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cLAvia 행사 - 차 없는 거리
처음 LA를 만났을 때, 가장 의아했던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무슨 행사를 하면서 뉴욕의 타임스퀘어처럼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찮다.
크리스마스나 신년 행사가 열린다고 하지만 산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딱히 명소라고 할 만한 곳도 없다.
기껏 세계적으로 유명한 Strip이라고 내세우는게 베버리 힐스의 Rodeo Drive정도인데 여긴 명품이나
팔지 문화는 팔지 않는다. 거기서 뭐 대단한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 더 인색하게 평가하자면 LA의 가장 큰 관광자원은 날씨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던 LA가 몇년전부터 뉴욕을 꿈꾸고 있다.
요즘 다운타운은 거의 절반 정도의 건물이 신축이나 개축공사 중이다
철저한 상업 지역인 탓에 밤이 되면 공동화 현상이 벌어져 노숙자 천지로 변하던 다운타운이
재개발을 통해 일대 변혁을 현실화하고 있다. 주거공간으로서의 여건을 조성하여 인구 유입을 유도
하니까 당연히 일대의 비즈니스도 성황을 이루며 발전해간다. 덕분에 이 일대 집값이 장난이 아니다.
그 다운타운에서 한인타운을 관통하는 대로가 Wilshire Blvd.다.
길 양쪽으로 상업용 건물과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그 길이 Rodeo Drive로 이어지면서
바닷가인 산타모니카에서 끝난다. 세계적인 Strip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이면서도 출발점인
다운타운이 부실했던지 이름값을 못했는데 LA는 이제야 그 길에 명성을 입히고 있다.
그 윌셔 블루버드를 따라 한인타운에서부터 다운타운 One Wilshire까지 이어지는 6마일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든 것이 CicLAvia - 시클라비아 행사다.
이 행사를 위해 동서를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요지인 윌셔 길을 막는 바람에 일요일인데도 주변의 교통
체증은 유별났다. 차량 운전자들이 당하는 불편을 상쇄할 만큼 참여도가 높을까?가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이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불평을 털어놓는 운전자의 1인이었던지라 올해는 자전거를 끌고 나서 봤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리는 행사 중에 정오부터 2시30분까지 참여해 봤는데 이 엄청난 공간을
차량 운전자들이 희생한 것 치고는 규모와 참여인원면에서 실망감이 먼저인 경험이었다.
변화에는 희생과 불편이 동반된다지만 이미 지속적으로 열려 왔고 홍보도 막대한 행사에 비하면
날씨가 화씨 10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LA는 2017년까지 차 없는 거리의 날 행사를 매달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확대할 계획이다.
시클라비아에는 생전 보지도 못한 별별 자전거들이 등장해 눈길을 받는다.
할리 데이비슨을 모티브로 한 자전거부터 신개념 레포츠 장비라고 하는 Trikke까지 타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가 더 솔솔 할 정도다.
이번 행사에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자전거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자전거 택시>다. (정말 영업용일까??)
자전거에 소파를 얹고 더운 날씨에 아이스박스까지 장착한 영혼에 감동을 넘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동네에서나 놀던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어른 못지않은 실력으로 도심 한복판을 누비느라 신이 났다.
흥미로운건 그렇게 다니면서도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던 Brompton을 이번에는 열대 이상은 볼 수 있었는데
모두 커플이 타고 다닌다는 점이다. 스타일리시하고 아무리 작은 차라도 2대는 가뿐히 꽂을 수 있는 실용성
때문이지 제법 인지도를 얻어가는 것 같다. 문제는 가격인데 기본이 1,500불부터 시작하는 사악한 자전거다.
접는 특성 때문에 덕후들 사이에서는 경량화가 평가기준인데 이때부터는 가격이 악마의 자전거 수준이 된다.
데이트하는 커플에게 차가 다니지 않는 도심 한복판의 낭만은 최적의 작업환경일 것이다.
