

 


자, 이제 저녁을 먹자.

평소에 집에서는 요리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이, 캠프 밥은 자기가 만들고 싶단다.


신기방기 이런 레시피는 어디서 또 알아가지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명태가 살아 있는 것 같여.



단호박을 알루미늄 호일로 쌓아서 장작불 속으로 풍덩.

버터와 소금 하나로 간을 맞추면, 그냥 뭐 말이 필요 없다. 경험해 봐야 안다.



따땃한 장작불 앞에서, 밥도 든든히 먹고 맥주로 배도 채우고.


불이 이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



그러게, 전기가 없었던 그 옛날 시절, 사람들은 불을 지펴두고 둘러앉아 살았잖아.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것들이 풍요로웠던 우리는, 이런 작은 발견도 새롭고 신기했다.



밤 10시 취침. 캠핑장의 밤은 평소보다 짧았다.

11월 말의 도쿄, 아직 가을 다운 날씨였는데, 밤 중에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난로를 하나 빌렸는데도 부족했다.

초보 캠퍼에게 겨울 캠핑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밤 중에 추워서 몇 번을 깼지만, 가지고 온 옷들을 몽땅 껴 입고, 어떻게든 밤을 견뎌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장작불 다루는 게 아직 어려워서, 새까맣게 탄 머핀과 따뜻한 커피 한 잔.


이렇게 1박 2일, 짧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첫 번째 캠핑이 끝났다.



11월 말, 첫 번째 캠핑 이후로, 캠프 가고 싶어서 병이 난 우리.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어제 도쿄는 4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과연, 봄은 찾아올까.


아, 캠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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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fv.co.jp/

〒357-0111 埼玉県飯能市上名栗3196
TEL:042-97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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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생활과, 나이를 거꾸로 먹은 비글 한일 부부 일상,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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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컨설팅 펌에서 4년 근무, 현재 일본 미디어 기업에서 기획&마케터로 일합니다. 주말에는 도쿄 내 카페를 돌아다니거나, 긴 휴가 때는 남편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천생 YOLO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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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부터 시작한 블로그. (요즘은 업데이트가 드물지만, 가끔 소통위주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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