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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자 Aug 26. 2017

Episode 07. Venice (2)

무라노, 부라노, 그리고 리도

어제 밤에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창문 밖으로 천둥 번개가 치고 엄청난 돌풍이 몰아쳤다. 숙소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야외 파라솔과 의자가 다 날아갈 정도로 심했다.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날씨도 꽤나 안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거리로 나갔지만 따스한 아침 햇살대신 흐릿한 뭉게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다른 도시라면 몰라도 베니스, 특히 본섬 주변의 3개의 섬을 돌아다니는 오늘만큼은 날씨가 좋기를 바랬기에 낙심했다. 섬에서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야 하고 여행 영상도 베니스에서의 2박 3일만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바포레토에 올랐다.

바포레토를 타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사진 걱정은 잠시 떠나갔다. 항상 배를 타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져왔어서 그런지 배 위에서의 모든 것들이 마냥 좋았다. 첫 행선지인 무라노섬까지 가는 40분 동안 좌석에도 앉지 않고 조타실 옆에 서서 바다 바람을 맞으며 갔다. 머리결을 가르는 바람도 참 시원했고, 옆을 지나가는 작은 보트와 저 멀리 바다 위 성당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난 일주일간 이탈리아의 더위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하얀 물거품과 함께 흘려보낼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를 즐기니 무라노섬에도 금방 도착했다.

무라노는 정말 아름다웠다. 본섬에서 도시 정중앙을 가르는 거대한 운하와 섬들 사이를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다양한 배들에 감탄을 했다면, 무라노는 그보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건물들이 본섬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은 부라노가 제일 이라지만 붉은 계열의 벽들이 통일감을 주어 좋았고, 강한 해풍으로 벗겨진 페인트칠마저 빈티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마음에 들었다. 파란 하늘을 사진에 담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쉬웠다.

섬을 거닐며 무라노의 붉은 집들이 구름낀 하늘과도 꽤나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삼각대 대신 난간에 카메라도 올려놓고 인생샷 좀 건저보려는 찰나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서둘러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놓고 근처 상점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아무 상점이나 들어간 것인데 무라노답게 여러 유리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여행지를 다니며 기념품을 하나고 사지 않고 버텨왔는데, 여기서 구매 충동을 참지 못하고 팔찌 두 개를 사버렸다. 동생이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상점 몇 군데를 다니며 공예품을 구경하다보니 비가 그치고 조금씩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언제 또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기 때문에 부라노섬만은 파란 하늘과 함께 감상하려 곧바로 바포레토 선착장으로 향했다. 점심 때가 다 되어 길가의 레스토랑이 코끝을 자극했지만 사진에 대한 집념 하나로 배에 올랐다. 아직까지 배에 대한 로망이 가시질 않았는지 역시나 운항 내내 서 있으며 즐겁게 바다 구경을 했다.

부라노섬으로 가는 바포레토에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직전 여행지가 동양인을 겨우 두세명 본 베로나라 그런가 특히나 많게 느껴졌다. 베니스 관광지를 찾아보다 색감이 좋길래 부라노행을 정했었는데 알고보니 아이유 하루끝 뮤비촬영지로 유명해진 것이었더라. 역시 한국 사람들이 사진 잘나오는 곳은 잘 찾아다닌다. 그럴만도 한 것이 섬의 초입부터 집집마다 칠해진 강렬한 원색의 페인트가 배에 탔던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섬에 진입하자 카메라 셔터소리가 정신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라노보다 날씨도 맑아지고 있어서 너무도 예뻤다.

부라노섬을 걷다보면 정말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모두 붉은 계통이었던 무라노와 달리 분홍, 초록, 파랑, 보라 등 갖가지 색이 다양하게 칠해져 있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관리를 하는 것인지 관광객을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페인트가 벗겨진 곳도 별로 없어 깔끔했다.

집집마다 걸어놓은 예쁜 화분들과 간간히 보이던 작은 조각상들도 단색의 벽과 잘 어울렸다. 집 빼고 정말 별 거 없는 마을이지만 오후가 되자 푸른 하늘도 슬슬 모습을 보여서 두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강박적으로 셔터를 많이 누른 여행지가 있나 싶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보다보니 강렬한 원색의 색감들로 인해 눈이 피로해졌다. 사진을 찍다 주위를 돌아보면 한국인 관광객들만 많아서 우리나라 테마파크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예쁜 건물 말고도 레이스 공예가 유명하다고 한들 무라노의 유리공예처럼 특화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지만의 분위기를 느끼긴 조금 힘든 곳이었다. 무작정 사진만 찍다 주위를 돌아보니 급속도로 피곤해졌다.

부라노섬을 모두 둘러본 다음에는 리도섬으로 향했다. 리도섬은 현지인들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해변이 있다는 소식에 일정에 포함시킨 섬이다. 리도섬으로 가는 바포레토에서는 아침의 그 낭만은 어디로 갔는지 잽싸게 자리에 앉아 바깥도 안쳐다보며 50분을 보냈다. 부라노섬의 반대편에 위치하여 상당히 오랜 시간 배를 탔다.

리도섬은 어제 둘러본 베니스의 본섬, 그리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무라노&부라노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넓게 깔려 있던 도로부터 지금까지 다닌 바다 위 도시 베니스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위 아래로 가늘고 길게 뻗은 형태의 리도섬에는 일반 버스도 많이 보였고, 사람들이 자가용 보트가 아닌 평범한 차를 타고 다녔다. 부라노에 기가 빨려 한껏 지쳐있었지만 색다른 풍경을 마주하니 다시 생기가 돋았다.

리도섬 안 쪽으로 조금 들어가다보니 자전거 대여소가 보였다. 예전에 관련된 블로그 포스팅을 본 것이 기억나서 바로 여권을 맡기고 자전거를 대여했다. 자전거를 타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리도섬에 온 목적인 해변이었다. 지도에서 봤던 모습처럼 양 옆으로 정말 긴 해변이 이어졌다. 완전히 걷히지 않은 구름때문에 해는 제대로 안보였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노을빛이 하늘을 물들여 멋진 풍경도 만들어졌다.

해변 풍경을 조금 둘러본 후 자전거 타고 신나게 리도섬 전체를 누비고 다녔다. 섬 전체가 평탄한 지형인데다가 도로도 계속 일직선으로 뻗어 있어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았다. 여기에 베니스 본섬쪽으로는 경치 좋은 해변이, 반대쪽에는 해안 산책로가 있어 시원한 바다 바람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해가 질 때까지 타고 싶었지만 또 다시 떨어지던 빗방울에 쫓기듯이 산마르코 행 바포레토에 올랐다. 이번 여행 최고의 힐링 시간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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