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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Feb 06. 2023

고슴도치 대작전 3-시간여행 대소동

<4>

“도대체 왜 싸운 거니 응?” 

“.......”

오 선생님이 손을 들고 서 있는 우솔이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는 우솔이의 얼굴에는 퍼런 멍이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고개를 숙일수록 피가 몰려서 멍이 든 얼굴이 아팠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둘이 매일 붙어 다니더니 왜 싸운 거야. 응?”

“......”

“정말 말 안 할 거야?”

오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우솔이는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가이가 축구공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기가 우주 밖으로 공을 날려 버린 사실을 말해 봤자. 어느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후유, 별수 없다. 내일 어머니 오시라고 해라.”

“예?”

그제야, 우솔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교실 문을 들어서는 엄마의 화난 얼굴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안 돼요. 잘못했어요. 선생님 앞으로 안 싸울게요.”

우솔이가 놀란 송아지 같은 얼굴로 말하자 오 선생님도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좋아, 그럼 이제 가이하고 화해 할 거니?”

“......”

우솔이는 그 순간 가이가 화난 얼굴로 자기에게 달려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우솔이가 절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가이하고 넌 단짝 친구잖아. 6학년 애 중에 가이 말고 친한 친구도 없잖니.”

“그,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어요.”

우솔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너 아직 반성을 안 했구나 정말 안 되겠다. 내일 어머니에게 오시라고 전화해 만약 안 오시면 내가 바로 전화할 테니 그리 알아!”

“선생님!”

우솔이는 애원하는 눈으로 오 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오 선생님이 이번엔 절대로 봐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우솔이는 물에 젖어 축 처진 수건처럼 어깨를 축 늘어드리고 교실 문을 나섰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간 탓에 복도를 걸어가는 우솔이의 발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3반을 지나치면서 흘끗 보니 가이도 담임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 것처럼 보였다. 우솔이는 마치 들키면 안 될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3반 복도를 휙 지나갔다. 

 예전에는 창문에 매달려 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우솔이었다. 우솔이가 늦으면 가이도 어김없이 우솔이를 기다렸다.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가이를 피해서 이렇게 달아나듯 복도를 빠져나오다니 우솔이는 자기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가이가 더 미워졌다. 

“가이 자식 너무해.”

 우솔이는 학교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만약 가이가 지금 우솔이에게 다가와서 사과한다면 지금까지 가진 미운 마음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우솔이는 잘 알고 있었다. 우솔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았다. 그때였다.

“우솔이 형…. 여기서 뭐 해.”

나루였다. 나루는 자기 때문에 우솔이가 이렇게 된 것 같아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루는 멀리 떨어져 슬픈 눈으로 우솔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예를 흘끗 본 후 다시 우솔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루구나.”

“응, 오늘 가이 형하고 싸웠다며?”

“뭐 그 자식이 막 달려들잖아. 그래서 한 대 때려줬지 뭐. 그 자식 덕분에 내일 엄마를 모시고 와야 해. 헤헤.”

우솔이는 일부러 웃음소리를 냈지만 나루가 보기에도 우솔이는 전혀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엄마 오시면 어떻게 되는 거야?”

“후, 어떻게 되긴. 우리 엄마 성질에 아마 가이네 엄마하고도 한바탕 하실 거고 난 외출 금지당하겠지. 뭐.”

아마 그리고 엄마는 앞으로 가이 같은 애하고 절대로 놀지 말라고 하실 게 분명했다. 예전부터 가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으니까. 그러면 이제 완전히 가이하고 헤어지는 거다. 완전히…. 우솔이의 엄마는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저, 도깨비 선생님께 부탁하면 어때 길달 선생님은 둔갑도 잘하니까 형 엄마로 둔갑해서 와달라고 말이야.”

“글쎄…. 길달 선생님이 그렇게 해 주실까?”

“걱정하지 마, 내가 오늘 밤 길달 선생님을 만나서 꼭 그렇게 만들게. 형은 집에서 멍 자국만 엄마한테 잘 둘러대면 돼. 맞다 가로등에 부딪혔다고 하면 되겠네 뭐! 그다음은 만능 해결사 나루에게 맡겨두라고 날 믿어! 그럼!”

나루가 너스레를 떨자 우솔이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치, 녀석도…. 그래 알았어. 고맙다.”

나루 덕분에 우솔이는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엄마에게 혼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이와 안전히 헤어지는 것을 피한 안도 때문인지 우솔이도 잘 몰랐다. 어쩌면 펑펑 눈물을 흘리고 나서 이제 마음이 좀 진정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먼저 갈게 너무 늦으면 학원 선생님한테도 혼나거든 어쨌든 고마워.”

우솔이는 가방을 고쳐 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길달 선생님은 나에게 맡겨두라고 저녁때 내가 고슴도치로 연락하게 알았지?”

“응, 안녕!”

“그래, 형 잘 가!”

나루는 멀어지는 우솔이의 모습이 눈앞에 완전히 사라지자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유, 이제 됐지, 누나?”

“응, 고마워 나루야.”

어느새 나루 곁에 온 나예가 나루의 손을 꼭 잡았다. 

“후유! 자 그럼 이제 길달 선생님을 찾아볼까.”

나루의 몸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자 이내 길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 선생님, 가이 형하고 옥상에 있잖아! 좀 곤란한데…. 어휴 나도 모르겠다 우선 만나나 보지 뭐. 누나 가요!”

“응.”

이번엔 나루가 나예의 손을 꽉 잡았다. 

<계속.... 월요일에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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