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왕,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
피아노는 세상 모든 악기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모든 이야기와 투정을 받아 준다. 피아노에게는 어떤 악기도 따라올 수 없는 포용력이 있으니 바로 화음이다. 피아노는 이 화음을 통해 때로 많은 악기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며 때로는 스스로 1인 다역의 원맨쇼를 펼치기도 한다. “악기의 왕” 이라고도 불리는 피아노. 우리가 듣고 있는 클래식 대부분이 피아노를 통해 작곡되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악기의 왕이란 표현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사실 피아노의 정식 명칭은 피아노포르테랍니다. 이를 줄여서 피아노라고 하는 거고요. 작게, 크게를 뜻하는 “피아노포르테”를 피아노 이름으로 지은 건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쳄발로 제작자였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였어요. 크리스토포리는 크고 작고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당시의 건반악기 쳄발로를 변형해 셈여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피아노와 포르테를 함께 낼 수 있는 쳄발로’라는 뜻으로 “arpicembalo che fa il piano e il forte”란 이름을 붙였지요. 피아노포르테란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거랍니다.
피아노는 음악대학마다 한 해에 대략 20명 정도 뽑는답니다. 20명이라고 하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피아노 인구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많다고만은 할 수 없는 숫자지요.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일찍 시켜 보려고 하는데 아이의 손가락은 작고 아이의 체구에 비해 악기는 너무 커서 사실 그리 쉽지가 않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피아노를 시작하곤 하는데요. 이럴 때 꼭 피아노만 고집할 이유는 없답니다. 피아노를 대하기 어려운 유아기 때는 아이의 손과 키에 어울리는 바이올린을 시켜 보세요.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달리 유아용 크기가 있어 꼬물꼬물 애벌레 같이 작은 손가락으로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거든요. 귀 가까이서 소리를 내 주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음감 발달에도 더없이 좋고요. 보통 음감 발달은 7세 이전이 좋다고 하거든요. 음감이 좋으면 피아노 또한 배우기가 많이 수월해지겠지요. 게다가 양손을 다 쓰니 좌뇌, 우뇌를 고루 발달시킬 수도 있고요. 그러니 피아노 조기교육! 바이올린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학원이나 개인 레슨을 받으며 진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진도가 느리면 느린 대로 그 또한 분명한 장점이 있답니다. 음악이란 건 언뜻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 과정은 온통 지독한 끈기거든요. 경쟁하듯 어설프게 진도만 뽑는 경우 대다수는 결국 다시 기초로 돌아오곤 한답니다. 선생님을 믿으며 좀 더 정확하게 연주한다는 마음으로 느린 진도를 즐기다 보면 분명 느린 진도에도 이유가 있었음을 곧 알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성공한 연주자, 운동선수들에게는 하나 같이 어린 시절 지겹고 혹독했던 기초 연습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들 모두 그 추억을 매우 소중하고 감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걸…
1986년 “호로비츠 인 모스크바” 61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피아노의 비르투오소(virtuoso 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대가), 호로비츠가 마지막 앙코르로 들려주었던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 7번 곡 <트로이메라이>, 그날 그가 세상을 감동시킨 건 초절 기교도 인간 내면의 깊이 있는 고뇌도 아니었습니다. 딱 넘치지 않을 만큼 담아낸 트로이메라이, 즉 '꿈'이었습니다. ‘드러냄은 깊이를 이기지 못하고 화려함은 푸르름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새삼 실감케 한 연주였지요.
피아노의 종류는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피아노 본래의 형태는 그랜드형입니다. 업라이트에 비해 음량이 커서 요즘은 주로 연주용으로 쓰이고 있지요. 각각 소형에서 대형까지 피아노의 크기에 따라 52건반, 64건반, 76건반, 78건반, 85건반, 88건반 등으로 건반의 숫자도 다르답니다. 보통 주변에 보이는 피아노들이 대개 88건반인 이유는 피아노의 표준 음역이 88건반이기 때문인데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사용한 피아노가 78건반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집에서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피아노에 꼭 88건반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피아노 페달을 가리켜 “여인의 화장”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자신의 연주를 훨씬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페달링도 건반 터치만큼이나 오랜 숙련이 필요하답니다. 피아노에는 보통 3개의 페달이 있는데요. 오른쪽 페달을 누르면 피아노 건반을 누른 후 손을 떼도 음이 일정 시간 지속되는 거고요. 가운데 페달은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가 조금 다릅니다. 그랜드 피아노의 경우 특정 음을 길게 지속하는 효과를 내지만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는 가정에서 소음 방지를 위해 음량을 줄일 때 주로 사용하지요. 왼쪽 페달을 사용하면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 둘 다 음량을 약간 줄일 수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란 악기는 그 부피와 무게로 인해 공연 장소마다 자신의 악기를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은 보통 공연장에 있는 표준 피아노를 사용하지요. 어찌 보면 몸만 다니니 편하겠다 싶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피아노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겐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랍니다.
때문에 늘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다닌 연주자들도 있었는데요. 리스트는 뵈젠도르퍼를 가지고 전 유럽을 돌아다녔고요. 19세기 리스트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추앙받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어디서 연주를 하건 그의 스타인웨이를 늘 가지고 다녔답니다.
참, 이거 아세요? 피아노가 소모품이라는 거! (가정용은 아니에요!) 연주를 위해 조율된 피아노에는 보통 30톤 정도의 장력이 가해진다고 하거든요. 때문에 오래 사용하다 보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피아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답니다. 그래서 보통 좋은 연주홀의 연주회용 피아노는 수명이 5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5년이 지났다고 해서 버리는 건 아니지만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더 다채롭고 풍부한 악기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김광민 (재즈피아니스트,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교수)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악기 이야기를 가지고 서양음악 전반을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음이 놀랍다. 악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 특성상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를 만족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자세한 설명으로 이를 풀어나갔다. 책을 읽는 내내 독자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딱딱한 내용일 거란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즐거운 시간이었음이 기쁘다.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클래식 악기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통해 마치 ‘참고서’처럼 누구나 클래식 음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놓은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문화에 깊이 젖어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한웅원 (재즈드러머)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직접 접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힘든 클래식 악기들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이 책을 부담 없이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클래식 음악에 한 발 다가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음악 전공자, 음악 애호가 모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클래식 음악이란 쉽게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악기들이 모여 앉아서 악기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겁니다. 때로는 모여서 하모니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독주를 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모르니까 어렵게 느껴졌던 것뿐이에요. 사실 클래식 음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잘 몰라서 익숙하지 않다는 게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