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만하다. 기온이 살인적인 수준은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솔솔 부는 실바람은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청량감마저 감돈다. 낮이면 높아질 온도를 대비해 준비운동이라도 하듯이 공원 운동객을 살살 달랜다. 그러니 아직은 숨쉬기 편하고 걸음도 가볍다. 아침 맞이로 하루를 견딜만큼 바람 한 주머니는 찰 수 있으니까.
아직은 견딜만하다. 한 학기 쉬라고 했지만 머잖아 휴식을 강요받았던 기간도 끝날 것이고 '을'이 아니라 '갑'으로 살 방책을 쥐고야 말테니 말이다. 단기간 움직였던 취업이 맞지 않아 접으려 하지만 간간이 소득이 발생하는 묘책이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신은 한 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주기에 그렇다. 호흡이 맞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폭을 맞추면 된다.
괜찮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열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두 눈으로 영상과 활자를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 줄 두 줄 문장은 늘어날 것이고 읽어내는 책도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쌓여 육신의 눈보다 더 밝은 시야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고비용 병원 진료비가 발생하지 않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 아직은 괜찮은 셈이다.
아직은 참을 만하다. 객지에서 집으로 짐을 싸서 온 청춘. 보석보다 귀한 시간을 밤낮 구분없이 살라먹고 있으니 열불이 치솟다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반복하며 다독여 본다. 쓰나미 같은 파도도 거세게 한 번, 또 한 번. 그러면 끝이다. 이 미친 세월도 이삼 년이면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고추따러 가던 여인을 잡아먹은 비단뱀은 배를 갈라야 하나, 머리를 잘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