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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내

by Far away from

사랑하는 사람과 이름 모를 춘천 시내를 걷고 싶다

어둑어둑 비가 내리는 길을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걷고 싶다


추적추적 비와 어둑어둑한 한낮의 분위기가 마치 추억 속 흑백사진처럼

배고픔, 걱정, 각종 고통들과 해야 할 것들 다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시선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시간의 제약, 목적의식 없이 약속시간도 없이

싫은 사람, 싫은 것들, 안 하고 싶은 것들 다 하지 않고

마냥 걷고 싶다


칙칙폭폭 기차도 지나가고

세월의 깊이를 묵직한 표정으로 떠안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도 지나가고

장사가 될까 싶은 허름한 옷가게를 지나

인적이 없는 공원 공터에 다다르면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듯

떼어지지 않는 입을 오므렸다 폈다

비에 젖에 바스락거리지 않는 나뭇잎사귀의 모습이

나이 든 노인의 반짝이는 눈망울 같아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

마치 영화를 반 정도 보고 난 후의 나른한 느낌의

나의 인생

영화의 중반부터 종반까지는 무척 빠르게 지나가던데

나의 인생도 그러할까?

지루하거나 흥미 없는 영화는 빨리 끝났으면..

재밌는 영화는 끝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은 어느 쪽일까?


상상 속의 춘천 여행은

마치 가지 않아도 간 것처럼 아득하고 뻐근하지만

들었던 노래지만 또 듣고 싶은 것처럼

알지만 또 알고 싶은 것처럼

봐도 봐도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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