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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Dec 30. 2019

어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게티 센터 이야기


부동산 전문업체 Curbed의 통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2018년 한 해에만 6,135차례의 산불이 발생하면서

100만 에이커 이상이 전소되고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숨졌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가 'Age of Wildfires - 산불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경고한다.

2019년 올해도 북가주, 중가주, 남가주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는데

LA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경우가 게티 센터 근처에서 발생한 게티 산불이었다.

주택가 인근 (이 지역이 대부분 부촌이다)에서 발생한 산불이라 인명피해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LA 시민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게티 뮤지엄이 과연 무사할 지에 대한 우려가 컸었다.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는 트램 근처까지 산불이 접근하고 급기야 대피령이 내려지지만

게티 센터는 소장품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는 대신, 자신들이 개발한 첨단 장비로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다. 산불 연기 한 줌조차도 예술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예전 피렌체 대홍수가 물이었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도전은 불인가?라는 걱정들이 많았다

1966년, 피렌체 대홍수로 아르노 강이 범람하자 소장하던 예술품들과 고서들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던 피렌체 시민들처럼 이번에는 LA시민들이 시험에 들 뻔한 일이었다

출처 : 연합뉴스

오늘은 그 게티 센터에 대한 소개다.


흥미로운 건, 

지금이야 가장 사랑받는 명소 중의 하나라지만

1997년 지금의 브랜트우드 언덕에 미술관을 연다고 했을 당시에는 

격렬하게 반대하던 LA 시민들이었다.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산불 났다고 게티 뮤지엄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거다.

아마도 이 센터를 건립한 폴 게티라는 인물이 주던 인상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아버지한테 받은 종잣돈 1만 달러로 유전에 투자해 3년 만에 스스로 백만장자가 된 인물.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1950년대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이다.

그런 폴 게티의 별명이 수전노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고..

편지 답장을 할 때, 받은 편지지의 여백에 적어 보낼 정도였다면 대충 감이 온다.


인색하기는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손자인 게티 3세가 로마에서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받았을 때도 납치범들과 협상은 없다는 식으로 버티다가 손자 귀가 잘려져 배송되어오자

그때나 움직였던 인물이다.

직접 협상을 벌여 몸값도 엄청나게 깎아버리더니

아들에게는 그 돈을 갚아가라며 이자까지 계산해 

청구한 비정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다.

출처 : 구글 이미지 : 게티 3세


살아 돌아온 손자 게티 3세는 그 후유증을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견디지만

결국 반신불수가 되어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폴 게티에게 돈은 어떤 존재이고 가치였을까?

후세 사람들은 그가 돈의 노예였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어쩜 폴 게티는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부자들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는데 바로 '원칙'이다

스스로 설정한 원칙에 잔인할 정도로 충실하고

그 원칙에서 벗어났던 한 두 번의 경우는 모두 실패였다는 점을 절대 잊지 않고

다시 원칙으로 돌아와 몰입한다.

가족조차도 예외 대상이 아니었을 뿐이다.


폴 게티를 그저 돈에 함몰된 천박한 자본 숭배자로 예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이의 성공을 도우며 자신의 성공을 도모하라는 사업철학을 강조하는 걸 보면

착취에만 눈이 먼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말과 행동은 다를 수 있겠지만...)


셔츠가 헤지면 소매만 수선해 입고 다닐 정도의 구두쇠지만

그림 수집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을 너무 좋아해 틈만 나면 콜렉팅에 탐닉했고

그렇게 소장했던 작품들을 모아 갤러리를 만든 게 지금의 게티 뮤지엄이다


게티 센터라고 통칭되는 입지에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리서치 센터, 교육 연구소 등까지 연계되어 있어

그야말로 예술종합센터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폴 게티가 죽은 후에 얻게 된 지위는 자선가다.

게티 미술관은 입장이 무료인데 유언으로 단 한 푼의 동전도 넣을 곳이 없도록 만들라고 했단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전화를 쓰는 것이 아까워 동전을 넣는 공중전화로 변경할 정도의 인물이

죽으면서는 한 푼의 동전도 받지 말라고 했으니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미술관을 오르내리는 트램 승차도 당연히 공짜다.

출처 : 위키피디아


덕분에 LA 시민들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무료로 걸작품들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주차비는 지불해야 한다, 20달러다 (오후에는 조금 싸다고 하는데...)


이렇게 개인의 소장품이 나중에 후세의 호사가 된 경우로 San Marino에 위치한 헌팅턴 라이브러리가 있다.

재밌는 건 여기는 주차는 무료인데 입장은 돈을 받는다. 게티 센터와 정반대다.

출처 : huntington.org


그렇게 무료로 열려있지만 게티 재단에는 돈이 넘치고 흐를 만큼 풍족하다.

아마도 단일 미술재단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곳일 거다.

물론 2008년 전 세계가 휘청거린 금융위기 때는 재단 재산의 1/3이 증발하는 손해가 발생한 탓에

직원들까지 해고해가며 (미술관에서 감원을 한다는 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다 아실테고...)

경비 절감에 나섰지만 지금은 거의 회복한 상태로 쌓인 돈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흔히들 기부 문화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부자들을 예로 들곤 한다.

빌 게이츠가 어떻다더라, 워런 버핏이 어떻다더라,

미국 부자들은 스스로 증세를 하자고 요구한다더라...

독일 부자들과 미국 부자들과의 차이가 이런 거라지

독일 부자들은 세금 잘 내고, 그 운영을 사회나 국가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 반면,

미국 부자들은 스스로 재단을 만들어 기부하고,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고.

당연히 세금 감면의 혜택을 받는다, 아주 많이 받는다.

재단이나 신탁 Trust의 설립 개념과 미국 세법(특히 상속법)을  어느 정도만 이해한다면 

이로 인한 혜택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런 부자들의 자선이나 기부 행태를 절세의 기법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해서라도 기부를 고려하게 할 수 있다면 나름의 가치는 있는 것 아닐까?

그 기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게티 센터처럼 LA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폴 게티가 기부를 염두에 두고 그토록 돈과 예술품에 집착했는지

아니면 어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하게 됐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여유가 있어야 구경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곳도 즐비하지만

삶이 어떤 지경이던

맘만 먹으면 찾아가 누릴 수 있는 이런 열린 개방이

우리 주변에 그래도 몇 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루벤스의 그림을 그토록 갈망하지만

돈이 없어

결국 죽는 순간에야 보게 되는 플란다스의 네로는 이제 없어야겠기에...

 



요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한다는데 아직도 그리 쓰는 게 어색한 탓에, 

예전대로 사용함을 양해 바랍니다.

LA 오시면,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게티 미술관은 꼭, 꼭, 꼭 방문해 보세요.

루브르나 우피치, 바티칸도 훌륭하지만 사람 구경에 지칠 수도 있는데, 

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미술관답습니다.

산불로 문을 닫았던 게티 미술관이 재개관한 첫날, 

마침 마네 특별전이 있어 다녀온 영상을 걸어놨습니다.

다녀오신 분들은 기억 속으로, 아직 계획 중이신 분들은 참조 삼아 둘러보시길...


https://youtu.be/IUljzQ9Qs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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