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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Oct 17. 2023

신들의 나라 발리, 나의 신은 어디에

긴 항해를 끝나고 휴가를 오는 남편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 무조건 여행 갈 거야. 해외여행 갈 거야. 선장으로서 첫 항해 무사히, 만족스럽게 마치고 돌아오는 기념으로.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이번 여행을 선물할 거야."


해외 여행을 간다면 많이 걷고 싶었다. 어쩌면 아이들과 유럽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식구들 각자 배낭 하나 메고 걷고 보고 먹고 쉬는 그런 유럽 배낭여행. 20대에 갔던 유럽의 낭만과 일탈을 아들 둘 키우는 아줌마가 되어 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들에게 유럽을 보여주고 다. 손을 잡고 많이 걷고 피곤해져서 허겁지겁 먹고 푹 자고 여기까지 온 용기가 가상해서 더 많은 곳을 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진한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그런 유럽.


그러나 불발.


그의 선언 뒤에 뒤따르는 일들, 그러니까 여행지를 알아보고 예매하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인도양 어디를 떠 있는 배 안에서는 인터넷 검색도 잘 안되고 결제는 더더욱 잘 안 되니까. 유럽 비행기표는 비쌌고,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는 가까운 날의 일정은 모두 마감이었다.


"휴양지는 그렇게 안 당기지만 발리는 어때? 인도네시아는 안 가봐서 모르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발리는 꽤 멋졌거든."

나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에서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가 평화로운 들판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발리를 상상했다.

"좋아! 가보고 싶었어."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여행 선언한 지, 일주일 만에 모든 예약을 마쳤고 그가 하선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왜일까, 이 설레지 않고 피곤한 느낌은.

약간 지루한 마음으로 별 기대 없는 마음으로 예약하고 짐을 꾸리는 나에게 남편은 막상 가보면 또 좋을 거라며 다독였다.

막상 도착한 3월의 발리는 습하고 더웠다. 한낮은 세상이 깨질 듯 쨍했다. 교적 저렴한 가족 숙소는 룸 2개 예약했더니 패밀리스위트로 입실할 수 있었다. 남편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침대에 누워서 말했다. "와, 돈이 좋긴 좋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조무래기 아이들이 그 말을 지지하기라도 하듯 와, 함성을 지르며 고조된 웃음으로 침대 위 아빠에게 안겼다. 나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그래, 누리기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하다못해 여행이라도 가기 위해서는 내가 벌어야 해. 일이 있어서, 돈이 있어서, 식구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한 고생이 보람 있어 다행이다.'라는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과 다짐. 간힘 쓰지 않으면 안 될 다짐.

가족 리조트의 숙소에서 아이들은 한껏 수영을 했다. 매일 비슷비슷한 메뉴가 나오는 리조트 조식을 열심히 먹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인근 해변으로 가서 남편은 서핑을 했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었다. 낮잠을 자다가 선선해지면 쇼핑몰에 가서 별 쓰임이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사는, 그런 물건들을 샀다.  큰돈과 시간을 들여 발리에 왔지만 이곳이 발리이지 인식하지 못할 비슷비슷한 휴양지의 환경 속에서 나는 여전히, 덤덤했다. 떤 감흥도 일지 않아 당황스러운 나는 버릇처럼 여행의 의미를 좇기 시작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다음 날도 수영장, 서핑, 쇼핑, 우붓 관광, 식사.


한국인 남자아이가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몇 시간 동안 그 가족의 서사를 들어야 했다.

수영장에서 만난 그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지금은 호주 국적을 가졌으니 한국인이 아니라 했다. 그는 호주 국적의 사업가 남편과 결혼해서 퍼스에서 사는데 자기들 힘으로 부촌의 집도 사고 부자들과 사교모임도 한다고 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이웃도 수준 높은 사람들이라 인종차별도 없다고 했다. 자기들은 원래 항상 좋은 숙소에 가느라 이렇게 저렴한 가족 리조트는 잘 안 오는데 그래도 가성비 생각하면 여기 리조트가 괜찮아서 하루만 묵고 발리에서 제일 값비싼 호텔로 이동할 거라고 했다. 발리는 숙소에 따라 여행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며. 나는 흩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그녀의 말을 경청하려고 애썼다. 나의 여행이 모욕당한 느낌도 살짝 들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말과 별도로 이만하면 우리 수준에서는 충분히 좋았고, 충분히 사치였으므로. 어쩌면 그녀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대화 도중 자꾸만 시선은 쨍한 파랑의 하늘로 자꾸만 옮겨갔다.


