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규 Feb 05. 2023

세상의 모든 셜리

3. 책방, 마녀들의 금서 목록

“죽일 놈들…. 천하의….”

경옥이 혜연과 아영에게 낙선 소식을 듣고 난 뒤 첫 반응은 약 3분 동안의 욕설이었다. 경옥은 등 뒤에 서 있던 천수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자신의 욕설을 처음 들은 그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경옥의 예상대로 그의 얼굴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천수 씬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네…. 귀여워…. 역시….’

 경옥은 책방 <마녀들의 금서 목록>에 전등을 켰다. 어지럽게 쌓아 올려진 책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방은 경옥의 직장이자 집이었다.

 “짱! 샘 덕분에 우울한 기분 다 날아갔어요!”

 아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경옥의 위로는 뭔가 독특하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샘, 주무시는데 저희가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니죠?”

 혜연이 조심스럽게 경옥과 천수를 살피며 물었다.

 “잠자긴. 아직 9시밖에 안 됐어. 뭐 딱 섹스 바로 전이긴 했지만…. 자, 들어와!”

 순간 천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기…. 그게 그러니까….”

 천수가 뭔가 해명을 하려고 하다 다시 입을 국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이제 귀까지 빨개졌다.

 “1차는 학교와 싸워서 완패…. 2차는 그 녀석과 맞붙어서 석패…. 참 그놈의 학교는 답이 없구나!”

 경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순간 천수가 잽싸게 담배를 낚아챘다. 경옥은 순간 뭐? 하는 표정으로 천수를 바라보았다. 천수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3차가 가능할까요?”

 혜연이 물었다. 몇 시간 전에 파이팅을 외치긴 했지만, 혜연도 다음에 어떻게 싸울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런 일은 끈질긴 녀석이 승리하는 거야. 위아래도 없고 지켜야 할 것도 없는 인간들이 고집을 부리면 가장 무섭거든.”

 경옥이 싱긋 웃었다.

 “그만하면 고생했어. 시장 아들과 싸워서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천수가 과일을 내오며 한마디 했다. 경옥이 천수를 흘끗 보며 말했다.

 “근데 천수씬 오늘 배달 없어?”

 “어, 어, 오, 오늘은 쉰다고 했는데?”

 천수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래? 왜 오늘 쉰다고 했을까나?”

 경옥이 천수를 살짝 째려보았다.

 “그, 글 쓰려고…. 오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난 이만…. 창작 활동이 바빠서….”

 천수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경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지 않냐?”

 “아, 네….”

 혜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영이 한숨을 내 쉬었다.

 “추민찬은 이제 만렙이에요. 아빠는 성소 시 시장, 고모는 학교 교장, 그놈은 전교 회장이니….”

 “추연수 교장 정년이 다음 달이잖아. 그리고 추택현 시장이 언제까지 시장이겠어? 선거 떨어지면 추민찬도 그저 그런 학생 되는 거야.”

 경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영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시에서 추 시장을 이길 후보가 어딨어요? 우리 부모님들은 벌써 추 시장 선거운동원으로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 살 수 있다고 난리 신데….”

 “그래? 그럼 우리가 추 시장 재선을 한 번 망쳐보지 뭐. 우리 스스로 당선되는 건 실패했지만 낙선 운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을 추택현 낙선 운동의 심장으로 삼는 거야 어때?”

 경옥이 서점 내부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혜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 이 서점까지 문 닫게 되는 거 아니에요? 미움받아서….”

 “다 괜찮아. 뭐 서점 문 닫으면 도 빡세게 알바해서 다른 곳에 열지 뭐. 사서교사 잘릴 때도 다른 교사들은 내가 다 죽을 줄 알았겠지만 봐봐.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잖니?”

 경옥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선 운동…. 우리가 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그래도 해봐야지. 힘 있는 놈들 앞에서 우리도 꿈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때였다. 무언가 생각에 빠져 있던 혜연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낙선 운동 말고 우리가 해보면 어때요?”

 경옥과 아영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뭘? 해 보자는 거니?”

 “선거요.. 성소 시 시장선거….”

 혜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계속..... 일요일에 업데이트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립 명문 오행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