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신입입니다만? - 두 번째 에피소드
그 당시 나는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기 위해 수원에서 종각까지 매일 빨간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
아침 10시 첫 수업을 시작으로 하루종일 공부하다가 밤 10시에 집에 가는 생활을 6개월 동안 했다. 그리고 학원을 졸업할 무렵 운명처럼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한 번도 그 선생님에게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첫인상은 조금 무서웠는데 정말 잘 가르친다는 얘기에 한 번 배워보고 싶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찰나,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선생님을 따라 나도 학원을 나왔다.
처음에는 3명이서 영어 수업을 듣다가 사정상 하나둘씩 빠지게 되었고 나는 끝까지 선생님과 함께 했다. 아니 바짓가랑이를 붙들어맸다는 표현이 적당했을 것 같다. 선생님의 수업을 따라가다 보니 영어가 조금씩 느는 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선생님의 수업을 꾸준히 듣고, 중간중간 운영요원으로 일하면서 경험도 쌓았다. 어떤 행사에서는 영어 업무도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이 떨렸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다는 게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내가 '국제회의기획자'로 일한다면 가장 하고 싶은 분야도 단연 영어를 제일 많이 쓰는 연사관리 업무였다.
인턴으로 일했던 첫 회사를 지나 두 번째 회사에서 첫 업무로 학수고대하던 ‘연사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2-3년 차 대리급이 맡아서 하던 업무였는데 우리 팀은 팀장님을 포함해 팀원이 단 3명뿐이라 내가 맡게 된 거였다. 그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걱정하셨지만 잘 해낼 수 있다며 웃어넘겼다. 연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행사 준비를 위한 메일을 주고받는 순간들이 짜릿했다.
처음으로 연사를 공항에서 호텔까지 안내해 주고 회사로 다시 복귀하던 밤. 너무 힘들어서 펑펑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사수 없이 옆 팀에 물어물어 가며 혼자서 준비했으니 당연했다.
첫 행사 신고식을 거하게 치렀던 만큼 두 번째 행사에서는 훨씬 순조로웠다. 오프닝 영상이 나오면서 행사가 시작을 알릴 때면 심장이 뛰었다. 행사가 끝난 뒤 연사에게서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보람차고 기뻤다. 제일 많은 연사분들을 초청했던 행사에선 그분들이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하나같이 나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혼자 속으로 정말 기쁘기도 했다. 팀장님처럼 나도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나가리라 생각했다.
(*그 때를 떠올리니 다시 한번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시고, 일하면서 질문을 던지면 하나하나 답변해주셨던 그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