또 다른 한국인 관광객도 밤 비행기라서 잠깐 쉬려고 저렴한 숙소를 찾다 보니 여기에 왔다며 그전에 묵었던 숙소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서비스가 좋은지, 돈이 아깝지 않더란 이야기를 먼저 건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 휴식으로 온 여행이라고. 우리도 숙소를 옮길 예정이었다. 그가 언급한 그 숙소로. 그렇지만 대화를 지연하고 싶지 않아 그렇냐고 안전하게 귀국하기 바란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쇼핑몰에서 마주친 중년의 부부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걸어왔다. 어디 숙소에 묵었고, 어디 맛집에 갔고, 어디에서 좋은 물건을 비교적 값싸게 샀다는 이야기. 모두의 관심사가 그런 것들에 메여있다고 생각하는 듯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짧은 여행의 마지막은 개인 풀이 달려있는 파라이빗 한 숙소였다. 그들의 말처럼 호텔을 들어가는 순간 돈이 좋긴 좋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마음이 조금 달떴다. 코 앞에  바다가 보이는 곳, 층층이 설계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칵테일을 주문해 마셨다. 숙소에 들어와서 우리들끼리 수영을 했다. 나는 흘려들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속물이든 어쨌든 숙소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긴 하는구나. 러면서 나는 이 돈이면 현실적으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좋은 숙소, 값비싼 음식, 현실에서 자주 할 수 없지만 특별한 이벤트용으로 지불된 비용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추억으로 회상될 것이다. 흔하지 않고,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이므로. 그러나 그런 것들로 만족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4박 6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기 전 가이드가 한 말이 떠올랐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으로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발리의 큰 축제가 있어서 교통이 통제될 것이고 차도 막힐 것이라고.


우리는 야간 비행시간을 넉넉히 두고서도 훨씬 더 일찍 숙소를  나섰다. 뜨거운 낱볕은 화려하게 퇴장하는 중이었다. 노을이 일렁이는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차에서 내려 그들을 향해 따라 걸었다. 여기저기 음악소리가 울렸고, 이리저리 어깨가 부딪혔다. 순식간에 인파는 늘어났고 그들이 말하는 축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한 인형들.

기이한 기합소리.


3월 17일, 그들의 종교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녜삐(Nyepi)


나는 비행기 표와 숙소를 구하기 급급했기 때문에 발리에 무슨 축제가 있는지 몰랐다. 거대한 인파와 귀신 인형들이 판을 치는 혼돈 속에 서서야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녜삐의 목적은 악령에 제물을 바치고 퇴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전날 오고오고(Ogoogo) 의례가 있다고 했다. 해가 지면 오고오고 의례에 따라 사람들이 악령으로 여겨지는 거대한 인형을 들고 행진하고 가장 멋진 행렬을 한 팀을 가린다고 했다. 그리고 녜삐 당일은 악령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침묵의 날로 모든 움직임과 소리가 정지되는 날이라고 했다.

기이한 인형들, 재밌거나 조잡해서 친근한 인형들이 밤하늘에 춤을 쳤다. 내일의 침묵을 거대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모든 소리는 난리를 쳐댔다. 그 소음 가운데에서 나는 다음 날, 우리가 한국으로 떠나서 결코 경험하지 못할 침묵을 상상해 봤다.


 ‘A day of silence’

모든 것의 멈춤. 의도적으로 도시 전체가 침묵으로 휩싸일 때 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서도 지금의 발리는 얼마나 조용할까 자꾸만 상상해 보았다. 악귀가 사라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는 발리. 불빛도 가두고 노동도 멈추고 오락도 삼가며 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편이 무사히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난 발리. 어떤 이들은 떠나옴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재력과 정보를 확인하거나 과시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오기도 했다.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발리 한 번 다녀왔다는 의미 외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을 돌아와서 발견했다.


내가 이 단편 여행에서 간직한 바는 이것이다.


 사원에서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들의 신들을 자주 만났고, 거대한 축제 속에서 진정한 고요가 시작되기 전 쏙 빠져나왔다. 나만의 고요, 침묵은 결국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신의 계획인 것처럼.  연쇄는  신에대해 생각하게 됐다.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 발리, 그들은 왜 그토록 많은 신들이 필요했을까. 수많은 신들 중 어떻게 자신들의 신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나는 신이 없다.

그러나 나 혼자 있을  때 한 번도 신을 찾은 적 없었던 나는 이제 좀 변했다. 조우하는 거의 최초의 질문.

<나의 신은 누구인가, 나의 신은 어디에 있나.>

부러 만든 나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나는 신의 필요를 생각한다. 남편을 위해서. 그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 외, 어찌할 수 없을 우연에 불행이 비켜가서 무사히 우리에게 돌아오도록. 매번 나서는 바닷길에 위험이 비껴가도록, 그건 나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초인적인 힘을 빌리고 싶다고.

어디든 누구든 신이 있다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간절히 빌고 싶다고. 때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신이 있다는 믿음 만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내가 감사하는 바는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무사히, 환한 미소를 띄며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 평범성. 무시못할 평범.


어쩌면 이번 여행은 힘든 일을 해낼 때 오히려 나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고, 매번 낯선 것을 찾아 헤매며 이력으로 남기고 싶어 하며, 홀로 조용한 방에 있는 시간을 무료해하는 나에게 신이 던진 선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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