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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ug 06. 2020

눈이 번쩍 뜨이는 기획

우리가 나눈 꿈에 대한 이야기

몇 주 전 주말, 연남동에서 마음산책 출판사의 정은숙 대표님을 뵈었다.  

(여름 내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르게 하는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주로 책/콘텐츠 기획자를 만나는 중이다. 나와 박혜강 에디터가 질문을 하고, 서원 포토그래퍼가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출간 일정은 아직 미정)


정대표님은 이 기획을 준비하면서 꼭 뵙고 싶은 인터뷰이셨다. 6월 11일 목요일 오전에, ‘답장이라도 받으면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심정'으로 손을 덜덜 떨며 제안을 드렸다. 같은 날 늦은 밤 대표님의 흔쾌한 답장을 받았을 땐 (나와 혜강님 모두 각각 귀가하는 지하철 안이었음) 육성으로 "대박대박대박!" 소리를 질렀을 정도. 뜨거운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고, 뵈었을 땐 시간의 감각을 잊은 채 쉬지도 않고 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우 즐거웠고 충만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써주신 것이 더없이 감사했다.


우리 좋자고 시작한 기획이지만 일은 일이었다. 일정(아무도 마감을 주지 않았지만 우리 스스로 세운 마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스스로 마감..)에 맞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처음의 마음이 무뎌지는 것이 슬슬 힘들어졌다. 그러던 차, 인터뷰 중 살짝 언급해주시기도 한 마음산책 20주년 기념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이 집에 왔다. 20명의 인터뷰이들로 채워진 목차를 훑어보는데 울컥했다. 작가 이름만 봐도 작품과 표지가 떠오르고, 그 책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전부 생각이 났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선사해준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 

사전적 의미가 아닌, 내면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적확한 언어를 고를 때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알려준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

꾹꾹 눌러쓴 문장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 위트의 신세계를 보여준 김중혁 작가의 <뭐라도 되겠지> 

사랑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들을 알려준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


지난 20년간 내가 읽어온, 지금의 나를 만든 마음산책의 ‘작품’들이다. 책 한켠에 인터뷰이들이 쓰고 옮긴 책으로 38권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중 24권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본문에는 인터뷰이의 이름이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어느 작가의 인터뷰인지 맞출 수가 있었다. 이런 책들, 그리고 스무 해 동안 마음산책을 만들어온 정은숙 대표님과 콘텐츠에 대해, 기획하는 마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놀랍다.


<스무 해의 폴짝>은 기획과 책의 만듦새면에서도 무척 감탄하게 된다. 마치 AS 마냥 ‘기획 의도대로 잘 만들어진 좋은 인터뷰집의 예시’를 보여주신 것 같다. 그간 마음산책과 책을 낸 스무 명의 저자들과 '책과 글쓰기와 문학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인터뷰한 글을 모은 것만으로도 '20주년 기념 인터뷰집' 목적은 충분했을 텐데 더 나아가 이 기획을 위해 내부적으로 정한 인터뷰의 원칙을 서문에 공개했다.

문학 저자들의 글이 생산되는 곳, 작업실 혹은 생업의 공간으로 찾아간다.

우리가 보낸 스무 해를 돌아볼 수 있는 공통의 질문을 마련한다.

스무 해를 도약대로 폴짝 뛰고 싶은 마음을 담아 문인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한다.

그리고 이 운동화 선물의 언박싱 순간이 매 인터뷰의 첫 컷으로 구성되어있다. (심지어 스무 켤레 운동화가 모두 다름)


어제 혜강님과 "‘좋은 기획이네!' 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건 어떤 순간일까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는 기획이나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에 참고가 되는 기획, 또는 배가 아플 만큼 부러운 기획에 눈이 번쩍 뜨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좋은 기획은, 나를 겸허하게 만드는 기획이다. 참고용 레퍼런스로 '나도 저런 거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보다 롤모델로 삼게 되어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획을 만나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올라 허리를 고쳐 앉고 현재에 정진하게 된다. 내게 <스무 해의 폴짝>이 그렇다.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 회사가 또 있을까.


정은숙 대표님의 서문 말미에서 다음의 문장을 발견했다. "시간을 내준 스무 문인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우리가 나눈 꿈에 대한 이야기는 곧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왜 우리의 제안에 흔쾌히 손을 잡아주셨냐는 질문에도 이 말씀을 하셨었다. 긴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해봤는데 인터뷰 프로젝트가 굉장히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일이더라고. 이 프로젝트에서 받은 마음들을 호호즈에도 전하고 싶었다고. 호호즈가 운이 참 좋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르게 하는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에 시간을 내준 선배, 동료 기획자들의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일말의 희희>는 2019년 11월에 시작한 김진영과 박혜강의 교환일기 프로젝트입니다. 서로에게 쓰는 글, 콘텐츠 기획 크루 호호즈를 만들며 함께 고민하고(삽질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기획입니다. 본 글은 개인적 소회와 기록이라 교환일기라는 기획의도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글의 소재와 작성 동기가 호호즈의 인터뷰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었기에 <일말의 희희>로 발행해둡니다. 외전으로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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