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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 않게 아이 작품 비우는 법


아이 작품을 정리할 필요가 생기는 시기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는 만들기와 그리기가 놀이이자 일상이죠. 계속 해서 작품(?)이 발생하고, 축적됩니다. 그나마 초등학생이 만들었다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겠지만, 우리집 유치원생이 만든 것은 어설프고, 조잡하며, 대부분 미완인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눈코입 사람 얼굴을 갖춘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하고,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추억상자에 고이 간직했는데요. 이제는 그런 아이의 그림을 어떻게 하면 잘(?) 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네요. 하하. “잘”이라는 건, "절대 버리면 안된다"는 아이에게 '비워도 된다'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 저역시 몰래 버리거나 미안해 하지 않고 비울 수 있는 방법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정리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기 전에 얼마전에 읽은 ‘사물의 심리학’이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물건이 소중한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인데요. 물건이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물건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는지 안다면! 아이가 물건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할수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영유아기는 애착인형이나 이불같은. 유독 집착하는 물건을 통해 안정감을 가집니다. 영유아기를 벗어나 6~7 이후가 되면 특정 물건에 대한 애착이 줄어드는 대신, 만들기나 색칠, 그림을 그리는 창작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고요.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느끼며, 이것은 자아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매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자신을 표현할  “곰인형을 가진 아이” “나는 시크릿쥬쥬 숟가락을 가졌어라며, 자신을 소유물과 동일시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니 만들거나 그린 것은 오죽할까요. 굉장히 소중하게 낀다고 합니다.


이 얘길 하다보니 며칠전에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오르네요. 저희 아이가 거실 한 가운데에 건조대에 두고, 담요를 덮어서 자동차라고 만든겁니다. 저는 다니기가 불편하고 곧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치운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치운걸 보고는 “엄마가 내가 만든거 망가뜨렸다”고 난리난리 생난리가 난겁니다. 달래느라 혼이 났었죠. 이제는 아이가 뭘 만드려고 열중하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하면서 '요것이 정리하려고 하면 얼마나 난리를 피울까' 하며 긴장이 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자신이 만든 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니 부모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비우는게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결론은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지금부터 드리려고 합니다.


방금 책에서 아이가 물건을 통제하면서 자아상이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한다고 했죠. 그런데 여기서 물건을 통해서 습득되는 또 다른 중요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경계를 테스트 하는 경험’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볼게요. 아이가 찰흙을 가지고 만들기 하다가 러그에 다 문질러 놓거나, 그림그리기 하다가 매직으로 원목 탁자까지 낙서를 해 놓으면 엄마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도깨비가 되죠.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 이렇게 하면 엄마가 화가나는 구나.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경계를 테스트 하는 경험이죠.


뭘 깨거나, 고장내거나, 저지레 하는거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을 바로 피드백이 오지만, 정리는 (우리에게도 그렇듯) 언제나 급박한 것이 아니며, 경계가 모호하기에 알려주기가 어렵죠. “장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라는 점을 가르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공간이 한정된 수납함을 하나 정하고, 수납함이 다 차면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면 됩니다. 오래된 것들부터, 비워야 하는 창작물은 사진을 찍어서 남긴다면 서운한 마음이 덜 하겠죠.


아까 저희 아이가 건조대로 마든 자동차를 제가 정리를 해서 난리가 났다고 말씀을 드렸죠? 울고 불고 하는 아이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정리하는 시간이야. 그래서 이 건조대도 제자리에 둘거야. 엄마가 집을 다 치우고 나면 다시 만드는 건 괜찮아.”라고 했더니, 아이가 수긍을 하더라고요. 집이 깨끗해지니까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다시 건조대로 집을 만들 줄 알았는데 다른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놀이를 하면서 다시 어질러지겠지만 저는 집안이 더 엉망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었고요.


- 이 수납함만큼은 보관할 수 있다. 수납함이 차면 어느정도 비워야한다.

- 잠자기 전에는 정리해야 한다, 내일 다시 꺼내는건 좋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공감해 주면서 어떤 것은 가능한지를 알려주세요. 어떤 것은 안되고. 어떤 것까지는 되는지 그 경계를 공유하고 그 규칙에 따라 일관성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의 작품 세계를 존중하면서 정리하는 방법 역시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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