그녀의 심장에 다가가기 위한 남자들의 수고가 작렬하는 태양보다 더 뜨겁다.
여자는 웃지만 남자 허벅지는 터져 나가기 직전일거다. 그래도 표정관리는 기본이다. 남자답게, 여유있게.
전국적 시위로 확산되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다시피 하는 Black Lives Matter 시위는
시클라비아 행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던지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함께 하고 있었다.
워낙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위라 쓰러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십여 명이 현장에서 치료를 받았고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참가자도 2명으로 보고됐다.
이렇게까지 LA가 자전거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교통난 때문이다.
2015년 한해동안 미 전국 471개 도시의 도로 교통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심각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10개 프리웨이 가운데 LA 지역의 무려 6개가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고 헐리웃 지역 101번
프리웨이는 전국 최악의 교통체증 구간으로 뽑히기까지 했으니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다른 조사에서도 LA는 뉴욕,샌프란시스코,워싱턴 같은 대도시들을 제치고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도시로 선정되면서 전국 최악의 교통체증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거기다 대중교통에 관한 한 참 징그럽게 게으른 도시가 또한 LA다.
다운타운과 산타모니카를 잇는 메트로가 개통되자 지옥철이 되다시피 했는데도 해결할 기미가 없고
버스는 뙤약볕에 30분을 기다리기 일쑤여서 한인 노인들이 교통국 관계자들을 찾아가 항의한 적도 있다.
뭐든지 차로 움직이게 만든 도시 계획의 원죄는 고스란히 교통대란이라는 불편함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추진하는게 바로 자전거 천국이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LA 시청, 컨벤션 센터, 유니언 역 주변 등 65개 지역의 버스 정류장과 메트로 지하철
역 주변에 천대의 자전거를 배치하고 Bike Sharing Program을 지난 7월7일부터 시작했다.
참조로 $3.50에 30분 대여가 기본이고 대여를 위한 pass를 구입하면 한달에 $20, 연간 패스는 $40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코스프레도 아니고 이렇듯 갑자기 자전거 사랑을 외치는 LA의 정책이 LA 타임스도
답답했던지 결국 한 기사 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LA의 대중교통 이용객이 10%나 급감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인타운은 물론이고 국제공항 인근까지 대대적인 대중교통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이런 계획을 비웃듯 LA 타임스는 걸어다닐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지 않는 한
절대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200% 공감한다.
지하철 역이라고 만들면서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해 지하철 이용객 80%가 역까지 걸어가고 와야 하는 상황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거 공간과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자 LA가 내놓은 대안이 자전거 대여 프로그램을 통해 그 불편을 덜어보자는 것이었다.
(우버와의 연계를 통한 수송 전략도 있었는데 택도 없는 소리라 소개를 생략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는 LA에게 있어 자신들의 원죄를 덮어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인 셈이다.
LA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막대한 시간과 체력소모를 각오해야 한다.
관광지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집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까닭에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
LA에 가면 밤에는 위험하니 걸어 다니지 말라고 했다고 특히 한국에서 오는 분들이 자주 말씀하시는데
체감하는 위험도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돌아보면 걷고 싶은 생각이 가시게 만드는게 LA 밤거리다.
거주하는 시민조차 해만 지면 산책하러 나갈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까.
사는 도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확장 일변도로 제조한 결과가 어떤 상황을 초래하는지 증명하는 것이
지금의 LA의 모습이다.
이제야 뉴욕처럼 조성한다며 다운타운을 재개발 중이고 대중교통을 확장하고 있다지만
LA 타임스가 왜 걸어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지
개발하시는 분들이 곰곰이 고민해 보시길 바랄 뿐이다.
그 더운 날,
기꺼이 손자의 페달이 되어 주시기 위해 경사로를 오르시다가 웃으며 손짓해 주신 할머니가
저녁을 먹고 언제든지 집 근처에서 산책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 LA에게는 정말 무리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