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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5. 2023

어른이 되면 괜찮아지나요?_07

화살의 방향

화살의 방향



친구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묘하게 기분 나쁜 감정은 아마도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라고 지칭할 나의 친구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자 매우, 정말 매우 열심히 자신의 능력을 키워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 또 매우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이다. 오랫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리지 않고 일을 해온 A가 선택한 직업은 직업상담사였지만 여느 직장인들이 그렇듯 그 시작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A의 고민은 1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끝날 줄 몰랐다.

그날 친구의 불만대상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내담자들의 태도였다.

취업을 하고자 왔으면서 그것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내담자는 어떤 방식의 해결책을 내주어도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며 시간만 낭비한다는 것이었고, 어차피 이런 사람은 지금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할게 뻔한데 왜 굳이 와서 이렇게 자신의 시간까지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인 나에게 직장의 힘듦을 토로하며 다소 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친구의 대화에서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대화 속의 대상은 내가 아님에도 말이다.


나의 20대, 30대를 돌아보면 언제나 헤매고 있었다.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결국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다행히도 그 길에서 다른 선택지도 보게 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과거를 마냥 후회하거나 갈아엎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너무 내 마음대로만 살았나 싶어 지금은 조금 두려움이 들지만 후회한다고 과거가 변하지는 않으니 그렇게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다.

A 역시 많은 헤맴을 겪었다. 그 헤맴이 나의 우왕좌왕보다 더 힘든 길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지금도 간혹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그런 불안함을 등불(A는 등불이라는 단어를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삼아 이것저것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배웠고 볼 때마다 나에게 힘들다 우는소리는 해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며 노력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A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안다.


하지만 그날 A가 내담자에게 느끼는 기분과 나에게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자니 과연 그녀가 그 길을 건너왔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내담자의 태도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했음에도 결국 이래서 못하겠고 저래서 못하겠다는 말만 늘어놓고 다른 의견도 없이 우물쭈물하는 태도는 분명 A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 없는 행동이다.

A도 분명 처음에는 잘 설득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달래 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친구는


"이 사람은 결국 자기 하던 거 한다. 안 바뀐다."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충분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래도 자신에게 상담하러 온 사람인데 왜 저렇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A에게 조금의 실망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친구도 나의 이런 태도에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1년이 넘게 여러 사람들을 경험해 오면서 전문가로서 말하는 것이었을 텐데 친구라는 사람이 계속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며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은 A도 조금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겪어보니 다 그렇더라."라고 결론지었다.


거기에 쓸데없는데 이상한 고집이 있는 나라는 친구는 결국

"사람들이 다 너 같지는 않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고, 바뀌지 않아 힘든 것도 본인이다. 네가 누구보다 힘들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후에 다시 수다 떨고 커피를 마시고 잘 헤어졌지만 내 마음에는 작은 불편함이 남았다.

그리고 오늘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그 대화를 하며 내가 기분 나빴을 일은 아니었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며 그날을 더듬어보았다.


내가 그날 그렇게 불편함을 느낀 것은 결국 내 스스로 친구의 말을 화살로 느꼈던 것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친구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느꼈던 내 작은 마음으로, 그 순간 언젠가의 나였을지도 모를 그 사람을 방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향한 것도 아닌 화살을 굳이 거기로 가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2023년 1월 11일 수요일 정오에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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