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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럼 Feb 23. 2016

아버지의 틀린 산수

산수를 모르시는 아버지


남들은 

수판에

전자계산기에

콤퓨턴가 컴피탄가 하는

이상한 기계까지 동원해대며

손익을 계산하지만

아버지의 공식은 언제나

“심은 대로 거둔다”였지요


산수 시험을 치를 때면

아버진

통통하게 알 밴 우량종 볍씨를 골라

다시, 그중 실한 놈만을 

가려서 

소독하고

밤낮으로 물 갈아

정성껏

싹을 틔웠지요


어떤 이들은 

이따금 공식을 무시하고

복잡한 계산 과정을 스리슬쩍

지나쳐버리기도 하지만

아버진 절대로 그러는 법이 없으셨어요

겨우내 얼어붙은 딱딱한 시험장을

쟁기로 갈고

경운기 로우터리로 잘게 부수고

평평하게 다듬어 옥토를 만드신 후

거름이 들어가야 할 곳엔 반드시

푹 썩은 닭똥 한 더미에 쇠똥 두 무더기를 

곱게 부수고 자알 섞어 까시고

모 포기 하나라도 빠진 곳이면

빠짐없이 

꼬옥 꼭

심어 넣으셨지요


지리도록 장마가 지고

사나운 태풍이 몰아칠 때면

아버지의 산수 시험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어요

피땀을 뿌려

어렵게 어렵게 키우고 가꾼 벼 포기들이

밤과낮을이어퍼부은소낙비에

논둑옆구리가터 져걷 잡 을 수없 이쓸

려 내려가고

아기를 잉태한 나락이삭이 핏기 가신

잔인한 바람에 얻어맞아 모가지가 꺾

이고

차마 끔찍한 생명을 유산하기 

일쑤였답니다

그럴 때면, 당신께서는 

한참을 못 누우시고

전장보다 처참한 시험장에서

퍼부어대는 빗물에 눈물이 씻겨내려

하늘도 알지 못하는 울음을 

밤새워 울곤 하셨지요


들이붓는 소낙비로

주먹만 한 우박 덩이로

논바닥 쩌억 쩍 갈라지는 가뭄으로

거기다

비닐하우스 깔아뭉개는 폭설까지

아버지의 산수 시험을 무던히도

힘겹게 하고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으로 몰고 가던 자연도 결국엔

그분을 속이진 않으셨어요

콩을 심은 데에는 어김없이

싱싱한 콩 포기가 자라 주었고

팥 심은 데에는 

짙은 녹색이 바다를 이루었으며

볍씨 뿌린 논에는 틀림없이

속이 꽉 찬 겸손한 벼 이삭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흐뭇한 결실로 

보답해 주었지요


근데, 어인 일인지

아버지의 산수 시험지는

매번 틀린 답으로 돌아오고

영점 처리가 돼 있기에 십상이었어요

피를 짜내 곧추세운 그 값진 열매는 

웬일인지 시장에만 나가면

똥값이 되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고

밑 닫힌 독에 엽전 쌓이듯 한 해 두 해

차고옥차곡

빚만 불어갔지요

그래도 아버진 불평 한마디 없이

고집스레 틀린 답만 

검산하셨어요

그러고는, “거름이 부족했다”시며

꼭두새벽 

썩은 두엄을 지게로 져 나르시고

허리 한 번 펴질 않으시고

피사리를 하셨지요

한 번은

육백 평이나 심어 가꾼 파밭을

운송비도 못 건지게 되어 트랙터로 갈아엎으시던 날

“올해에 생두엄을 이렇게나 많이 해두었으니

내년엔 틀림없이 풍년이 들겠구나!”

쓰디쓴 웃음만 허허 

웃으셨지요


산수를 모르시는 아버지

쏟아붓는 햇덩이 아래서

당신의 단 하나

“심은 대로 거둔다”란 공식이 맞아떨어지는

그날을

당신의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아 

보람 있는 결실로 열매 맺는

가슴 벅찬 그날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고통스레

문제를 푸시는 사랑하는 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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