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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담 Oct 02. 2016

<교토편> 7-2. 우지 평등원

나의 추천 문화재 1호

 우지카미 신사와 가까이 있는 그냥 우지신사(宇治神社)도 지나가다가 만날 수 있다. 워낙 많은 수의 신사와 절이 있다보니 저마다 독특한 테마나 스토리텔링을 부여해 차별성을 강화하는 것 같다. 책에는 언급도 되지 않고, 국보급도 아니라 지나칠 수 있지만 이곳은 짚고 넘어간다.

 우지신사는 앞서 소개한 우지카미신사에서 모신 천황은 빼고, 닌토쿠천황의 이복동생인 '우지노와키이라츠코(菟道稚郎子)'만 모신 신사다. 고대의 일본의 관례에는 가급적 젊은 사람에게 양위하는 것이 활약할 수 있는 기간이 길고, 국가 번영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여 처음에 닌토쿠가 아닌 동생이 황자가 되었단다. 310년, 아버지 오우진 천황이 붕어한 뒤, 원래대로라면 동생이 천황이 되어야 했으나 여기서 반가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백제의 왕인 박사. 일본에서는 '와니(王仁, わに)'라고 불렸다. 이 기간 왕인이 유교를 전파하여 장자 상속제가 성립되어 형인 닌토쿠가 천황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2년 후, 황위를 안정되게 하고 천하의 근심을 면하기 위해 동생 '우지노와키이라츠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우지신사를 찾으면서 알게된 자세한 이야기였다. 

 또 한 가지. 이 신사에 마스코트는 '토끼'다. 신사에서 모시는 신을 제신(祭神, さいじん)이라 하는데, 이 제신이 땅에 내려와 길을 잃었는데 토끼가 계속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안내를 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 토끼는 '도덕적으로 자신을 돌이켜보며 올바른 인생을 걸으라'는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토끼길菟道'을 일본어로 '우치うち'라고 읽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우지うじ'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만 봐도 닌토쿠 천황의 동생을 '우지노와키이라츠코'라고 하고, 한자 역시 '菟道稚郎子'라고 쓰며, 무려 두 곳의 신사가 이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데 이름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 게 맞지 않는가? 

 일본어도 짧고, 견문도 짧고, 역사도 짧으니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불확신하면서도 당당하게 늘어놓는다.


 강 건너에서 건너로 가는 길은, 지금 사는 동네 하천에 옮겨다 놓고 싶을 정도로 잘 정비되있다. 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서도 산가운데로 피어오르는 구름은 금방이라도 신선이 나타날 것 같다. 강 위에서 노는 새들도 많은데, 강변 안쪽에는 새들이 쉴 수 있도록 커다란 집도 만들어 놓았다. 12월이었음에도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우지.

 

공사중인 봉황당을 사진도 드물듯, 문 닫힌 평등원 사진도 기념으로 남겨봤다

 오전 8시 반부터 개장하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우지카미 신사를 보고 왔음에도. 너무 부지런떨어도 이런 일이 생긴다. 공사중일아 봉황당을 가림막으로 가린 날 가셨다는 유 교수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 또한 쉽게 못하는 경험이 아닌가. 닫힌 문을 웃으며 찍었다. 비도 오는데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다시 반대방향으로 걸어봤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골목 양쪽으로 녹차를 재료로 한 온갖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정식으로 들어오는 방향은 JR 우지역에서 들어오는 쪽이었다. 나혼자 다른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평등원도 식후경. 배도 출출하고 간단히 한 끼를 먹으려고 둘러봤다. 당연히 녹차 명소니 녹차와 관련된 음식이 있을 것은 뻔한 것이어셔 둘러봤는데 아뿔사, 너무 일찍이라 식당도 열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으려면 벌레도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을!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기로. 관광객이라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길로 계속 들어갔는데, 역시나 또 찾아오는 우연의 행복. 좁은 가게 임에도 빵 만드는 사람이 다섯이나 있는 분주한 매장이 있었다. 들어가니 절로 기쁨의 환호가 나오는 초록빛의 빵들. 나름 우지의 명소인 듯 자세하게 설명이 써있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메론빵에도 녹차가. 가장 인기있다는 빵 2개를 집어 들어 나오자마자 바로 허겁지겁 먹었는데 한입 베어물자 녹차앙금과 달달한 녹차잼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녹차라고 녹차만 팔면 안되지! 시간이 맞지 않아 나는 빵 밖에 먹지 못했지만 평등원 주위로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우동, 녹차 소바 등등 먹을 것이 넘쳤다. 빵집은 깊숙하게 들어가 있어 노력을 더 해야만 한다. 만약 무더운 여름철에 방문했다면 디저트를 하나 추천한다. 내가 교토의 베스킨라빈스에서 먹은 것에 아이스크림 대신 얼음이 있는 것인데, 간단히 일본의 녹차 팥빙수다. 말차 시럽을 빙수에 뿌리고 팥과 떡을 곁들인 것으로, 바로 이름이  '우지킨토키宇治金時, うじきんとき' ! 작명실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일본의 단체여행 온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담장과 나무 등으로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다면, 십중팔구 입장료를 내야한다는 뜻이다

