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던 청년에서 Entertainer로 @ Greek Theatre
2002년인가 1집 앨범이 나오기 전에, 이 방면에 정보가 빠른 친구가 어디선가 싱글 CD를 한 장 들고 와서는
들어보라고 했던 소리가 Josh Groban이었다. 그가 세상에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난 폐인이었다.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굳이 앞자리를 예약해 그와, 그의 소리와 가깝게 만났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한다.
가수들이 흔하게 던지는 농담 한마디는 커녕, 관객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오로지 노래만 불렀던---
누구는 집중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렇게라도 부끄러움을 숨기고 싶었던 수줍은 청년으로 비춰졌었다.
정말 두 시간 내내 노래만 불렀다. 지루할 정도로 순수하기만 했던 공연이었다.
Thank You라는 짧은 감사를 남기고 바로 무대 뒤로 숨어버리던 그를 10여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 친구들도 <지연>이라는 것이 통하는 걸까? LA 사람들은 유난히 Josh Groban을 아꼈고 그 역시
Greek Theatre를 가득 메운 팬들에게 고향 사람을 대하듯이 살갑게 인사를 한다.
여기가 자기의 바탕이라면서.
LA에서 태어나 LA High School For The Arts를 졸업한다.
원래는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가수로 전향한 케이스다.
대부라고 할 수 있는 David Foster가 그를 무대에 세우면서 세상에 소개한다.
(Josh의 등장은 이 시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David은 수시로 Josh가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심지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Gray Davis의 추임식에서까지 노래를 하게 만든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리허셜을 담당하는 자리가 그의 첫 무대였는데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로지 오도웰이
바로 그녀의 톡쇼에 초청해 세상에 그의 존재를 알렸다.
7학년 때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Solo를 해봤다는데 얼마나 수줍게 불렀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당시 리허셜 무대에서도 얼마나 긴장을 하던지 보는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니까.
2002년 1집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히트를 치고, 급기야 2007년에는미국 내 No.1 Best Selling이 되었는데도
그 수줍음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에 만난 그는 Entertainer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Angel>이라는 곡으로 유명한 Sarah McLachlan이 Special Guest로 오프닝 무대를 맡았는데
왜 그 노래를 안하나 싶었더니 Josh와 Duet으로 들려준다. 가수면서 작곡가면서 화가이기까지 한,
미모와 재능을 일신에 갖춘 Sarah조차 그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창법이 살짝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작년 12월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픽업되어 준비중이란다
올해 10월에 선보일 예정이라면서 미리 한 대목을 선사해 큰 박수를 받는다.
반가운 일인데 그의 소리가 뮤지컬화 되어 버린 것 같아 (그날의 공연 중에 제일 잘 불렀다.) 살짝 아쉬움이
남는건 왜일까?
이 곡이 Ending이 될거라고 다들 짐작했던지 제목 소개가 있자마자 우뢰와 같은 박수로 맞는다.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거의 떼창을 하다시피 좋아들 했다.
10여년전, MR에 맞춰 2시간 내내 노래만 하던 수줍은 청년이
농담도 잘하고, 오케스트라도 등장시키고, 게스트도 출연시키고, 화려한 무대장치도 신경 쓰고
웬만한 Entertainer 못지않은 무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소리가 그때처럼 심장까지 오지 않았다.
그냥 귀와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온전히 노래만 부르던,
그 소리에 영혼을 강탈당해 다시 찾아간 자리였는데
그때 그 청년은 거기 없었다.
왜 가장 소중한 것을 세상에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이것도 욕심이겠지---
추억 따위를 현실로 믿고 싶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