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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Sep 27. 2016

드림웍스에서 날개를 얻다

드림웍스 스토리 아티스트 송상은양 인터뷰

1989년 생이니 아직 서른도 안됐다.

나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용이한 직업 덕분에

숱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었지만 이 아가씨만큼 자신의 꿈에 집요한 과정은 흔치 않았다.

실력과 운-그것만이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님을 증명하는 28살을 만났다.


5살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을 보고 죽어도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 나이에 결심이란게 뭐 그렇게 모질 수 있겠나?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입학해 한국 종합 예술대학에 진학을 꿈꾸지만 깔끔하게 떨어진다.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거나 재도전을 꿈꾸는데 이 아가씨는 토플학원을 등록하고 아예 유학을 계획한다.


집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어오라는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죽자고 영어공부에 매달렸지만

토플시험 결과는 늘 실망스럽기만 했단다.

이쯤되면 슬슬 자기 능력을 의심해 볼만도 한데 이 아가씨 참 무모할 만큼 자신을 믿어준다.

결국 원하는 점수를 얻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설립한 CalArts(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

입학허가를 받아낸다. (미국애들도 여기 들어갈려고 난리를 친다)


미국 유학을 와서 첫 강의시간의 악몽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토플 점수를 패스해도 실전에서 겪는 영어는 저주에 가깝다.

일상의 반 이상을 비굴한 웃음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초창기였을텐데 특유의 깡다구로 헤쳐 나간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혹시 깡으로 악으로 버티면 할만한 건가 오판하실 것 같아

재수없는 조언 한마디 남긴다.

한국을 방문 중인 외국인과 대화 좀 된다고 영어 만만히 보다가는 강의 첫 시간부터 바로 역관광 당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영어는 영어가 아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배려 가운데 만나는 영어는 너무나 친절한 단어와 속도로 구성된다.


그러나 대학은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다.

수많은 영어권 학생 중의 한명일 뿐이지, 영어 수준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유학하기 전, 몇 명의 영어권 친구들과 교류하며 영어에 자신이 넘치고 흘렀지만

나중에야 그 친구들이 얼마나 배려해주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배려 덕분에 현지에서 다시 1년을 영어 공부한다고 허비했던 흑역사가 있다.


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 이 아가씨, 결국 등록금 문제를 만나게 된다. 

전 학년 장학금은 유학생에게 거의 꿈같은 소리다.

유학생이 갖다 바치는 비싼 등록금으로 자국 학생들에게 편의제공을 하는 방식이다 보니

집에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 아니면 몇 번은 날밤 새게 고민하는게 이놈의 등록금이다.

허리를 부여잡는 마지막 등록금은 학교 친구의 부모님이 아무 조건 없이 그냥 해결해 주셨다고 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순정만화 같겠지만 겪는 사람은 공포영화다.

여기까진가? 절망으로 하루가 목숨처럼 길었던 나날이 왜 없었겠나?

어지간히도 아팠던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 아가씨, 처음으로 눈시울을 적신다.


어렵사리 학교를 졸업한 후,

디즈니 TV에서 프리랜서 풀타임 직원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정직원으로 발탁되지는 못했다.

일 년 전인가, 졸업도 하기 전에 드림웍스에서 스카웃을 해간 패사디나 아트 센터의 한국 학생이 떠올랐다.

인스타에 꾸준히 포스팅해온 자신의 작품을 눈여겨 보던 관계자들에 의해 영입 의뢰를 받았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인생 참 치사하다.

실력이 기본이라고 기회도 그런건 아니다.

누구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만

누구는 실력을 보일 여지도 주어지지 못한다.


이쯤 되면 우리같은 인간들은 귀국을 생각한다.

간판에 학력 새겨넣고 학원이나 해볼까 하는데 (학원하시는 분들께 죄송 ㅠㅠ)

이번에는 드림웍스에 들이대더니 결국 지금의 위치에 이른다.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고 2018년부터 방영될 애니메이션 TV 작업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동화책 작업도 준비 중이란다.


이 아가씨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에피소드 하나.

대개 미국 직장에서 일하면 쉽게 부를 영어 이름 하나씩은 있는 법인데 아직도 한국 이름만 고집한다.

손상은-우리도 발음이 꼬일 만한 쉽지 않은 이름인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름을 알려주고 싶어서란다.  

하긴 뭐, 지들이 아쉬우면 어떡하든 외우겠지...


어느 만화에선가,

지금을 바꿀 수 있는 건 싸우겠다는 의지뿐이라고 하더니

이 나이 먹도록 한번이라도 이만큼 결연한 적이 있었건가 싶어

부끄럽던 만남이었다.




송상은양의 작품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었으나

어줍잖은 편집 실력으로 조정을 하는 일이 아무래도 결례인 것 같아 소식만 전하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관심 계신 분들은 sangeunsong.tumblr.com을 방문해 보시길.

(텀블러 주소도 꼭 한국 이름 철자 다 적게끔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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