 다른 곳보다 입장료가 조금 비싸다. 평등원 정원과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기본 입장료가 600엔, 거기에 봉황당은 별도로 헌금조로 300엔을 내고 따로 표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참배, 헌금, 기도 이런 것에 강한 반감이 있어 불상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 그리고 또 후회. 박물관에도 안내를 볼 수 있지만, 밥 한 끼 덜 먹더라도 가급적 실물을 볼 수 있는 경험은 쉽게 다시 오지 않는다.

 박물관과 봉황당은 30분 늦게 문을 열고, 30분 일찍 문을 닫는다. 천천히 평등원 내부를 감상하고 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된다.

 조금 걸어가면 바로 기가 막힌, 마치 사극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아름다운 건물이 눈 앞에 나타난다. 하늘이 흐려 너무나 아쉬웠다. 건물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황홀하다고 느낀 것은 한국에서는 해남 미황사를 갔을 때였고, 일본에서는 금각사와 평등원 봉황당을 보고서였다.

 금각사 방문 때는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았던 이유도 있지만,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는 정확히 건물의 아름다움보다는 금박에 대한 욕망에 가까웠다. 그러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봉황당은, 건물 자체로 매력이 넘쳐흘렀다. 광륭사의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만났을 때처럼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서 구석구석 지켜봤다.

봉황당. 다음 기회가 온다면 낮부터 해질녘까지 계속 앞에 앉아 지켜보고 싶다.
5시에 폐관인데 한밤중의 모습을 유 교수는 어떻게 보신 걸까

 봉황당을 보며 불국사에 대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불국사 역시 석축 앞에 구품연지가 원래 있었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는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단언컨대, 불국사 관광객이 지금의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안타깝게도 불국사를 다시 가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라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때, 분명 지금 다시 가면 새롭게 느껴지리라. 한가지 걱정인 것은 봉황당을 처음 마주쳤을 때만큼 다시 감동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문화재 복원은 '불요불급한' 즉 크게 필요하지도 않고 크게 긴급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 능력의 현주소다. '국가는 문화 창조의 가장 유력한 패트론(patron)'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알게 될 것인가.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3 : 교토의 역사


 현 정부가 진정으로 창조경제를 원한다면 다른 곳보다 좀 더 문화재, 특히 조금 더 손을 봤을 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투자를 했으면 한다. 특별한 재해가 있어 복구하는 것 말고는 나름 이곳저곳 많이 다닌 편인데,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부여를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뭔가 공사하고 있던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무언가 계속 공사를 하고 있다. 문제가 많아서라기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안압지에서 임해전지로, 이제는 동궁과 월지라고 불리는 곳처럼 원형을 복원했을 때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곳이 있다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테마파크는 규모나 콘텐츠 면에서 이제 따라 잡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일본이었다면 이제는 중국이 어마무시한 경제력으로 초대형으로 만들어버리니 랜드베이스콘텐츠로는 어렵다. 그렇다면 5천년 역사 속의 문화재 중에 매력적인 요소를 더 키우는 방법으로 승부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토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경주를 떠올리게 된다. 분명 그 못지 않은 문화재들이 몰려있는 곳인데. 교통편부터 투어 패스 같은 것을 개발하고, 황남빵 일색인 음식 콘텐츠도 더 만들어 내야한다.


 "1052년은 불법의 가르침이 쇠퇴해가는 말세가 시작되는 해로 여겨져 말법사상이 귀족과 승려들의 관심을 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정토신앙이 사회 각층에 널리 유행하던 때, 그 이듬 해인 1053년에는 아미타불당(봉황당)이 낙성. 당 내부에는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불사였던 조초가 제작한 8척(2.43m) 크기의 아미타여래 좌상이 안치되어 있어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라고 홈페이지에서 안내한다. 유 교수님은 1년 차이가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봉황당 완성 날짜를 평등원 완성 날짜로 착각하신 것인지도. 역시 중요치는 않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교토에 한 군데만 가라면 어느 곳을 가겠냐고 추천한다면 유홍준 교수는 청수사를 말씀하셨지만, 난 주저없이 우선 평등원을 권할 것이다. 교통편이 어렵지 않고, 주변 풍광이 좋으며, 우지카미 신사가 마주하고 있고, 녹차를 이용한 맛있는 음식들이 있으며, 기념품도 구입하기 쉽고, 무엇보다 평등원 자체에 봉황당에 이어 매력적인 박물관까지 배치되있기 때문이다.


