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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Imin Sep 21. 2020

생애 이력서 공유

고졸이 서비스직에서 HR로 업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 

으...아;;;;

네이버 개인 쪽지가 너무 많이와... ;;; 

방법을 바꿉니다. 


아래 URL 클릭해 공유 요청 눌러주셔도 공유 가능합니다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ar-IByVXekXwIp8q_x5L9LH67kG_jhl-PjUjwroeV3Y/edit?usp=sharing




개인적인 이야기가 정말 너무 많이 담겨있는 이력서라... 


"정말 이걸 공개해도 될까"라고 고민을 많이 하다가 

주간 추천으로 올라간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처음에 결심했던 것처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 싶어 생애 이력서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 추가로 제가 제작한 카테고리형 이력서는 반응 봐서 공개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생애 이력서의 스펙(?)을 말씀드리면.... 


1. 2017년도 10월 ~ 11월 한 달간 제작했으며, 제작이 완료 된 후 지원한 10 곳의 중견 ~ 스타트업 기업 중 8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게 힘을 주었으며. 


2. 면접 진행 시 추가로 내 자소서를 읽지 않은 곳을 걸러 앞으로 발생할 불행한 회사 생활을 미리 걸러줄 수 있게 만들어줬으며... 


3. 합격한 4곳 중 한 곳인 꾀나 역량 있는 스타트업에 재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 후 엄청난 성장을 이루게 해 준 참 고마운 이력서입니다. (* 저 빼고 모두 대졸 아니면, 해외 출신 혹은 마이스터고 출신)


그러니, 꼭 여러분께서도  아래 이력서를 참고하여 본인의 시선을 담은 "생애 이력서" 만들어 보시길 바라겠고, 추가로 아마 30일 ~ 60일 뒤에는 크몽에 이력서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유료화될 예정이니, 브런치 구독 눌러주신 후 [ 댓글에 G메일 주소 ] 달아 주시면 웹문서 URL을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건 참고용 자료입니다. 

100% 버전의 자소서를 확인하고 싶다면 댓글로 본인의 G 메일 주소를 적어 남겨 주시면 개개인별로 구글 독스 권한을 열어 드릴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유년시절의 기억 – 실수와 추천에 관한 이야기


내 기억의 시작 중 하나는 "외할아버지가 편찮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부모님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우리가족은 000 000 000이라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 것이다. 정말 지루하고 조용했던 동네. 김장철이면 주변 이웃들과 함께 그해 겨울 잘 익은 김치를 나눠 먹던 그런 산골 깊숙한 시골 마을이였다. 그곳에서 시작된 나의 기억을 토대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두 개를 이곳에 적어 보려 한다.


첫 번째는 어른들의 말씨가 기억난다. 이웃의 품앗이로 장독을 묻을 때였다. 김장철이면 짚으로 움막 형태의 “김치 집”을 만들곤 했는데, 5살~6살 정도밖에 안 되던 난 바로 옆에서 불을 쬐며 어른들이 완성해가는 “짚 움막”을 구경했지만, 지루했었고, 이내 불을 쬐다가 지푸라기 한 개를 가지고 불장난을 시작했다. 주황 섞인 빨갱이 타오르는 것이 너무 예뻤고. 이것을 못 보는 바쁜 어른들이 이내 안쓰러워 보여, 지푸라기 하나를 잡아 불씨를 담았다. 그리곤 불씨를 보여주기 위해 어른들이 있는 “지푸라기 움막”으로 다가갔다. 그 바람에 불씨가 날려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짚 움막”으로 불이 옮겨 작은 불장난이 큰 불로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불은 겨울이라 그런지 정말 삽시간에 번졌다. 그리곤 이웃 사람들이 모여 5시간 정도 걸려 만든 모든 것들이 재로 변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동네 사람들이 있었기에 1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큰 사고 없이 불이 꺼지긴 했지만, 큰 불에 엄청나게 놀라 울고 있던 나에게 그 시절 어른들과 부모님은 “야 불은 참 예뻤다. 근데 말은 하고 보여줬어야지 이놈아” 했었고 “꺼졌으니 됐다”라며 여유를 보여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곤 모두가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큰 불이 났음에도 그 동네 모든 사람은 날 혼내기는커녕 먼저 위로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나의 실수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합쳤던 그 모습들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하고, 이 기억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업무 처리에서 나타나는 실수와 불행에 대해 나는 사람을 나무라진 않는다. 우선 따뜻한 말로 그 사람들을 보듬고 그 후 갑자기 나타난 실수와 불행을 도와 같이 해결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실수와 불행이라는 것은 목표가 발현되기 위해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상황일 뿐 사람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좋은 것을 이웃과 공유하고자 했던 엄마의 마음씨가 기억난다. 

마을을 큰길을 기점으로 딱 반을 나눠 내가 자고 있던 윗동네에는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반대편 아랫동네에는 매섭게 장대비가 내리고 있을 때였다. 시골집 마루에서 평온하게 엄마의 무릎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엄마는 날 다급하게 흔들어 깨웠었다. 


우리 마을을 천천히 지나가던 소나기가 아랫마을에서 잠시 멈췄을 때 아랫동네에는 산 능선을 타고 아주 큰 무지개가 걸려고 엄마는 나를 무릎에 눕힌 채, 우리 둘만 이 장면을 보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모든 동네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멋진 무지개를 다시 본 적은 없다) 이처럼 우리 엄마는 자신이 보고 좋은 것은 항상 공유했다. 누가 추천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런 성향이 있는 우리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난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 오늘 이런 것 봤는데(했는데) 너무 좋더라 너도 봤으면(했으면) 좋겠어.” “진짜 꼭 같이 가 보고 싶어” “이거 너무 좋더라. 싸다 사라”와 같은 말을 말이다. 누가 추천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알린다. 내가 보고 좋았던 것, 내가 쓰고 좋았던 것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추천으로 인해 그들이 더 행복해지길 마음으로 진정 원하면서 말이다.


2. 십 대와 이십 대에서 찾은 내 성향


이후 내용은 댓글로 본인의 G 메일 주소를 적어 남겨 주시면 개개인별로 구글 독스 권한을 열어 드릴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C 버전 댓글 쓰기 - 우측 하단 말풍선 클릭 후 댓글 


* 모바일 버전 댓글 쓰기 - 우측 하단 말풍선 클릭




*추가 아래 URL로 접속해 공유 요청 눌러 주셔도 바로 공유 드리겠습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ar-IByVXekXwIp8q_x5L9LH67kG_jhl-PjUjwroeV3Y/edit?usp=sharing



https://docs.google.com/document/d/1ar-IByVXekXwIp8q_x5L9LH67kG_jhl-PjUjwroeV3Y/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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