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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lair Sep 02. 2016

Sinclair의 싸가지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풍래소죽 풍과이죽불류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류영


빽빽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 지나고 나면 대나무는 소리를 남겨두지 않으며

찬 연못에 기러기가 날아 들어도

그 기러기 떠나고 나면 연못은 그림자를 남겨두지 않는다






뭐,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겠지만..
씽클레어는 몹시 재수가 없다.
공돌이 주제에 한자를 끄적여 대는 저 꼬락서니를 보라.

혈액형별 성격을 맹신하거나 결코 따르진 않지만..
그 이론에 의하면 나는 전형적인 B형이다.
그것도 그냥 B형도 아니고 초특급 울트라 캡숑 짱 재수없는 트리플 제곱 B형이다.
사람들이 혈액형을 물어볼 때 마다 난 항상 되묻는다.
뭘꺼 같아요?


그럼 100명 중 한 두명을 제외하면 모두 다 제대로 맞힌다.
(김현정의 B형남자 인지 하는 노래가 나오기 전엔 나도 B형이 이런  모르고  살았다.)
게다가 재수없다는 걸 본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거다.
친구들은 나의 가장 큰 재수 없음은 내가 재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거라고 입을 모은다.
왜냐구? 아무리 재수 없다고 그래도 욕이 안 되잖아.. 쓰읍~


삼성전자에서 강의하면서도,
어마무시한 과제로 신입사원들을 못살게 구는 거로 악명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늘 여섯시 첫 출근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도착한 매 강의 첫 날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인사 안하는 사원들을 갈구기도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청소하시는 분들마저도 다 당신들 보다 오래 다닌 분들이고,
당신들은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사원들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도 무조건 인사해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잖은가 하면서..

(물론 난 청소하시는 분들과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늘 먼저 인사를 했다.)


물론 걔중엔 코웃음치기만 하는 나보다 더 재수 없는 인간도 있었다.
그럼 난 아버지가 얼마나 바쁘시냐고 물어보고
당신을 가르칠 수 없으니 다른 반으로 가든지 그냥 부서로 올라가라고 쫓아내기도 했다.
일개 강사 나부랭이 주제에..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 삼성의 신입사원을 갈구고 내쫓다니..
고등학교는 문과출신에, 박사는 커녕 석사도 아닌 학사 나부랭이가  
석사출신의 사원들까지 쥐락펴락 해댔다.
이런 재수없는 인간이라 적이 많았다. 사방이 죄다 적이었다.


하지만 싸가지가 없진 않다.
 (프로그래머가 지녀야 할 싸가지는 앞에 이미 얘기했다.)


첫 기말 시험에서 본 인간과 윤리...
갑자기 눈에 꽂혀 버린 헤세의 "데미안"을 밤새 다시 읽느라 늘 하던 벼락치기조차 못했다.
먼저 교수님께 사죄글을 적고.. 밤새 다시 읽은 데미안의 느낌과 왜 사람이 사람인가에 대해 
두 페이지 넘게 적은 후에 다음엔 꼭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감사하게도 노교수님은 A를 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싸가지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이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잘 지키지 못하는 부분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은 버스 기사분들 중에 인사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버스나 택시를 탈 때 마다 꼭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은 "고맙습니다."
이런 나를 두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사람스럽지 않다며 의아해 한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강남역이나 압구정으로 갈 땐 가급적 360번 버스를 타려고 한다.
몹시 막혀 있어도 굳이 360번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이유는
혹시 김선태 기사님을 만날까 하는 까닭이다.
(굳이 실명을 거론한 이유는 "360번 버스 김선태" 구글링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분은 버스에 타는 모든 한사람 한사람을 인사로 맞아 주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을 때 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리고,
내리는 승객들에게도 잘 가라는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그분을 만나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도 그분의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Thank you for the butter."
이건 버터를 줘서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버터를 좀 달라는 말이다.
먼저 버터에 대해 감사하면 버터를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 표현인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고마운 일을 만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
댓글 한 줄 쓰기가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지 잘 알기에
댓글 달아주는 여러분들이 늘 고맙고 감사하다.  


  
길을 가다 다른 사람과 부딪혀도,
심지어 발을 밟고서도 한국 사람들은 미안하단 소린 커녕 쳐다도 안보고 그냥 간다.
때론 밟히고도 그냥 간다. 내가 밟았소~ 미안하오~ 허공에 울린다.
어느 나라 정치인들이 미안하단 소릴 잘 할까냐마는..
그래도 굳이 세계 제일을 가리자면 한국의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하는 정치인은 가뭄에 콩나듯 있을지 몰라도
그들 마저도 대충 그냥 말로만 때우기 일수다.





