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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ug 09. 2023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을 때

<바비> 단평


※ <바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비는 23년도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평일 시차까지 써가는 열정으로 보고 온 바비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23년도에 개봉한 작품 중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바비’라는 상징적인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한때는 전 세계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열광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얻었지만, 페미니즘(영화 본편에서 이렇게 페미니즘 단어를 적나라하게 듣는 것도 거의 처음인 것 같다.)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을 망치는 존재로 전락한 바비. 영화는 그러한 바비들의 사는 세계에 전형적인 금발 타입의 한 ‘바비’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여성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고, 남성들은 주변인이 되는 바비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스테레오 타입의 바비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생각하고 바비가 전혀 하지 않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바비는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고 현실 세계 속에서 자신과 이어져 있는 자신을 갖고 노는 주인을 찾아가 자기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릴 결심을 한다. 하지만 막상 찾아간 현실 세계 속에서 바비는 자신이 살던 세계와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재현된 핑크빛 바비의 세계는 참으로 화려하고 매력적인 세계이다. 그 세계 속에서 인형들은 모두 바비라는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개성은 모두 다르다. 체형들도 모두 다르고, 각자 진취적으로 이뤄낸 성과들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만 살던 바비가 현실 세계로 갔을 때, 자신의 외양만으로 현실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는지 깨닫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 깊다. 환상 속에서만 봤던 여자아이를 실제로 마주하지만, 그에게서 자신이 실제 세계의 여성을 망치고 있다는 파시스트라는 폭언을 듣고 바비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스테레오 타입의 바비가 여성들에게 환상과 더불어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바비가 살고 있는 바비들의 세계는 다양한 타입의 여성들이 존중받는 세계이다. 그 세계 속에서 여성들은 타인의 가치관에 제단 당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정말 말 그대로 ‘환상’이다. 실제 현실 세계는 바비가 나가서 겪은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계이다. 영화 속 ‘현실’은 엄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엄연히 다르지만, 그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인 우리들은 영화 속 바비가 겪는 일들에 대해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더욱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 세계와 바비들이 사는 세계를 이름으로 구분한다. 화려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핑크색도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구분해 주는 장치이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구분 지어주는 것은 바로 ‘바비’라는 이름이다. 바비의 세계 속에서 모든 여성들의 이름이 ‘바비’라는 공통점을 지닌 것은 단순한 설정이 아닌, 이들이 사는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엄연히 다른 종류라는 것을 드러낸다. 여성들이 주목받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우선이 되는 세계이지만, 이 세계는 ‘바비’라는 이름만 가진 인형들만 살 수 있는 환상 속의 세계라는 것을 이들이 가진 이름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단순히 스테레오 타입의 바비로만 불렸던 주인공 바비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데, 이 시기는 묘하게도 켄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시점과 겹쳐진다. 영화 속에서 켄은 바비를 사랑하지만 항상 바비에게 거절당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바비의 남자친구로서 존재할 때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켄의 모습은 영화 밖 현실 속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누군가의 애인으로서 있을 때 존재감을 찾는 여성들.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는 일부 여성들의 모습이 성별이 반전된 켄을 통해 드러날 때 바비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찾게 되는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닌 의도된 연출처럼 보인다. 켄은 바비의 남자친구가 아닌 현실 세계의 남자들에게서 잘못 배워온 남성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고, 바비는 단순한 스테레오 타입의 인형이 아닌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으로 되는 길을 택한다.


바비는 한 인형의 이름이었지만 이 이름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바비>의 엔딩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바비가 자신의 이름을 바버라로 쓴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바버라는 바비의 정식 명칭이자, 바비의 발명가 루스 핸들러 딸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친근하고 다정하게 불리기 위한 애칭이 아닌,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는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여성이 된 바비. 엔딩에 이르러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은 바비는 이제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행복한 환상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세계에서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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