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Oct 15. 2023

단편 여행

짧은 호흡의 여행, 긴 여운

내 인생, 지금껏 한 발은 일상생활에, 한 발은 여행에 두고 살고 있다. 그것이 견딤과 힘듦을 기본값으로 깔고 있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일상을 흐트러지지 않게, 짧더라도 부정을 전복시키는 여행이 나를 견디게 하고 나아가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한다.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하는 데에는  단편 소설도 좋고 단편 영화도 좋고 단편 여행은 더 좋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지않아도 필요할 때마다 짧은 독서와 영화에 몰두할 수 있다. 부담없이. 벗어나고 싶을 때, 도무지 헤어나오지 못할 권태나 부정에 휩싸일 땐 단기 여행을 한다

  떠남으로써 확실히 그것들에게서 거리를 둘 수 있으므로. 그것들이  삶의 흐름을 바꿀 힘을 주기에.


어렸을 적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애성이 부족하다>였다. 애성이 무슨 의미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적합한 단어가 없다. 아마 시골 선생님들 사이에 상투적으로 쓰는 말인 듯하다. 그 의미는 명시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열렬한 애정,  지속하는 힘. 이를 테면 지구력. 그런 것들이 없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미 스스로 그런 것들이 부족하단 것을 눈치로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내게 주어지지 않은 능력인 것 같았다. 평생 결핍된  능력 같았다. 툭하면 포기하고, 툭하면 도전하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실패를 예견하고.


그 시절 나는 꽤나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아이라 스스로의 미래 또한 긍정적으로 짐작하지 못했다. 성공하고 빛나는 '미래의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이라니.


부단한 시작들이 있었고, 언제나 호흡이 짧아서 내 인생은 다짐들만 쌓여갔다. 어쩔 수 없었다. 짧은 호흡의 누적들이라도 만들어나갈 수밖에.


쪼개진 조각들, 그러니까 단편의 누적이면 또 어때.

단편 소설은 연속되지 못하더라도 날카롭게  인생의 단면을 파악해서 액자 속에 넣는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연속성을 가른다. 단편 여행도 마찬가지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다.  간결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행은?

짧은 호흡으로 삶의 단면을 가르고 싶다. 때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심정이지만, 뭐 하나 성취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자주 이런 마음이 들었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끊고 싶다고. 깊이 호흡하고 그 일상을 좀 더 나답게 꾸려나고 싶다고.

태생적으로 내 호흡이 짧다면 어쩌겠는가. 받아들이고 점같은 노력을 해나가는 수밖에. 어차피 모두 끝을 향해 달려가는 유한한 인생, 어떻게든 자기 식대로 인생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내 식대로 짧은 호흡으로, 짧은 여행을 하겠다.

단편 여행으로 내 삶의 부분 부분을 잘 정리하고 이어나가기를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의 숙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