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평등 추구하기
나는 젠더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젠더학은 페미니즘을 포함하고 LGBTI, 퀴어 이론,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적 관점으로 젠더학을 배우는데, 여기서 접하는 많은 학자들이 이분법을 비판하고 있다. 이분법이란 한 사회현상을 살피기 위해 두 가지 카테고리로만 나누어 분석하는 관점으로 예를 들면, 지배자/피지배자, 좌파/우파, 남자/여자 등 이 있다.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 이슈들을 둘러싼 수많은 분쟁에서 여자와 남자로 나눈 성대결이라는 이분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에서 양성평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군대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 남성들을 의무적으로 징집하고 있다. 거기에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 외 신체가 불편한 남성들도 배제됨).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희생당한 것을 이야기하고 여기에 반하여 여성들은 자신들만이 겪는 아픔들을 털어놓으며 반박한다. 예를 들면,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성폭력(성추행/성희롱/성폭행), 독박 육아 등. 그렇지만, 각 성별 그룹만이 겪는 피해 경험을 털어놓고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에 다가가지 못한다.
한국사회에 산재하는 성차별 문제가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평등과 권리를 외쳐야 한다. 양성평등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같은 말이다. 페미니즘은 용어에 페미닌(feminin:여성의)이라는 어원이 들어가서 오해를 사는 이론이다.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추구하고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와 가부장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주어진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학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회는 남성지배적 가부장제이다. (사실상, 가모 장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99.9%의 사회가 가부장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부장제는 남성이 주제(Subject)로 여겨지며 여성은 남성을 위한 존재인 객체(Object)로 격하시킨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인 남성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하는 여성이 좋은 여성상인 것을 보면 주체로서 사는 여성의 삶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동떨어진 이미지인지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주체로서 살려고 하는 여성, 즉 기존의 좋은 여성상과 먼 여성을 비하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여성을 보고 '기가 센 여자', 30살이 넘은 나이에 혼자서 일만 하고 사는 여성을 '노처녀',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린 여성에게는 '싼티 나는 여자', 보이쉬하게 스타일링한 여자에게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지 않다' 등 가장인 남자의 말을 잘 듣고 조신하게 수동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여성이 좋은 여성상이기에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이에 비해 조금 더 최근에 나온 용어로는 명품 사고 돈지랄하는 '된장녀'(그녀들이 돈 쓰는 것은 사생활이다), 조신한 한국 여성이 아니어서 붙은 '김치녀' 등이 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억압으로 작용한다. 가부장제는 가장의 역할을 잘 하는 남성이 좋은 남성상이기에 한국사회에서 남성성에 해당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남자들을 비하하고 모든 남성들이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기를 사회적으로 압박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는 '남자다운' 남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회인이 되는 데 돈을 잘 버는 것이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다. 늦은 나이에 (이 나이는 여자에게 해당되는 나이보다는 훨씬 많다) 결혼하지 못하면 '노총각'으로 불리며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남자가 부엌을 들어가서 살림을 하면 남자의 어머니가 안타까워한다. 장남에게는 부모님을 모시는 것과 용돈을 주는 것이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억압으로 다가오는 가부장제는 이성애 중심주의로 그 기능을 더 견고히 하고 있다. 가부장제에서 가장(남성)은 자신을 뒷받침해줄, 즉 내조를 해줄 여성이 필요하다. 가장에게 종속된 여성이 바깥양반인 가장이 바깥일, 외조를 하는 동안 허드렛일부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인 가부장제에서 가장과 같은 지위인 다른 남성은 가장의 배우자가 되면 안 된다. 이 논리가 기본적으로 깔린 이성애 중심주의 가부장제는 여성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동성애자들까지도 강하게 억압한다.
모든 사람에게 억압과 압박으로 작용하는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평등과 권리는 질량이 정해진 물질이 아니다. 수많은 시민이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싸워서 합의 하에 넓혀가는 것이다. 왕권시대에는 모든 백성과 신하들은 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인권 선언서를 비롯해 인권에 대한 인식이 퍼져나가면서 세워진 것이 바로 시민사회이다. 시민은 시민들 사이에서 합의하여 지도자를 뽑는다. 지도자는 지도자일 뿐 더 이상 지배자(왕)가 아니어야 한다. 현재 사회는 시민사회이다.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성차별이라는 부조리함에 대항하여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데 연대해야 한다. 이 연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권을 함께 추구해 나갈 동반자로서 인식할 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시민이라는 공통점과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연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