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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reno Jan 03. 2019

잊혀진 그들을 기억하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너무 많이들 죽었어요. 잊혀지겠죠? … 미안합니다.“


영화 ‘암살’에서 해방 이후 약산 김원봉 선생이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서 나눈 한마디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독립운동가로 제대로 인정받고 후세에까지 기억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어떤 기록으로 남아있을까. 그들의 흔적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에 위치한 민족저항실 2실. 그곳은 이름도 잊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추모 공간이다. 이 방의 천장은 나무로 만든 옛 지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한쪽 벽면으로 커다란 창문이 나 있는데 형무소 내 마당을 내다볼 수 있다. 바닥의 가운데에는 네모난 흰 바닥이 있는데, 이 흰 부분에 발을 디디면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처음 이 방에 들어서면서 '여긴 뭘까?' 했는데, 온 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을 가까이 가서 보니 일제 시대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던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옥중사진과 수형기록표였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부터 늙은 노인들의 모습까지, 그들은 모두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작은 크기의 옥중사진들이 벽면 가득 있는 것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옥중사진과 수형기록표가 전시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5500명이다. 일제 치하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 중 독립운동가들의 사진만 전시해놓은 것이며, 이 중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178명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5500명의 옥중사진 중에는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독립운동가들이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유일하다. 기록에 의하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략 4만 명인데, 그나마 이곳에 사진과 기록이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이곳에 전시된 5500명 외에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은 너무나 많다. 우리가 더 찾아내고 기억해야 할 잊혀진 그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바닥의 흰 부분에 발을 올리고 나직히 나오는 나레이션에 귀를 귀울여본다. 사진과 이름만 겨우 기록으로 남은 많은 사람들과, 그 기록마저도 남겨지지 않은 채 역사에서 잊혀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나레이션으로 그분들께 바치는 감사의 마음을 대신 전한다.


"나오세요. 많이 추우셨죠, 많이 힘드셨죠, 많이 아프셨죠, 많이 그리우셨죠. 나오세요. 그 아픈 기억에서 이젠 벗어나세요. 당신이 목숨 바쳐 지킨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컸습니다. 많이 큰 대한민국을 지켜봐 주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대한민국이 당신을 문 밖에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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