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로 증폭되는 미국의 세대 간 가족갈등/1619 프로젝트
지난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가 전국적으로 보름째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은 폭력시위로 우려됐지만 지금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LA에서는 아시안이 주도하는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만큼 시위의 명분과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겠다
당연히 차별은 종식되어야 하고,
그로 인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일은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되겠다
우려되는 점은 이런 인종 갈등이 가정에서 세대 간의 갈등으로 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자녀들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에서는 denouncing parents라고 해서
부모를 힐난하는 영상들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수위가 우려스러울 정도라서 이게 뉴스가 되고 있는데 아래 영상이 상황을 짐작하게 할 것이다
공화당원인 아버지에게 "Stupid을 외치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 지르는 영상이다
실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이런 패러디가 자녀들 사이에서 환호를 받는다는 거다
다른 소녀는 우리 식구를 너무나 증오한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는 영상을 올린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가족들과의 견해 차이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호소다
어떤 자녀들은 아빠 엄마와 이 이슈를 갖고 싸우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도 있다
인종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모에게 욕만 안했지 거의 싸움 수준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베이비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은 어른을 들딱이라고 정의해 버린다면 대화라는 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2020년 올해 5월, 퓰리처상 수상작 가운데 논평부문상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니콜 한나 존스에게 돌아간다 2019년 8월에 기재된 기고문인데 미국의 민주주의 건국이념은 거짓말이고
흑인들이 이 이념을 완성하기 위해 싸워 왔다는 내용이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이런 기고문들을 모아서 시리즈로 발행하는데
그게 요즘 다시 부각되고 있는 <1619 프로젝트>다
미국의 시작은 미국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이 아니고
흑인들이 노예로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처음 도착한 1619년부터이고,
그 400주년이 되는 2019년 뉴욕 타임스는 미국 역사를 reframe 하고
1619년을 진정한 건국 발판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취지로 이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오바마가 그런 얘기를 했던가?
진보는 지금 여러분의 현실을 불편하게 하는데서 시작한다고.
그런데 이게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역사관 자체의 프레임을 다시 짜는 수준이라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수많은 기고들이 수합되고 그렇게 실린 기고문 가운데 니콜 한나 존스의 글이
2020년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극히 제한적인 부분이 지금 하이틴들이 자신의 부모를 힐난하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말이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들여다봤다
'아빠는 항상 집 앞에 성조기를 걸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나는 어릴 때 그걸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 흑인 남자는 자신의 국가가 흑인들을 학대하는 것을 직접 목도하고도
그 국기를 자랑스럽게 걸 수 있었을까?
나는 아빠의 애국심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매우 수치스러웠다....'
지금 이 구절이 부모들은 세상에 저항하지도 못하는, 기존 체제를 수용만 하는 무기력한 인물들이고
그래서 젊은 우리들이 그들의 의식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이 된다면
이건 상당히 편협한 예단일 것이다
니콜 한나 존스는 그 다음에 분명히 이런 구절을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처럼 나 역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면서도...
아버지는 그 국기를 걸면서 본인이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 흑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를 세우는데 기여한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며
미국은 우리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고.
그럼에도 흑인들은 미국의 가치를 믿었고 그 가치가 현실이 되도록
헌신해 왔으며 그런 노력은 다른 인권 운동이 가능하도록 도왔다고 말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회사가 당신을 인정 안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그 회사의 발전과 가치 추구에 자신의 일생을 걸고 헌신할 수 있겠는가?
그런 지속적인 헌신이 흑인과 흑인사회가 해온 노력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송을 암시하면서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 흑인 인권운동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할 수 있게 된 집단들이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물인 프로그램을 폐지하도록 대학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적 아이러니라고 소개하는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저자 스스로도 흑인이 온전한 권리를 누리게 된 것이 이제 50년밖에 안됐다고 하는데
중국계 이민자들의 미국 이민은 1840년대에 시작됐다. 이미 180년 전에 시작된 이민이다
그러다 1882년 <Chinese Exclusion Act> 중국인 배제법이라는게 발동되는데
특정국 출신의 이민을 막는 첫 조치였다
중국인의 이민을 막고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들에게 시민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법이었다
이 법으로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철도건설 노동자로 기여했던 중국 이민자들이 받는 괄시와 냉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법은 무려 60년 넘게 지속된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누가 만들었는지, 후버댐이 누구의 노동력이었는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금문교는 중국 이민자들의 피로 만들어졌다고도 말한다
아시안 이민자들도 그 시기를 거치고 여기까지 왔다.
그걸 마치 무임승차한 것처럼 묘사하는건 좀 불편하다
그리고 흑인들만이 미국의 가치와 정통성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미국 흑인들이 어떤 커뮤니티보다 민주적 이상을 더 깊이 받아들인다면서
그 근거로 보편적 의료 서비스와 더 높은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고
어려운 계층에게 위해가 되는 제도를 반대하는 비율도 가장 높다는 것을 들고 있는데
그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건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 이익을 민주적 이상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커뮤니티도 할 말은 많다
마땅히 퓰리처 상을 받을 만한 감동적인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의 몇몇 문구만을 이용해 이해집단을 위한 선동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이 글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은 인종갈등 만으로도 넘치도록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세대간 갈등까지 불거진다면 참 막막하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현실은 장난이 아니다, 풍자의 대상도 아니다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지
너희는 악이고 우리는 선이다 식의 편 가르기는 곤란하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악으로 만드는 오류는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악이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우리도 그렇게 갚아주겠다는 반복도 단절했으면 좋겠다
선이 선을 행하기 위해 악의 방법을 차용하는 오류는 없었으면 한다
끝으로 개인적인 의견 하나만 주제넘게 덧붙이면,
MLB 시위에 참가하는 이유로 '우리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같은 마이너리티로서 당신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로 쓰는걸 거라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데는 편할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우리의 이해관계 때문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폄하될 수 있다
이 시위에 참여하는 백인 친구들이 우리도 당할 거 같으니까 참여하는 게 아니잖는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우리가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돕는 게 아니잖는가?
취지와 가치에 동의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우리가 마이너라는 이유로 자꾸 동참 이유를 '우리도 당할 수 있으니까'라고 갖다 붙이면
우리의 집단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참한다는 의미로 왜곡될 수 있다
혹시나 MLB 시위에 함께 할 예정이라면 이런 말은 조심하자
당신의 진심이 오해받을 수 있다
영상으로 정리해본 내용입니다. https://youtu.be/S8EKUz1dr3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