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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지앵 Feb 06. 2024

수영 첫날을 기억해 보면

수영 초보 탈출기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목욕탕에 꼭 때를 밀러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말에는 아버지와 함께 때를 밀러는 갔지만, 그 외에 방학 중 평일이라든지 정기적으로 부모님과 목욕탕에 가서 “씻는 목적”으로 가는 것 아니고는 놀러 갔던 기억이 짙다. 동네 친구들과 그 좁은 탕에 수영하러 갔던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수영이라기보다는 잠수해서 물장난 치러 간 거였다. 평일 낮이니 한산하기도 했던 거 같고, 아무튼 한여름에 육지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피서였던 것.


그 시절 이후로는 사실 물과는 영판 접할 일도 없었고, 그저 바라보는 게 좋았던 거 같다.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즈음에 할아버지 산소(충남 금산)에 갔다가 주변 계곡에 들렀는데(운일암반일암), 더운 한 여름 대낮에 그 맑고 시원해 보이는 물에 들어가 볼 생각조차 안 했던 걸 보면 특별히 물에 뛰어들어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발만 좀 담그다가 아버지가 투망질해서 잡은 물고기나 희롱하고 그랬던 거 같다.


그런 내가 수영을 하겠다고 한 건, 그냥 한 번, “수영 정도는” 배울 시간과 여력이 있으면 한 번 “배워보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혹시나 살 빼는 데 도움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또, 꽤나 많은 운동을 즐겨했던 내가 운동 한 번 안 하던 여자 아이들도 슬슬하면 다 하는 “그깟” 수영쯤이야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거기에다가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수영 강습 신청에, 엄청난 뽑기 운으로 1번으로 수영 초급반에 당첨되어 버린 것이다. 새벽반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여기 서귀포 국민 체육관은 선착순이 아닌 100% 추첨이라서 손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2024년 새해 첫 목표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영 강습에 빠지지 않고 가기가 되어버렸다. 처가 어른들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도 아침잠 많은 내가 새벽반 수영을 간다고 하니 두 팔 들고 환영한 건 당연지사. 내 앞에서는 더 먹으라고 하시던 장모님께서도 뒤에서 와이프에게는 살이 많이 쪄서 큰일이다라는 말씀을 하영 하셨다는 전언을 듣고 내심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이마트에 나와 와이프를 직접 끌고 가 당신들은 목욕 가방 사신다면서 내 수영복이랑 세트로 다 사주시고, 아무튼 의지도 피크지만 부담도 그만큼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주변의 ‘기대’도 나에게 부담이었지만, 진짜 부담은 다른 데 있었다. 언제나 생각했던, 배울 시간과 여력이 있으면 한 번 배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 ‘시간과 여력’은 말 그대로 시간과 여력이 아니었다. 사실상 대학원생이었고, 대학 강사를 하던 나에게 운동하려는 시간과 여력은 내려면 언제든 낼 수 있었던 것. 진짜 진짜 선뜻 수영을 못 한 이유는 바로 비만으로 풍부한 나의 상체와 언제부터인지 꾸준히 자라서 요상스럽게 자리 잡은 가슴털!!!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시간과 여력을 내세웠지만, 와이프에게 내밀하게 핑계를 댈 때에는 바로 저 두 가지 때문에 수영을 아무래도 못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몸을 만들고 왁싱하면 수영을 하겠다 하고 언제나 공언했었다.


수영장에 갈 날이 사흘 앞, 이틀 앞,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불안한 마음을 네이버와 다음 검색에서 달래곤 했다. ‘과연 이런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 생각하면서 녹색창에, ‘가슴털, 수영장’, ‘비만, 수영장’, ‘초보 수영 가슴털’ 뭐 이런 검색어를 넣고 있었던 것. ㅎㅎㅎㅎ 그런데! 역시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살 빼려고 수영을 하고 싶은데, 수영장에 가면 다 쳐다보지 않을까요?’ 같은, 살에 대한 고민은 뭐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하는 고민이고(그런데 그 정도는 아마 다 다를 것이다. 빼짝 마른 우리 와이프도 뱃살 나왔다고 하는 마당에…) 가슴털 고민도 꽤 많았다. ‘가슴털이 길고 많은데 수영장 가면 다 쳐다보지 않을까요?’라는 고민에 ‘얼마나 털이 길면 고민하세요? 미역 줄기처럼 된 거 아니면 아무 관심 없습니다.‘ ’땋을 정도‘ 아니면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근데 같은 시간대 수영하시는 분 중에 하트 모양으로 털이 숭숭 나신 분이 있습니다. 넘 신기해요.’(관심 있네. ㅎㅎㅎ) ‘나 숨쉬기도 벅찬데 님 가슴털 볼 시간 없습니다.’ 등등 힘을 불어넣어 주는(?) 답변들이 대부분이었다. 와이프와 답글을 보면서 한참 웃다가 웃픈 기분에 도대체 왜 난 가슴털이 있어서 이런 고민을 하게 하나 내 유전자에 원망도 하고, 샤워하다가 살짝 면도도 해 봤지만 도저히 이건 면도로 안 될 거 같아서, 내 털 보고 비웃으면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뭐, 슬쩍 놀랐던 사람도 있는 거 같다만(그렇다고 막 엄청 외국친구들처럼 있는 거 아님, 내 생각에 좀 그렇다는 거지…), 다행히 이제껏 내가 다니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놀리거나 드러내서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도 1미터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얼굴만 내놓고. 가끔 일어나야 할 때가 있으면 킥판으로 가리고 일어나지. 아마도 놀라거나 놀리거나 내 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진짜 그만 둘 거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열심히.


**사진 출처: pinterest.com / liskfe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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