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손가락 Jun 03. 2024

정직한 눈, 통찰의 시선

'누군가 밭고랑을 지나 걸어오고 있었다. 해가 떠서 음지와 양지의 구분이 생기자 언덕의 그림자나 숲의 그늘로 가려진 곳에서는 언 흙이 부서지는 버석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해가  내려쪼인 곳은 녹기 시작하여 붉은 흙이 질척해 보였다. 다가오는 사람이 숲 그늘을 벗어났는데 신발 끝에 벌겋게 붙어 올라온 진흙 뭉치가 걸을 때마다 뒤로 몇 점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영달이 쪽을 보면서 왔다. 그는 키가 훌쩍 크고 영달이는 작달막했다. 그는 팽팽하게 불러 오른 맹꽁이 배낭을 한 쪽 얶애에 느슨히 걸쳐 메고 머리에는 개털 모자를 귀까지 가려 쓰고 있었다. 검게 물들인 야전 잠바의 깃 속에 턱이 반 남아 파묻혀서 누군지 쌍통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몇 걸음 남겨 놓고 서더니 털모자의 챙을 이마빡에 붙도록 척 올리면서 말했다. 


"천씨네 기시던 양반이군."


...(황석영, '삼포가는 길')



가상공간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낯선 듯, 익히 오래 전 알고 지낸 듯한 동년배를 만났다. 

글쓰기의 기본을 말하는 그의 태도가 

간만에 찾은 깊은 숲속에서 만난 옹달샘 만큼이나  

참신하고 진지하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문장을 잘 만들고, 

단락을 잘 만들면 된단다. 

단락을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품새가 남다르다. 


마치 내가 할 말은 이 한 줄에 다 담았다는 듯이 

눈에 스치는 찰나의 광선이 매섭다. 


이것은 

굉장히 정확하고, 

정직하고, 

효과적이고, 

아주 가벼운 방법이라고 

철물점 강력 본드처럼 덧붙인다. 


글쓰기 모든 개론서에서 똑같이 언급하는 이 내용이

새롭고 신선한 이유는?

그의 태도이리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바탕 자료가 

생명줄처럼 그의 말을 지지한다. 

영어 알파벳에 숫자를 붙여 

attitude를 합산하면 100이 된다던가. 

요즘 나는 20쯤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