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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지앵 Feb 06. 2024

논어를 읽어 보자고 조심스럽게 말했었다.

나는 석박사, 대학 4년까지 모두 합해서 약 18년 정도를 국어, 한문밥을 먹었다. 최종적으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하고서 강의도 하고 연구 결과물도 여럿 발표하면서, 평생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연구하는 삶을 꿈꿔왔다. 그러나 아주 어이없는 언행을 일삼는(여기서는 이 정도로 갈음한다) 나의 지도교수를 보면서 18년 간 쌓아온 나의 커리어와 희망, 지도교수에 대한 인간적 애정 등을 단칼에 고이 접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호구지책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뒷배를 든든히 하고서 차후를 도모하자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은 공무원이 되었다.
 
처음 공무원이 되면 실무수습이라는 왜 이런 직급이 있나 싶은 그런 어정쩡한 위치에 서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정말 소심하고 무뚝뚝하고 옆 사람에 관심이 정말로 없는, 팀장 포함 네 명의 팀원 모두 그런 성격을 가진, 정말 기똥찬 팀에 처음 발령을 받았다. 실무 수습이라서 그런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그들은 진실로 나를 아무 데에도 사용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걸어주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혹자는 일도 안 하고 좋겠다고 하지만, 뭘 모르는 소리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눈치 보여서), 그저 무의미한 컴퓨터 바탕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고역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논어를 읽어보자고 비밀스럽게 말했었다.


며칠을 버티고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내 전공을 살려보고자 했다. 사내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고충이나 상사 욕을 많이 쓰더라)에 논어를 강의 노트처럼 풀어써서 올려보자! 혹시나 지적 욕망이 꿈틀대는 40~50대 형님들이 계시지나 않을까 싶은 마음에.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같이 최첨단 시대에도 은근히 논어 맹자를 읽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익명 게시판에 논어를 읽어보자고 비밀스럽게 말했었다. 댓글들은 꽤나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거기에 힘입어 논어 강의 노트를 올리게 된 것이다.
 

아무도 안 보는 이런 글을 왜 올리냐? 요즘 누가 논어 같은 걸 보냐?


4~5회를 연재하던 중, 역시나 반대 세력들이 들이닥친다. 왜 업무시간에 일은 안 하고 이런 글을 올리냐는 둥(나는 업무 시간에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기에 사실 업무 시간에 글을 쓴 건 맞지만, 글에는 원고 작성을 집에서 해서 올린다고 말했다. 이 정도 융통은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요즘 누가 논어를 보냐는 둥, 아무도 안 보는 이런 글을 왜 올리냐는 둥, 악플들이 계속 달렸다. 여기에 내 편을 들어주는 열독자들도 많이 있어서 한 때 클릭 수가 최고였을 때도 있었다. 꽤나 논란을 일으키는 상황. 여기에 겹쳐서 신규 교육을 받으러 1개월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어찌하다 보니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글을 올리지 말라고 하던 댓글들을 보면서 이 사회에 대해, 공무원 사회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따로 기회가 생기면 그때 그 생각을 풀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5회까지는 그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에 올린대로 업로드하려고 한다. 중간중간 이상한 단어(?) 용어(?)들이 나오면 앞서 설명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4~5년 쳐다보지도 않던 한문을 읽어보려니 나도 걸리는 게 많고, 틀리는 게 많지만 그냥 쉽게 쉽게 본다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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