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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Sep 14. 2022

카페를 사랑하는 101가지 이유

삶 #11. 카페인과 함께한 추석

1. 9의 카페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6일간의 추석연휴의 마지막 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 연남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 중 하나인 연남장에서 연휴의 끝나감을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이곳이 이번 연휴 아홉 번째 카페임을 깨닫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목요일, 연남동에서, VERS

금요일, 경기광주 오포에서, 공감플랫폼

토요일, 일산 밤리단길에서, 티코커피

일요일, 상수에서, 어반플랜트

월요일, 가평에서, 리버레인, 이정웅스페이스, 라온숨

화요일, 연남동에서, 조앤도슨, 연남장


혹 궁금할 수 있으니 좋았던 몇군데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VERS는 경의선 숲길 끝자락의 2층 주택을 개조한 카페인데, 밀크티가 유명하고 플라워카페라 초록색 화분과 드라이플라워로 가득한 내부가 아름답다. 이번엔 초코바나나케익을 먹어봤는데 입에서 말그대로 녹는다. 부드러운 초콜릿과 바나나향이 조화롭다. 다른 디저트도 다 맛있었고 좌석도 다양하고 편안해서 혼자서도, 함께도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다음은 일산 밤리단길 티코커피. 요즘 무수히 생긴 x리단길들 중 경리단길, 송리단길, 용리단길 등 다음 24순위정도 될 일산 밤리단길에서 크로플로 유명한 카페. LP판이 돌돌 돌아가며 잔잔하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내부도 좋았지만 9월 초의 날이 선선해 테라스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꽤 넓었다. 대낮이지만 알전구 조명이 걸려있고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이 시원했다. 커피는 약간 산미가 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좋았다. 브라운치즈크로플은 사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짭쪼름한 브라운치즈를 말그대로 때려박았는데, 크로플 위에 올린 호두마루(로 추정)와의 조화가 참 좋다.


리버레인은 언제 방문해도 뷰가 참 좋다. 요즘 뷰 맛집이라고 하면 그 뷰를 즐길 수 있는 좌석은 창가 한두군데 뿐이고 나머지는 그냥 그런, 좀 사기당한 기분이 드는 곳도 많은데, 리버레인은 5층까지 많은 좌석들이 다 북한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3층과 4층은 1층과 5층은 테라스로 오픈되어 있는데, 날씨가 좋다면 테라스에 앉는 것을 추천한다. 빵은 모든 종류가 기본 이상은 하므로 그날 땡기는 걸로 고르시길.


조앤도슨은 4번째인지 5번째 시도만에 처음 성공했다. 조앤도슨의 프렌치토스트를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인기가 많고 좌석이 많지 았아 항상 웨이팅이 심해서 번번히 빠꾸를 먹었더랬다. 마침 평일에 휴가라 연남동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때다 싶어서 가보니 자리가 넉넉했다. 바테이블에 앉아 프렌치토스트와 아쌈 밀크티를 주문. 프렌치토스트의 맛이 너무 아름다워 진실의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겉바속촉 그 자체. 속은 오믈렛처럼 부드럽고 겉은 토치로 그을려 마치 크림브륄레처럼 바삭하다. 처음에는 메이플 시럽을 곁들여 먹다가, 중간부터는 말돈 소금을 찍어먹도록 안내해주는데, 이게 프렌치토스트의 풍미를 아득히 높은 단계로 더 끌어올려준다. 이것도 진짜 진부한 표현인데 단짠단짠 그 자체. 나의 진부한 묘사와 달리 조앤도슨의 프렌치토스트의 맛은 진부하지 않다. 다른 카페도 다 각각의 감상이 있고 기억에 남지만 이미 4절까지 다 쓴 것 같아 5절까지는 가지 않겠다.