못 믿겠지만 씽클레어는 교회를 다닌다.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나왔다. 헉!!
더더군다나 지금은 날나리지만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나를 KS(Korea Standard)를 따서 DS라고 불렀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흠, D 이니셜의 고등학교라... )
오래 전에 영화 다빈치 코드가 개봉했을 때
한국교회에서 영화 개봉을 저지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영화 한 편에 전전 긍긍하는 교회들의 모습이 솔직히 쪽 팔렸다.
강의 중에 그 뉴스를 얘기하며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럴 자격은 더더욱 없지만
다만 교인의 한사람으로 정말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영화 개봉 당일 날 영화표와 피자 값만 엔분의 일로 받고 콩다방 커피를 무료 제공하며
수원에서 강의를 듣던 연구원 20여 명과 우르르 퇴근 버스를 대절하다시피 타고
서울로 그 영화를 함께 보러 갔다.
매일 열개씩 나가던 과제도 그날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졸업한 그 고등학교는
자신은 교인이 아닌데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형식적인 교인으로 남을 수 없다며
양심 선언을 한 어린 학생을 퇴학시킨 그 학교다.   

농활에, 수화교실에, 매년 일주일씩 생활관 합숙에...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주었던 모교지만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묻던 사람들을 향해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러 치라고 하셨던 그 예수를 믿는 분들이,

천하보다 한 영혼이 귀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를 믿는다는 분들이

그의 미래를 잘라 버리려고 했다는 게 무엇보다 더 가슴 아팠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그 학교를 나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내가 대신 사과하노라고 했었다. 눈물이 났다.
마음 같아선 그때 학교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던 그 녀석이랑 함께 서있고 싶었다.
(요즘 했던 몇몇 그녀석의 행동들을 보면 함께 서 있어주지 못한 게 더욱 후회가 된다.)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였다.


true/false를 따지는 건 원래 컴퓨터가 전공이다.



여기까지는 부모님께 물려 받은 싸가지다..

재수없는 걸 빼고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전부 엄마에게 받은 것이다..
엄마는 길에서 천원짜리 한 장을 주워도 불우이웃돕기나, 헌금을 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스무 살이 넘자 어느 날 내게 말씀하셨다.
"있잖아...

때릴 땐 사랑의 매라고 했지만 감정이 좀 실리더라..

음.. 그동안 엄마가 많이 미안했다 얘.."
"어무이!!...."

"그래도 그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런거다 뭐.." 버럭~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세가지만 잘해도 어디가서 밥은 절대 안 굶는다.
정말이다.



하지만 딱 한가지
사랑한다는 말은 나도 잘 못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엄마에게도 잘 못했다.

외국 영화들을 보다가
밤에 아이들을 재울 때 부모들이 이마에 입맞춰 주며
사랑하는 말을 하는 걸 볼 때 마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줘야지 라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사랑해 이 한마디가 입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연습했다.
엄마에게 전화할 때 마다..
"엄마!", "왜?"
"...사랑해", "?!?... 됐어 이눔아.. 너 돈필요하냐?"

친구들에게 전화할 때 마다...
"OO야~ 사랑해..","?!?... 어.. 그래?"

심지어 강의할 때도..
"여러부우우운~ 사랑해요", "?!?...."
(너무 느끼했나? 표정은 죄다 '니가 아이돌이냐? 너 돌아이지???'다.)



미안한지, 고마운지, 안녕한지, 사랑하는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고 한다.
그래?
앞으론 한 페이지도 안 올리고 마음으로만 포스팅 할테니,
다들 알아서 보시길 바란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한 번 느껴보시길...
(뭐? 재수없다고? - 거봐 나 재수없다고 했죠?)
난 말로 해야 알겠더라.
때론 한 번가지고는 택도 없이 부족해서 수 백번 얘기해줘야 겨우 알겠더라..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
- 공자

樂之者不如愛之者라
즐기는 것도 사랑하는 것만 못하다.
- 씽클레어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다르다.
내 의지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의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
싸가지있게 살려고...
(그렇다고 말로만 때우라는 얘긴 절대, 절대 아니다.)


그래 바람아 가라, 기러기도 너도 떠나버려라..
그래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그 말은 남을 테니까.
그거면 족하다.

그리고 진짜 재수 없는 건 말만 많은 나 자신이다.



PS: 20090606
예전 오피러스 자동차 광고에
리더의 조건 세가지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얘기하고 있었더랬다.
난 리더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싸가지라 안녕하세요를 포함 시켰는데...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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