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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균 Apr 09. 2016

영화 <초속 5센티미터> 리뷰

벚꽃에 담긴 여운

b.

 처음엔 <언어의 정원>을 보고 그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장마철에 봤으면 좀 더 여운이 남아있었을까. '사랑, 그 이전의 고독한 사랑'이라는 카피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봄에는 이 영화지'라는 계절 탓을 한 번 하고 <초속 5센티미터>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사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것도 <초속 5센티미터> 때문이었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을 때의 그 여운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예쁘던지. 그 색감이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까지, 그냥 포스터가 곧 영화였다. 어떤 그림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포스터 한 장에 매료되어서일까, 곧장 영화를 보게 됐다.

 이 영화가 나온 게 2007년이니까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봤던 것인데, 그때는 세 이야기가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너무 어렸던 것인지, 그냥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보고 있는 와중에도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보면서도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깐. 빛깔이라는 것, 그 오묘한 빛깔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좀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별의 목소리>를 보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까지 감독님의 전작들을 모조리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전작들이 훨씬 좋았다. 2013년까지는.


 고등학생 때 <초속 5센티미터>를 보고 그 영화를 다시 본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막연히 옴니버스로 나눠진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2013년에 대학 소극장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영화 자체가 워낙 예쁘니까 여자친구랑 같이 보려고 했었는데, 여자친구는 사정이 생겨서 못 오고 나 혼자 가서 보게 됐다. 그리고 그 날에서야 나는 이 영화의 제대로 된 스토리를 알 수 있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하는 후회보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참 감사했다. '그 친구가 내게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여운을 가득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그 여운이 영화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1.

 영화는 초속 5센티미터를 설명하는 두 사람의 대화로 시작된다.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그 눈과 같은 벚꽃을 내년에도 함께 보길 기약하며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헤어짐을 나누는 두 사람은 시간이 흘러 다른 장소에서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그렇게 타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벚꽃초].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아카리와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타카키를 바라보는 스미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학 온 첫날부터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가진 타카키와 그런 타카키를 좋아하는 스미다의 이야기 [코스모나우트].

 마지막 에피소드는 성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의 모습이 전해진다. 서로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주는 이야기 [초속 5센티미터].


2.

 봄에 벚꽃을 더하면 설렘이 되지만, 첫사랑에 벚꽃을 더하면 이 영화가 된다. 사실 영화 속에서 벚꽃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벚꽃 하면 이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제목 때문이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니. 나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보고 있을 때 이 얘기를 들었다면 아마 그 사람, 평생 못 잊었을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벚꽃보다 벚꽃이 떨어지는 그 속도에 초점을 맞춘다. 1초에 5센티미터씩 움직이는 벚꽃잎처럼 타카키와 아카리는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가, 천천히 서로에게 잊혀진다.

 반면 스미다는 1초에 5킬로미터씩 움직이는 우주선처럼 빠르게 타카키에게 반해, 빠르게 마음을 접는다. 더 이상 상냥하게 대하지 말라는 스미다의 말과 함께 날아가는 우주선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마음이 찡해진다. 남자인데도 타카키보단 스미다에게 더 공감이 간다.


3.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독 첫사랑에 관한 영화들은 알콩달콩한 로맨스가 되지 못한다. 설령 그런 영화가 나온다 해도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대개 첫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뒷맛이 유독 씁쓸해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건축학개론>도 그렇고, 한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역시 그렇다.

 사실 첫사랑이란 감정은 순수한 것 같으면서도 마냥 순진하지만은 않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새드 엔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선 두 영화도 자세히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봐야 나름 희극이다. 로맨틱한 스토리, 사랑에 빠져 알콩달콩하고 달달한 스토리는 첫사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랑에 관해 순수하고 선한 기억만을 가진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겐 공감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첫사랑은 아름답기보단 아련하고, 아련한 만큼 미련이 남는다.

 그걸 가장 애틋하고, 또 아름답게 표현해낸 영화가 아닐까 싶다. <초속 5센티미터>가. 적어도 내 기억 속엔.


4.

 신카이 마코토는 참 놀랍다. 놀랍도록 빛을 가지고 논다. 보통 살면서 아름다운 사물이나 풍경을 보고 그림 같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신카이 마코토의 그림을 보면 다르게 해석이 된다. 이 사람의 그림은 참 인생 같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의 색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만 같다.

 빛으로 투영된 순간의 아름다움, 그 절정에 <초속 5센티미터>가 있다. 이 영화만 놓고 보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나 곤 사토시의 절정에 있는 작품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감독의 전작들을 봐도 그렇다. <별의 목소리>보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가 더 좋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보다 <초속 5센티미터>가 더 좋다. 점점 좋아지다가 이 영화에서 최고점을 찍는다. 당연히 다음 작품은 얼마나 더 좋을지 기대하고, 또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언어의 정원>이 더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는 장편보다 단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게임 회사에서 오프닝 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탓인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어의 정원>도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60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 러닝타임을 보여준다.

 그래도 좋다. 신카이 마코토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빛과 색은 언제든 좋다. 사실 스토리 따위 상관없으니 마구 그려줬으면 좋겠다.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냥 많이 그려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제는 혼자서 원화, 제작, 감독, 더빙까지 하진 않으니 더 많이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인생 같은 그의 영화를 보고, 우리네 삶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


p. s

그의 단편은 언제나 옳다. 참고로 일본 학습지 광고다, 광고.

https://youtu.be/MfuGMhUr2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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