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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Jun 13. 2022

대충 살 용기

삶 #10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1.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말겠어.


나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과 생각이 행동보다 앞서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나는 언제나 후자에 속한다. 예컨대 운동할 때 신을 헬스화를 하나 사야 한다고 하자. 유튜브에서 추천 영상을 찾아보고,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물어서 일반적으로 어떤 신발을 많이 신는지 알아보고 후보 리스트를 정한다. 그 리스트에 속한 후보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보면서 각각 장단점이 무엇이 있는지 한참을 알아본다. 러닝에 적합한 운동화? 웨이트 트레이닝에 적합한 운동화? 가격은? 디자인은? 발목은 잘 잡아주나? 쿠션감은? 등등등. 그냥 운동화 하나 사는데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본다. 그러다 보니 선택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국에는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좋게 말하자면 신중한 것일 수도 있지만, 행동은 않고 주변에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는 갑갑한 친구, 그게 나다.


나의 주변인들에게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바로 "자취 논쟁"이다. 본가에서 나와서 자취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출퇴근 시간이 지하철 타고 편도 1시간~1시간 반으로 상당히 긴 편이라 회사 동료들이나 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취 안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고민 중이라고만 답하고 있다. 자취를 해야 하는 이유 1. 너무 멀다. 집에서 본사가 있는 용산은 그나마 가깝지만, 메인 클라이언트가 있는 잠실은 한번 다녀오면 하루에 왕복 3시간이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체력적, 정신적 소모는 어떻고? 2. 자취의 로망. 한번 나가서 혼자 살아보고 싶다. 방도 예쁘게 꾸미고, 여자친구와 맛있는 것도 만들어먹고, 유튜브 보고 빵을 구워서 홈카페도 해보고... 볕이 넉넉히 들어오는 창가에 소파와 탁자를 두고 라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지. 비가 오면 창문을 살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자야지.


나의 허파에 자취에 대한 분홍빛 설렘이 가득 찬 순간, 내 마음속 불만 요정이 귀에 힘빠지는 소리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요즘 전셋값 엄청 오른거 알지? 매물도 별로 없고. 자취 한번 하면 연봉 천만원 깎고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너 맨날 밥차려먹을 자신 있어? 처음에야 신나서 맛있는거 만들어서 그럴듯하게 플레이팅해서 인스타에 올리고 하지, 바빠지면 귀찮아서 맨날 시켜먹지 않겠니. 니가 혼자 안살아봐서 그렇지, 혼자 살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빨래, 요리, 설거지, 청소... 그리고 부모님이랑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래. 결혼하면 어차피 나갈 것 아니야. 그 전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니? 그리고 너 요즘 재택근무 많았잖아. 자취를 꼭 해야겠어? 이제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에 좀 익숙해지기도 했잖아?" 친구의 말. 그럼 자취 안해도 되겠네~ 그 말을 듣곤 내 마음속 설렘 요정이 입이 댓발 나와서, "아냐 근데 또 자취 한번 해보고 싶긴 하고... 지금 아니면 언제 해봐? 고민 좀 해보려고..."


요즘 전셋값은 어떤가 직방만 뒤적뒤적. 오 여기 괜찮네? 근데 좀 비싸다. 친구들한테 어디가 자취하기 괜찮냐고 묻고 다니고. 사당이 괜찮다더라, 서울대입구? 숙대입구? 당산? 자취해야지 해야지. 할까말까 고민이야 고민이야. 자취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없는 한 절대 행동하지 않는다. 자취했다가 저축 못하면 어떡해? 자취했다가 괜히 맨날 재택근무하면 손해 아니야? 이렇게 우왕좌왕하는게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도 "제발 할거면 하고 말거면 좀 말아라 이제"라고 비명을 지를 것이다.


내가 실제로 자취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의 결론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선의 선택,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내 마음속 설렘요정과 불만요정이 멱살 잡고 싸우는 그 과정에 대해 나는 불만이 있다. 나는 단지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정보들을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가?