2. Caffeine & Life Balance

이렇게 카페에 진심이긴 하지만 가끔 카페인을 좀 줄여야하나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스라떼에 샷추가를 해서 진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보니 하루에 총 6샷, 8샷씩 먹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원래도 약간 만성위염이 있다보니 건강에 좋을리는 없겠다. 밀가루도 마찬가지다. 밀가루의 친구인 버터와 설탕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카페인과 밀가루가 없다면 사는 재미의 반은 사라질텐데. 영생을 꿈꾸지만 카페에서 보내는 오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어떤 카페에서 보내는 하루를 사랑하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어떤 카페를 좋아하게 되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 당연히, 커피가 맛있는가?특히 나는 플랫화이트가 맛있는 곳이 좋다. 디감이 어떻고 초콜릿향이 어떻고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원두의 특색이 어떻고는 막입이라 그런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맛이 있고 없고는 알 것 같다. 태울대로 태운 스벅 원두는 최악이다.

- 좌석은 편안한가? 인스타감성 원툴 카페들처럼 등받이 없는 의자는 최악. 파에 늘어져 있을 수 있다면 최고.

- 그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색있는 디저트 존재하는가?커피의 완성은 디저트.  ex. 조앤도슨, 쥬마뺄

- 뷰도 중요하다. 바다, 강, 산,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곳이면 최고. ex. 여수 라피끄, 파주 레드브릿지 등

- 풀이 많은 곳이 좋다. ex. VERS, 마이알레, 앤드테라스

- 건너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지도 중요한 요소. 층고가 높은 곳이 좋다. 소리가 덜 울린다.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귀가 아프고 대화가 힘드니 오래 있기 힘들다.

- 그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 사장과 단골이 구성하는 그 공간의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라면 여러번 다시 가고 싶어진다. ex. 상수 듁스커피

- 등등등...


나는 어쩌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렇게나 좋아하게 되었을까? 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곳이 아니다. 그 공간의 독특함과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카페의 고유한 색상을,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런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3. 소비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나는 엥겔지수가 참 높다. 다른 데 쓰는 돈은 별로 없는데 먹는데 번 돈 다 쓴다. 반면 나는 실체가 있는 물건을 사는 데에 별 관심이 없다. 멋진 차, 삐까번쩍한 구두, 시계, 옷, 전자기기..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지출의 우선순위가 낮다. 있으면 좋기야 좋지만 어차피 금방 질릴걸 아니까.


반면 내가 돈을 아끼지 않는 몇가지가 있. 책, 음식, 여행, 공연 같은 것들이다. 이유가 있다.


공연으로 예를 들자면,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가서 그가 부르고 연주하는 노래를 듣는 그 2시간 남짓의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녹화로도 녹음으로도 재현될 수 없으며 오직 한 사람의 기억에만 남게 되는 경험이다. 이 세상에 같은 공연은 존재하지 않는. 같은 아티스트라도 매 공연마다 플레이리스트가 다르고, 같은 곡이라도 편곡이 다르다. 계절마다 온도가 다르고, 장소의 분위기가 다르고, 모인 사람들이 다르고, 그에 따라 관객들의 반응이 다르고, 향이 다르고 빛이 다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콘서트에 관객으로서 참여하면, 내가 경험하는 그 고유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그 아티스트와, 그 공간에 모인 관객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경험과 비교 불가능한 고유한 것이다. 그 날의 날씨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이나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르고 소중하다. 커피나 디저트의 맛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요즘은 배민에서도 맛있는 커피, 디저트를 시켜먹을 수 있으니 맛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그 순간의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보낸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은 자신의 자원을 사람과 관련된 것에 많이 쓴다는 점이다... 최근 주목받는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에 비해 물질에서 얻는 즐거움은 더 빨리 적응되어 사라지고,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를 더 자주하게 된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카페, 공연, 독서, 여행 모두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험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험들이다. 가면 갈수록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서, 점점 더 물질적인 것보다 나와 보내는 시간,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돈을 쓰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에서 큰 행복을 느끼다보니, 소비 성향도 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내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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