 봉황당이 11세기의 아름다움이라면, 봉상관(호-쇼-칸, 鳳翔館, ほうしょうかん)은 21세기의 아름다움이다. 가장 전통적인 공간에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 함께 있으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멋스럽다. 별도로 평등원 밖에 따로 있다 하더라도 감사한데, 관람 진행방향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멋 모르는 놈도 멋있다고 하는데 전문가가 감흥이야 오죽하겠는가. 책을 안보고 써도 다시 읽어보면, 유 교수 역시 21세기의 명작이라고 하니 느끼는 바가 이렇게 소름끼치도록 같을 때가 있다. 예술에 답은 없다지만, 때로는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날 일본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수학여행인지 졸업여행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학생들이 단체여행을 왔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조용했고, 겉도는 아이들 없이 모두 봉황당에 집중했다. 아이들도 건물의 매력에 빠진 것인지 교사가 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명승지 앞에서 반별로 돌아가며 단체 사진을 찍고. 이들도 날씨가 좋은 날 왔으면 좋았을텐데. 괜히 내가 안타까웠다. 궁금한 게 많아서 말을 걸고 싶었는데 내가 이 날 유니버셜에서 산 스누피 귀가 달린 옷을 입고 가서 이상한 한국인 오해 받을까 조용히 있었다.  

 이 때 이들 말고 다른 관광객이 없어서 나는 계속 학생 뒤를 쫓아가는 격이 되버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초등학생이기는 했지만 교사의 통제가 없어 안하무인으로 날 뛰고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 때문에 화가 치밀었는데 매우 질서정연히 소음없이 잘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의 기본 공중도덕에 대한 교육. 문화. 괜히 부끄러움이 일고 이런 것에서만큼은 이기고 싶다.

 봉상관 내부는 국립박물관 수준으로 잘 해놓았다. 스크린을 통해 4개 국어로 평등원을 소개하는 영상이 압권이었다. 봉상관을 가지 않더라도 홈페이지 한글화가 아주 잘되있어서 전시된 불상들을 어느 정도 확인해볼 수 있다. http://www.byodoin.or.jp/kr/about.html 

 전시된 보물들도 멋지지만 봉상관 건물 자체가 멋있어서 내부 인테리어를 더 주의깊게 봐버렸다. 봉황당 정면을 보고 봉상관을 들어가서 다시 나오면 다시 봉황당 뒷편이 나온다. 봉상관에서 봉황당을 나올 때의 건물 설계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냥 즐겁다. 

 얼마 전에 지은 모조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 년이 넘은 건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지. 가림막 공사 때 대대적인 보수를 한 것이겠지. 

 등나무가 모인 곳이 있어 상상이 갔다. 꽃피는 5월에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이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계속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토로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이세다역에서 내려야 한다

 우토로 마을은 내가 처음에 동선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서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 다시 갔다. 만약 평등원에서 바로 간다면 JR 우지역에서 두 정거장을 지나 신덴(新田, しんでん)에서 내려 다시 걸어가는 게 가장 빠르다. 그게 아니면 킨테츠(近鉄) 전철을 타서 이세다(伊勢田)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갈아타는 게 상당히 복잡한 전철이라 조심해야 한다. 

 원래 한 번 가보려고 결심한 곳인데 가기 전 주에 MBC 무한도전에서 우토로 마을 특집을 방송했다.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졌고, 나도 더 늦기 전에 가려고 다른 곳 가는 것을 미루고 바로 갔다. 

 원래 이름은 우토구치(宇土口)인데 '입 구'자가 일본어 카타카나 '로(ロ)'와 똑같이 생겨서 혼동하여 우토로가 되었다고 한다. 2008년 노무현 정부 때 우토로에 예산 30억을 집행했고, 대지 6천평 중 약 2천평을 매입. 그 공로로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주민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아픈 역사는 느끼지도 못할만큼 좋은 날씨,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 

 이미 사진으로 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가게도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귤인가를 재배하는 큰 밭이 있었고 한국적 정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있으면 한국인들이 더 찾아올텐데. 뭔가 기부를 하거나, 100% 어떤 사명감에 의해 오지 않는 이상 굳이 이곳을 일부러 찾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KT&G의 상상원정대의 작품 덕분에 이정표 격인 그림들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KT&G 덕분에 그래도 상징이 생겼다
우토로니 아이오
연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이곳 주민들을 못가게 막아놓은 것인지. 아이러니한 평화


"평등이란 서로 다른 개성이 함께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평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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