2. 무기력의 은폐와 가짜 활동성


그러다 읽은 글이 내 폐부를 찔렀다. 내 얘긴가 싶어서.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통제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평생 한 번도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들은 행동의 결과에 확신이 없으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 의심 탓에 항상 마음이 괴롭고 안간힘을 써 확신을 찾으며 확신을 찾지 못하면 더 심한 의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즉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은 삶을 사랑할 능력이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특히 겁내기 때문에 삶을 두려워한다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최고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러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결국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행동의 결과에 확신이 없으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 나는 항상 나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통제하려 하고, 통제는 언제나 실패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은 많지 않다. 내 노력의 결과도, 내 주변인들의 행동도, 심지어 내 마음도.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성공의 즐거움보다는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확률과 기댓값에 집중한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누구도 나의 행동의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니, 행동에 나서지 않고 생각만 하다가 흐지부지. 이렇게 나는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이 무력함을 바쁘고 분주한 척, 정신없는 척으로 은폐한다. 진정한 내면의 활동성의 결핍을 가리기 위한, 가짜 활동성이다.


위로하는 합리화의 세 번째 형태는 무력감의 억압이다... 이 경우 무력감은 과도한 보상 행동과 은폐 목적의 합리화로 대체된다. 과보상의 가장 흔한 형태가 분주함이다. 깊은 무력감을 억압한 사람은 남보다 더 활동적이고 분주하다... 모임이라면 목숨을 걸고, 하루 종일 남 걱정하느라 바쁜 것은 물론이고 카드 게임이나 하염없는 수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가짜 활동성이다. 가짜 활동성과 진짜 활동성은 구분하기 매우 힘들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분주함은 항상 해결해야 할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에까지 뻗어나가며, 정작 해결해야 할 과제의 근본 특성과는 관련이 없다... 실제 그의 분주함과 게으름은 같은 것이다. 즉 내면 활동성의 결핍이다... 나는 수동성을 의식하고 이 수동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이다... 한번 해보면 당신이 얼마나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항상 어떻게 그렇게 바쁘냐고, 어떻게 그렇게 항상 뭔가 하고 있냐고 묻는다. 일도 바쁘면서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일주일에 네다섯번씩 만나고, 운동은 언제 하고, 책은 언제 읽고, 영화는 또 언제 본거고, 여자친구와 가족들은 언제 챙기고. 한편으로는, 내가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 있는 걸 별로 안좋아하는 성격인 것도 맞다. 일주일에 하루, 또는 반나절만 집에서 쉬면 충분하다. 매주 지인들과 약속을 만들고 새로운 장소에 놀러 가고 싶다.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아주 활동적인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나는 활동적인 사람인가?


나의 활동성이 진정한 활동성인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진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길에 대해 계속해서 성찰하는 과정에서 바쁘고 활동적인 것인지, 내가 내 삶의 과제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지인들과의 술약속이나 넷플릭스, 회사 일로 바쁜 척, 분주한 척하며 자위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활동적 인간은 "흔히 말하는 분주한 사람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활동적인 사람, 활동적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이다. 그는 삶의 과정에서 쉼 없이 변하고, 모든 행위에서 같은 사람이 아니며, 정반대로 모든 행위가 동시에 그의 인성 변화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금까지의 나는 아주 수동적인 사람일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기존의 관성대로 살아가며, 안온한 나의 삶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주저앉아 있는.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아야겠다.



3. 패러글라이딩


친구들에게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인간의 삶으로 100년은 너무 짧다고. 200년, 300년도 너무 짧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인생에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것도 많았지만, 그걸 덮고도 남을 만큼 인생은 아름답다. 내 삶은 수많은 아름답고 사소한 것들의 적분이었다. 구름, 커피, 웃음, 설탕, 뿌듯함, 바람, 초록, 노을, 촉감, 깨묾, 비... 이 사소한 것들과 도무지 헤어질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말엔 나는 죽음이 두렵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죽음은 영원한 무와 어둠. 그냥 그대로 끝, 사후세계도 없고, 기억도 없고, 햇빛도 향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 공허함이 나는 두렵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감정, 다시 말해 기쁨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감정과 함께 자라난다. 진정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재와 내면 활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때문이다... 온전히 살지 못하는 사람,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자아를 초월한 사람은 실제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에리히 프롬이 쓴 것처럼 진정으로 산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내 삶이 좋으니, 그것의 부재가 싫다. 그러니 죽음은 여전히 내게 두렵겠지만, 그러니 더욱 삶을 온전히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내 삶의 가능성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종종 한다. 노인이 된 내가, 죽음의 직전에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후회하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두렵다.


