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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 away from Jan 27. 2024

기차여행 7-1

인생은 아사리판. 길들여진 것과 길들여지지 않은 것

2024년의 첫 부산여행. 작년 2월에 민재와 온 것이 마지막이니 1년만에 오는 셈이다. 이번 여행은 이색적으로 온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들 방학에 맞춰 미리 일정을 계획하고 예약을 하였다. 토요코인 4인 스위트 더블 객실과 왕복 기차표. 그것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의미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금요일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 며칠 전부터 설레여 하며 부산여행을 기다렸던 민서. 민서와 함께 하는 일정에선 민재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제법 커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직도 애정표현과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무척 가까운 곳에 있는 민재.


기차를 타고 가는 길. 5시 47분 기차여서 무척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들은 좀처럼 기차 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민서는 멀미를 하는지 중간부터는 힘들어 하는 모습. 부산이 가까워지면서 동쪽하늘에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맡아지는 아침공기를 난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본전돼지국밥의 오픈시간은 9시로 조정된 듯하다. 그래서 전부터 가던 대건명가 돼지국밥집에서 순대돼지국밥 2개와 그냥 돼지국밥 1개를 시켜서 먹는다. 아이들 모두 맛있게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초량역 부산 과학체험관의 오픈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서 부산역 스타벅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부산 과학 체험관은 올때마다 실망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엔 새로운 전시 체험물이 10가지나 들어왔다 그래서 아이들 전시 체험물 체험을 하고 평가를 하는 이벤트를 진행중이었다. 아직 완성도가 떨어지는 체험물이긴 했지만 새로운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체험 할 거리는 참 많았지만 시간관계상 체험을 서둘러 마치고 서면역으로 향한다. 


서면역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런닝맨을 가족끼리 해본다. 민재와 했을때 좋은 기억이 있어서 함께 했는데 우리 모두 수첩을 획득하는데는 실패했다. 유명한 피자집인 이재모 피자 서면역점에 예약을 걸어놓고 주변의 서면미술관, addd 소품샵등을 돌아본다. 민서와 기차타고 오는 부산 여행은 처음이라 자꾸 민서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더 알아봤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민재에게 참 미안한 여행. 서면미술관에서는 꽃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짜임새가 좋았고, 젊은 연인들이 사진찍을만한 포인트들을 중점적으로 전시해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재모 피자에서는 치즈크러스트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오랫동안 부여잡아왔던 멘탈이 이 곳에서 조금 삑사리 난 것 같다. 민서는 민재처럼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헤아려 행동하지 못한다. 다른곳에서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족에게만이라도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해 참 감사하게 생각하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길들여진 것과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민재와의 처음 부산여행도 쉽지는 않았다. 민재는 가는 장소마다 민재의 기분대로 행동하고 싶어했고, 나는 그런 민재의 기분을 전부 받아주지는 못했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데도 사이가 서먹해질만큼 서로에게 실망하곤 했고 그 실망감의 본질은 이런 것일 것이다. 


'왜 내 맘을 몰라주지?'


아이가 이런 맘을 가지는 것에는 관대해도, 어른이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에는 때로는 비난하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 어른을 떠나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기때문에 이런 감정이 드는것은 누구든 비난할 수 없다. 단지 그 횟수나 강도가 애와 어른이 똑같다면 문제가 될 뿐. 


이재모 피자에서 나와서는 이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향한다. 토요코인 호텔 해운대점에서 체크인. 잠시 짐을 풀고 쉰다. 민재는 노트북으로 인강을 듣고, 민서는 프린터해 온 숙제를 한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 달라진 풍경. 앞으로 1년 1년 또 더 달라진 모습들이 생겨나겠지. 시간은 정적인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간다. 부산여행을 민재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대부분의 시간은 고정적이고 일반적인 것들로 채워져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만한 시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여행이나 교감을 나누는 시간들을 일반적인 것들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 순간이동 하듯 지나가 미래의 내가 미래의 소중한 사람들과 대면대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더더욱..


서면 미술관에서 벽면 종이 나무에 각자의 메시지를 붙이는 장소가 있었다. 난 그 곳에 왜인지 이런 문구를 써서 붙였다.


'인생은 아사리판이다'


그냥 장난스러운 문구 같지만 짧고 함축적이고 위트있게 삶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그 기적속에서 잘 정돈되고 아름답게 살아갈수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렇게 친한 가족 4인이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여행을 하는데도 의견이 마찰과 서로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인생은 어차피 아사리판. 아사리판이라면 다 수용하고 즐기자. 라는 나의 작은 철학에 의한 문장이다.


한참이나 숙소에서 쉬던 우리는 해운대 빛축제를 구경하다가 뜨거운 국물이 먹고싶어져 금수복국으로 간다. 역시 복지리 국물을 마셔줘야 느끼한 속과 가슴이 가라앉는 것 같다. 와이프는 계속 소화가 안되고 춥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인생은 아사리판. 민서는 사줘도 사줘도 또 사달라고 땡깡을 부리고, 와이프는 춥고 소화 안된다고 힘들어하고, 민재는 그런 민서를 보고 불만이 가득하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


라는 생각이 계속 들지만, 이런 시간들이 양분이 되어 우리의 다음 여행을 훨씬 순탄하게 해줄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길들여진 누군가의 감정들이 제물이 된다는 슬픔이 깃들어 있겠지만.. 인생이 아사리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또한 힘껏 웃고 넘어갈만한 인생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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