올해의 나의 화두는 도전이다. 내 삶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내는 것이 목표다. 분주함과 가짜 활동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활동성을 되찾는 것.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


지난달, 제주도에 가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것이 나에겐 굉장히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모든 두려움을 벗어던진 익스트림한 도전! 근데 그렇다고 패러글라이딩하러 가면 뒤에 전문가도 다 계시고 무슨 죽음을 각오할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다! 혹시 오해할까봐. 다만 심리적 죽음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삶과 활동성을 찾겠다는 나 나름의 선언이다, 정도로 하자.


날씨가 아주 좋았던 둘째 날, 중문에서 함덕 서우봉으로 달려갔다. 제주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팁. 일반적으로 제주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탈 수 있는 장소는 남서쪽의 금오름과 북동쪽의 함덕 서우봉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대로 어디서 타고 싶다고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날씨와 바람 상태에 따라 90% 정도의 확률로 금오름에서, 나머지 10%의 희박한 확률로 서우봉에서 탈 수 있다. 나는 서우봉에서 꼭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었다. 서우봉 능선에 가득 핀 봄꽃을 보며 함덕해수욕장의 바다를 보며 날아가는 것을 여행 내내 상상했다. 친구에게 당연히 가능하면 함덕으로 가자고 했지. 무조건 금오름 쪽으로 간다는 업체, 어쩌면 함덕에서 탈 수도 있는 업체. 어떤 업체에 예약을 해야 할지 난관에 봉착했다.


여기서 나의 불만요정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도 역시 논리정연하게 나의 욕망에 반박한다. "1. 일단 너무 멀어. 지금 숙소가 중문인데 함덕이면 정반대잖아.. 2박 3일 여행에서 1시간 반을 걸려서 거기까지 가야겠어? 2. 게다가 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 바람 상태가 진짜 좋아야 서우봉에서 탈 수 있는 거고, 설령 간다고 해도 바람이 약하면 몸무게가 더 나가는 남자들은 못 타는 경우도 있어. 가서 구경만 하고 올 수도 있는 거지 3. 그러니 안전빵으로 가깝고 무조건 탈 수 있는 금오름으로 가자."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여기서조차 나는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해 도전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을 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냥 가고 싶으니 서우봉으로 가자! 언제 또 서우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불만요정이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데, 내가 서우봉을 간다고 했을 때의 최악을 가정해보자. 기껏해야 이번에 패러글라이딩 못 타는 것 아냐? 나중에 단양 가보면 되지 뭐. 리스크를 져야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우봉에서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 두둥실 나를 끌어올릴 때, 함덕 해수욕장의 에메랄드빛 바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 고요하게 유영하는 수많은 색색의 패러글라이더들이, 수평선에서 같은 색으로 이어진 하늘과 바다의 사이에서, 사실 저 하늘 위 끝까지 바다였어, 사실 저 바다 아래 바닥까지 하늘이었어, 하고 말하는 듯했다. 도전하길 잘했다.


4. 대충 살 용기


태어나겠다는 마음가짐(이것은 모든 '안전'과 망상을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은 용기와 믿음을 요구한다. 안전을 버릴 용기, 타인과 다를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딜 용기다.


이제는 좀 대충 살기로 했다. 막 산다는게 아니고, 생각을 너무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일단 행동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살아보려 한다. 대충 살아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의 수동성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활동성을 되찾기 위해서. 관성과 안전지대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보기 위해서. 그래서 올해는 패러글라이딩을 시작으로 도전을 참 많이 하고 있다. 다이어트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할까 말까 고민만 하던 PT를 시작했다. 또, 회사에서는 해보고는 싶었지만 해본 적 없는 일이라 할까말까 고민만 하던 태스크포스에 지원을 해서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다.


나와 같이 신중이란 명목으로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보통 최악의 상황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의 경우 그 최악이라는 상황이 별 것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업이나 코인을 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일상적으로 새로운 시도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보는 경우에 말이다. 서먹한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의 최악이래봐야 상대방이 시큰둥해서 그냥 여전히 서먹한 상황이고, 할까말까 고민하던 PT를 했을 때의 최악의 상황이래야 기껏해야 돈 좀 날리고 마는 거겠지. 근데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쩌면 내 평생친구가 될 사람을 놓치거나, 멋진 몸매를 가지게 될 가능성은 아예 꿈도 못 꿀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나의 일부분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나의 안전지대와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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